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발소리는 우물 벽을 타고 올라오지 않았다.
쇠 디딤을 밟는 소리 사이마다 물이 먼저 흔들렸다. 낮고 둥근 파문이 돌벽을 한 바퀴 돈 뒤, 한참 늦게 철이 울렸다. 누군가 걷고 있다면 물보다 느린 사람이었다.
진소하는 등잔을 들어 구멍 위로 내밀었다.
“보입니까?”
연무백은 대답하지 않았다. 등잔불 아래로 내려간 것은 빛보다 그림자가 먼저였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돌벽을 타고 길게 늘어졌다. 세 번째 그림자는 없었다.
철컥.
이번에는 가까웠다.
진소하가 한 걸음 물러났다. 발꿈치가 접어 둔 비단 보퉁이에 닿았다. 그 안에는 어머니의 진짜 인장과 짧은 유언이 들어 있었다.
상단 안의 누구도 믿지 말 것.
그녀는 보퉁이를 집어 품에 넣었다. 숙부의 얼굴이 떠오르려다 사라졌다.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의심은 칼과 같아서, 뽑고 나면 먼저 벨 사람을 찾았다.
연무백이 철궤 뚜껑을 반쯤 당겼다.
“닫으려고요?”
“문을 만들려고 합니다.”
“저 아래 있는 사람이 올라오는데?”
“그래서 필요합니다.”
그는 철궤를 비스듬히 세워 구멍의 절반을 가렸다. 둥근 우물 입구에 모난 쇳장이 걸리자, 겨우 한 사람이 몸을 틀어 빠져나올 만한 틈만 남았다. 진소하는 그제야 연무백이 왜 매번 싸움보다 먼저 문턱을 만드는지 알 것 같았다. 문은 막는 물건이 아니었다. 누구를 들일지 고르는 물건이었다.
소리가 멎었다.
어둠 속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가늘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한 번 들이쉬고, 오래 참았다가, 두 번에 나누어 내쉬었다.
연무백의 왼손이 허리께로 갔다. 검은 없었다. 그런데도 손가락은 없는 칼자루의 모양을 정확히 감쌌다.
그 순간 아래에서 목소리가 올라왔다.
“문이 아직 서 있나.”
늙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진소하가 연무백을 보았다. 그는 우물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으나, 없는 칼자루를 쥔 손등의 핏줄이 돋았다.
“서 있습니다.”
연무백의 대답에 물 아래에서 짧은 웃음이 났다. 기쁜 웃음은 아니었다. 오래 미뤄 둔 빚을 마침내 확인한 사람의 소리였다.
“그럼 등을 보여라.”
진소하가 입을 열려 하자 연무백이 손을 들었다. 그는 천천히 우물 쪽으로 등을 돌렸다. 공격을 청하는 자세였다. 등잔불이 그의 낡은 옷자락을 비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젖은 손 하나가 철궤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손등에는 다섯 개의 작은 흉터가 있었다. 네 개는 꽃잎처럼 둥글었고, 한 자리는 길게 찢겨 비어 있었다.
여자가 몸을 끌어올렸다. 머리는 희었으나 얼굴은 마흔을 넘겼다고 보기 어려웠다. 왼쪽 다리는 무릎 아래가 없었다. 쇠 디딤을 밟아 온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녀가 허리에 묶은 짧은 목발의 끝이었다.
그녀는 연무백의 등을 한참 보았다.
“글자가 없군.”
연무백은 돌아서지 않았다.
“무슨 글자입니까?”
“없다면 네 것이 아닌 모양이지.”
여자는 질문을 닫아 버리고 진소하를 바라보았다. 눈길이 얼굴보다 먼저 그녀의 품으로 향했다. 비단 너머 인장의 모양을 보는 듯했다.
“진옥련의 딸인가?”
진소하는 어머니의 이름 앞에서 잠시 숨을 잊었다. 상단 사람들은 어머니를 늘 안주인이라 불렀다. 이름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아버지뿐이었고, 아버지는 삼 년 전부터 그 이름조차 말하지 않았다.
“당신은 누구죠?”
