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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집 노야(老爺)

2

궤 밑의 기름

파장 뒤의 국밥집은 국솥 하나만큼 조용했다. 단이는 그날 밤 봉놋방 신세를 지지 않았다. 오씨가 부뚜막 옆 좁은 방 한 칸을 내주었다. 조무경이 부탁한 것이었다. "애를 굳이 데리고 있으려는 이유가 뭐요, 노야." 오씨가 술 항아리를 건네며 물었다. 걸걸한 목소리에 날은 없었다. 그저 궁금한 것이었다. 조무경은 국자를 닦던 천을 접었다. "손이 좋소. 물러서지 않는 손이오." "그거야 그렇지만." 오씨가 궤짝 쪽을 힐끗 보았다. 늘 그러듯 그다음 말은 하지 않았다. 조무경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남은 장국을 나눠 마셨다. 오씨가 나가며 문틀을 두어 번 두드렸다. 잘 자라는 뜻이었다. 단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조무경은 등잔 심지를 낮췄다. 궤 앞에 앉았다. 뚜껑을 열고, 개어 둔 헌 옷가지를 걷어 냈다. 맨 밑, 기름 먹인 천으로 싼 것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무릎 위에 올렸다. 천을 풀자 외날 곡도 한 자루가 드러났다. 칼집은 낡았고, 허리에 매던 띠돈은 오래전에 떼어 냈다. 조무경은 손질용 천에 방청유를 조금 묻혔다. 칼을 뽑지는 않았다. 칼집째 마른 천으로 먼저 닦았다. 묵은 기름을 걷어 내고, 새 기름을 얇게 먹였다. 걷어 내고, 다시 먹였다. 새벽 국솥 위로 뜨는 것을 걷어 내듯, 그의 손은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젓지 않고, 걷어 내는 손. 오른 손아귀에 굳은살이 남아 있었다. 자루가 닿던 자리였다. 그러나 손끝은 예전 같지 않았다. 기름을 먹인 천을 쥔 검지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삼 년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칼을 뽑지 않았다. 이 년째 뽑지 않았다. 기름을 다 먹인 뒤, 천으로 다시 쌌다. 헌 옷가지를 덮고, 뚜껑을 닫았다. 낮에 본 전당표의 수결이 눈앞에 남아 있었다. 마지막 획이 꺾여 올라가던 그 버릇. 그 손이 이 궤 안의 칼과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아이는 몰랐다. * 이튿날은 오일장이 서지 않는 날이었다. 손님이 뜸했다. 단이는 시키지 않아도 부뚜막 앞에 섰다. 토렴을 어깨너머로 본 모양이었다. 밥을 그릇에 담고, 뜨거운 장국을 부었다가 따라 냈다. 다시 부었다가 따라 냈다. "두 번." 조무경이 말했다. "…예?" "세 번 하시오. 그릇이 아직 차오." 단이가 손등으로 그릇을 만져 보았다. 정말 미지근했다. 다시 한 번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 냈다. "그게…어떻게 아셨어요. 안 만져 보시고." "김을 보시오. 그릇이 뜨거우면 김이 곧게 오르오. 미지근하면 옆으로 눕소." 단이가 국솥 위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그랬다. 아이는 그것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조무경은 김치를 썰며 그 옆얼굴을 보았다. 물일에 튼 손, 필묵을 물려받은 검지. 아비의 손버릇을 그대로 이어받은 손이 이제 국물을 붓고 있었다. "어르신." "말하시오." "어제 그 종이…전당표요. 이자를 다음 장까지 못 막으면, 물건이 넘어간대요. 거간 어른이." 조무경의 칼질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거간 이름." "방덕수요. 방 어른이라고…장시에서 제일 큰 거간이래요." 깍두기 그릇을 놓는 손이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조무경은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삼 년 전, 필집의 빚 문서가 거쳐 간 손. 사람을 문서로 바꾸는 셈을 하는 자. "물건이 뭐요." "몰라요. 궤짝이라고만…아버지가 안 열어 보셨는지, 저한테 뭐가 들었는지 말도 안 하고." 조무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 국밥집 안쪽에 놓인 궤와, 아이가 되찾으려는 궤가, 서로 얼마나 닮은 물건일지 생각했다. "국밥 나왔소." 그는 김치와 깍두기를 곁들여 그릇을 내려놓았다. 단이가 앉아 국물을 한 입 떠먹었다. 어제처럼 반 숟갈씩 아껴 뜨지는 않았다. 조금 더 크게 떴다. "다음 장이 언제요." "닷새 뒤요." "그때 나랑 장에 갑시다." 단이가 숟가락을 든 채 올려다보았다. "…왜요, 어르신." 조무경은 국자를 들어 솥 위로 뜬 것을 걷어 냈다. "거간이라는 자들은 셈을 좋아하오. 셈은 나도 좀 아오."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단이도 더 묻지 않고 밥을 마저 먹었다. 부뚜막 안쪽, 헌 옷가지 밑에 묻힌 칼은 그날도 뽑히지 않았다. 다만 새 기름을 먹은 채, 어둠 속에서 얇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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