1화
옮길 자리
부스는 방음 유리 너머로 회의장을 삼각형으로 잘라 보여주었다. 윤도경은 헤드셋을 조이고, 파트너 자리의 빈 의자를 한 번 보았다. 오늘은 혼자였다. 릴레이 통역이었다. 연단의 화자가 자신의 모어로 말하면, 옆 부스의 피벗 통역인이 영어로 넘기고, 윤도경은 그 영어를 다시 한국어로 옮겼다. A언어에서 피벗을 거쳐 C언어로. 두 번 접힌 종이처럼, 펼칠 때마다 접힌 자국이 남았다.
화자가 속도를 올렸다. 분당 백이십 단어를 넘어서는 순간이 있었고, 그때부터 문장의 가장자리가 뭉개졌다. 윤도경은 핵심 명제를 붙들고, 수식어 하나를 놓았다. '심각한'이었는지 '중대한'이었는지, 이미 피벗을 거친 뒤라 원발화는 두 겹 아래에 있었다. 그는 놓친 자리에 표시를 남기듯, 손가락으로 책상을 한 번 눌렀다.
교대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십 분마다 파트너와 바꿔야 하는 자리를, 그는 사십 분째 지키고 있었다. 마르코가 인력을 다 채우지 못한 날이었다.
세션이 끝나고 부스를 나서자 세라 정이 복도에 서 있었다. 다음 재판 준비 자료를 손에 쥔 채였다.
"윤 통역사님." 세라가 말했다. "혼자 릴레이 사십 분. 누락이 없을 리 없죠."
"있었습니다." 윤도경이 답했다. "정확히는, 옮길 자리가 없었던 겁니다. 속도가 백이십을 넘었습니다."
세라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 노트에 또 하나 적으시겠군요. 사라진 단어를."
"기록하는 겁니다. 되살리는 게 아니라."
"원칙적으로, 통역인이 남길 것은 통역뿐입니다. 나머지는 감상이에요." 세라가 자료를 고쳐 쥐었다. "감상은 정확성을 무디게 합니다."
윤도경은 정 선생님, 이라고 부르려다 삼켰다. 세라는 이미 돌아서 있었다. 그녀가 넘긴 어느 재판의 녹취를 그는 들은 적이 있었다. 매끄러웠다. 지나치게 매끄러웠다. 피고인의 말에는 머뭇거림이 있었을 텐데, 녹취에는 그 숨의 자리가 없었다. 정리된 정확성. 윤도경은 그 매끄러움이 무엇을 덮는지 알 것 같아 서늘했다.
집으로 돌아와 그는 책상에 노트를 꺼냈다. 표지가 닳은 노트였다. 부스에서 선배가 무너지던 날부터 적기 시작한, 옮기지 못한 단어들의 목록. 오늘의 '심각한' 혹은 '중대한'을 적으려 페이지를 넘기다, 손이 멈췄다.
맨 앞장이었다.
거기엔 단어 하나가 지워진 채 있었다. 지우고, 그 위에 다른 것을 쓰고, 다시 지운 흔적. 종이가 얇아져 있었다. 눌린 자국으로만 읽히는 두 글자와, 그 옆에 겹쳐 쓴 또 다른 두 글자. 윤도경은 그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시선을 비켜 왔다. 삼 년째였다.
그는 오늘도 그 장을 넘겨, 뒷장에 오늘 치를 적었다. 앞장은 펼치지 않았다.
전화가 울렸다. 마르코였다.
"윤 선생. 감정은 나중에. 내일 열 시 시립병원 외래 통역. 됩니까 안 됩니까."
"됩니다."
"환자 이름은 서류로 보냅니다. 보호자 동석 있고요. 딸이라는데—" 마르코가 잠깐 멈췄다. "미성년은 아닙니다. 통역인은 윤 선생 하나면 됩니다."
전화를 끊고, 윤도경은 노트를 덮었다. 표지 위에 손을 얹었다가 뗐다. 앞장의 두 글자가, 덮인 종이 아래에서 여전히 눌린 채 남아 있었다. 되살릴 수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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