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Fic
국밥집 노야(老爺)

1

토렴

새벽 장국은 맑아야 한다. 조무경은 국솥을 젓지 않았다. 젓는 대신 위로 뜨는 것을 걷어 냈다. 양지와 사태를 오래 곤 국물은 뽀얗게 흐려지기 쉽다. 흐려지면 손님이 지난밤 무엇을 참았는지 국물에 비치지 않는다. 그는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국자를 솥전에 두 번 두드렸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파장 무렵에는 발이 무거운 이들이 문을 연다. 셈이 남은 사람들. 조무경은 그들을 오래 봐 왔다. 첫 손님은 옆 주막의 오씨였다. "아이고 노야, 육수 좀 나눕시다. 오늘 봉놋방이 꽉 차서." "가져가시오." 오씨가 항아리를 들고 가며 힐끗 궤짝 쪽을 보았다. 국밥집 안쪽, 손님 눈이 닿지 않는 자리에 낡은 궤가 하나 있다. 오씨는 그 궤를 볼 때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무경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엔 그런 침묵이 몇 년째 국물처럼 고여 있었다. "기둥에 금 그을 자리도 없겠구려." 조무경이 말하자 오씨가 걸걸하게 웃었다. "그건 노야네 기둥 얘기지. 우리 집 기둥은 아직 여유 있어요, 흐흐." 오씨가 나가고, 정오가 기울 무렵 여자아이 하나가 문 앞에서 오래 서성였다. 열대여섯쯤. 소매 끝이 여러 번 기워져 있고, 손등이 물일에 텄다. 조무경은 국자를 든 채 그 손을 보았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없다. 물지게나 빨래로 튼 손이다. 오른손 검지 안쪽만 유독 얇게 배긴 자국. 필묵을 오래 쥔 흔적. 아이의 것이 아니다. 물려받은 손버릇이다. "들어와 앉으시오." 아이가 흠칫 안으로 들어와 구석에 앉았다. 국밥 한 그릇을 시키고도 지갑 대신 소매만 만지작거렸다. "…외상은 안 되는 거…그게, 오늘까지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이자 막을 게 있어서." 조무경은 대답 대신 밥을 펐다. 뜨거운 장국을 그릇에 부었다가 따라 냈다. 다시 부었다가 따라 냈다. 밥알과 그릇에 온기가 배도록 토렴을 세 번. 김치와 깍두기를 곁들여 아이 앞에 놓았다. "국밥 나왔소. 식기 전에 드시오." "돈이…그게." "먹고 일하면 되오. 설거지할 사람이 필요하던 참이오." 아이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곤 고개를 숙이고 숟가락을 들었다. 국물을 먼저 한 입 떠먹는다. 밥을 크게 뜨지 않고 반 숟갈씩 아껴 뜬다. 오래 굶은 사람의 숟가락질이 아니었다. 굶는 데 익숙해진 사람의 숟가락질이었다. 조무경은 마른 천으로 국자를 닦으며 그것을 보았다. 손끝은 예전 같지 않아도, 보는 눈은 아직 남아 있다. "이름." "윤단이…예요. 어르신." 먹기를 마치고, 단이는 소매에서 접힌 종이 하나를 꺼내 조심스레 폈다. 이자 낼 셈을 다시 헤아리려는 모양이었다. 낡은 전당표였다. 저당 잡힌 물건과 액수, 그리고 말미의 서명들. 조무경이 그릇을 치우려던 손을 멈췄다. 전당표 말미. 채무자의 수촌 옆에 필집의 수결이 있었다. 글을 대신 쓴 자의 서명. 그 붓의 흐름을, 마지막 획이 꺾여 올라가는 그 버릇을, 조무경은 알고 있었다. 삼 년 전. 그가 벤 자의 품에서 나온 명문에도 같은 손이 있었다. "어르신?" 단이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조무경은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굳은살이 남은 오른 손아귀가 잠시 종이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가 물러났다. "…아무것도 아니오." 그는 빈 그릇을 들고 부뚜막으로 돌아섰다. 국솥에 다시 물을 잡고, 국자를 들었다. 위로 뜨는 것을 걷어 냈다. "단이 너." "예." "내일도 오시오. 파장 전에." 단이가 전당표를 다시 소매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물건이 누구의 유품인지, 아이는 몰랐다. 조무경은 알 것 같았다. 새벽 국은 맑아야 한다. 흐려지면 비치지 않으니까. 조무경은 오래, 솥 위에 뜬 것을 걷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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