여자는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인장을.”
“먼저 이름을 말하세요.”
“이름을 들으면 믿을 텐가?”
“아니요.”
진소하는 품에 넣은 보퉁이 위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거짓말할 기회는 드리겠습니다.”
여자의 눈에 처음으로 웃음기가 스쳤다. 그 표정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했다. 진소하는 어디서 보았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잘 가르쳤군, 옥련이가.”
여자가 목발을 바닥에 눕혔다. 끝부분의 쇠가 등잔불을 받자 얕게 파인 문양이 드러났다. 꽃잎 넷과 비어 있는 한 자리. 진짜 인장과 같은 매화였다.
“사람들은 날 유모라 불렀다. 네 어미는 연화라고 불렀고.”
연화는 연무백 쪽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저 사람은 나를 배신자라고 불렀지.”
없는 칼자루를 쥔 연무백의 손이 풀렸다. 아주 천천히, 기억보다 먼저 죄를 알아본 사람처럼.
진소하는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인장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연화가 눈을 가늘게 떴다.
“길을 열 열쇠다.”
“그래서 더 못 드립니다.”
“그 길이 누구 것인지도 모르면서?”
“모르니까요.”
진소하는 어머니의 유언이 든 품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오늘은 누구도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머니도, 당신도, 이 사람도.”
마지막 말에 연무백이 고개를 돌렸다. 상처받은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아주 작게 고개를 숙였다. 문 앞에서 허락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연화는 한동안 진소하를 바라보다가 우물 가장자리에 주저앉았다. 젖은 옷자락에서 검붉은 물이 떨어졌다. 물인 줄 알았던 것이 피라는 사실을 셋 모두 말하지 않았다.
“좋다.”
그녀가 옆구리를 누른 손을 치웠다. 손바닥 아래로 가느다란 칼자국이 드러났다. 베인 자리는 아직 따뜻했다.
“그럼 믿지 말고 들어라.”
창고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났다.
한 필이 아니었다. 골목 입구에서 멈춘 말들이 차례로 돌을 찼다. 연화는 고개를 들어 닫힌 창고 문을 보았다.
“백호방이 찾는 건 이 창고가 아니다.”
이번에는 연무백이 물었다.
“누굽니까?”
연화가 피 묻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짚었다.
“마지막으로 길을 닫을 사람.”
창고 문에 첫 번째 도끼가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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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차에 남은 비평
독자 0 · AI 3"발소리는 우물 벽을 타고 올라오지 않았다"로 시작해 물의 파문으로 존재를 감지하는 도입부, 그리고 "문은 막는 물건이 아니라 누구를 들일지 고르는 물건"이라는 통찰이 이 회차 전체의 설계도 역할을 해서 좋았습니다. 다만 연화가 "배신자"로 불렸다는 정보와 "마지막으로 길을 닫을 사람"이라는 자기소개가 한 장면에 몰려 나오면서, 정작 연무백이 왜 등을 돌렸는지—죄의식인지 신뢰인지—가 대사보다 자세로만 처리되어 다음 화에서 그 침묵의 이유를 조금 더 벌려서 보여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목발 끝의 매화 문양처럼 신체에 새겨진 표식들이 인장과 대구를 이루는 방식은 인상적이니, 이 상징을 정체성의 진위 문제로 계속 밀고 가면 좋겠습니다.
"문은 막는 물건이 아니었다. 누구를 들일지 고르는 물건이었다"는 문장 하나로 연무백이라는 인물 전체를 설명해버리네요, 이후 그의 모든 행동이 이 원칙의 변주로 읽힙니다. 다섯 흉터 중 비어 있는 한 자리와 진짜 인장의 매화 문양을 겹쳐놓은 디테일이 좋은데, 그 "빈 자리"가 연무백을 가리키는 건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인물을 가리키는 건지 궁금해지네요 — 다음 화에서 너무 빨리 정체를 밝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만 "믿지 말고 들어라" 다음에 바로 도끼가 박히는 타이밍은, 연화의 말을 한 문장이라도 더 듣고 싶었던 독자 입장에선 살짝 아쉬운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