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눌 게 이게 다야
남편이 종이를 식탁에 놓았다.
한 장이었다. 접힌 자국이 세로로 하나 있었고, 놓으면서 손바닥으로 한 번 폈다.
폈는데도 가운데가 들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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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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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피를 내려놓고 종이를 끌어왔다.
목록이었다. 왼쪽에 항목, 오른쪽에 금액. 아래에 합계.
줄이 아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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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차. 예금 둘. 보험 둘. 퇴직연금. 그리고 회사 지분.
지분 줄에는 숫자 대신 글자가 있었다.
`평가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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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뭐가."
"…….."
"여기, 평가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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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장이잖아."
남편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파는 것도 아니고 사는 사람도 없는데 값을 어떻게 매겨. 회계사가 그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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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가 그러더라.
나는 그 말을 한 번 더 들었다. 소리 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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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곤란이라고 쓴 사람이 누구야."
"회계사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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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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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봤다.
"이름은 왜."
"…….."
"아니야.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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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거뒀다.
거두는 게 빠르면 상대는 안 거둔 걸로 안다. 십일 년 동안 배운 것 중에 쓸 만한 게 몇 개 있는데 그게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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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래서 저건 빼고 나머지로 하자고."
"…….."
"나눌 게 이게 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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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팔아서 반."
"…….."
"차는 내가 타던 거니까 내가 가져가고, 네 앞으로 된 예금은 네가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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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으로 된 게 뭐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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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목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네 번째 줄이었다. 나는 그 줄을 이미 읽었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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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내 이름으로 만든 거지 내 돈으로 만든 건 아니잖아."
"그게 그거지."
"…….."
"그래, 그게 그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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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말했다.
남편이 나를 한 번 봤다. 내가 순순히 받으면 그는 항상 한 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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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합계를 봤다.
숫자를 읽지 않고 자릿수만 셌다. 아홉 자리였다.
십일 년 치고는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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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다고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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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하자는 거야."
"다음 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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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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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언제."
"말일."
남편이 컵을 들었다가 안 마시고 내려놓았다.
"그 전에 정리되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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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때야."
"…….."
"그냥, 질질 끄는 게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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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말이 긴 사람이다.
설명을 좋아하고, 설득이 되면 기분이 좋아진다. 십일 년 동안 그랬다.
그런데 방금은 세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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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이를 다시 봤다.
아홉 줄을 위에서 아래로 한 번, 아래에서 위로 한 번 읽었다.
두 번째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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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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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에 만든 것이다.
그때 회사는 직원이 다섯이었고 사무실은 이 층이었다. 계단이 좁아서 복사기를 넣을 때 난간을 뗐다.
나는 저녁마다 식탁에서 장부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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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만든 자리가 지금 이 목록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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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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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어보려다 말았다.
물으면 그가 안다. 내가 그걸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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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뭔데."
"…….."
"잔이 비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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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어나서 물을 받아 왔다.
받아서 그의 앞에 놓고 다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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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종이를 집었다.
반으로 접었다. 접힌 자국이 이미 있어서 그 자리에 맞췄다. 어긋나면 폈다가 다시 맞춘다.
한 번에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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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어서 내 쪽에 놓았다.
가져가라고 안 했고 그도 달라고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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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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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고 말해 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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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알아봤어?"
"아니."
"…….."
"필요하면 내가 아는 데 소개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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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컵을 들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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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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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일어섰다.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가면서 한 번 돌아봤다.
"하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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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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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고마운지는 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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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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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탁에 앉아서 남은 커피를 마셨다.
식어 있었다. 한 모금에 다 마셔지는 양이었다.
컵을 싱크대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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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는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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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내내 나는 그 목록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장을 보러 나갔다가 두부만 사 왔다. 카드로 계산하고 영수증을 안 받았다.
받아도 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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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두부를 냉장고에 넣었다.
넣고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안쪽에 지난주 두부가 있었다.
두 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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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쯤에 나는 베란다 창고를 열었다.
거기 상자가 셋 있다. 아이 것도 없고 명절 것도 없고, 그냥 안 버린 것들이다.
가운데 상자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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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가 있었다.
A5 크기에 표지가 검고, 스프링이 하나 빠져 있다. 십 년 전에 쓰던 것이다.
펴면 첫 장에 내 글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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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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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이면 삼천육백오십 일이다.
그중에 저 노트를 편 날이 며칠인지는 안 세어 봤다. 세면 나올 것 같아서 안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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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도로 넣고 베란다 문을 닫았다.
손에 먼지가 묻어서 씻었다. 씻으면서 거울을 봤다.
거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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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남편이 늦는다고 문자를 보냈다.
`먼저 먹어`
나는 답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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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시에 그가 들어왔다.
밥을 안 먹었다고 해서 국을 데웠다. 두부를 썰어 넣었다. 지난주 것부터 썼다.
그가 식탁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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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했어."
"빨래."
"…….."
"두부 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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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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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숟가락을 들었다.
국을 한 번 뜨고 그릇을 봤다. 두부가 떠 있었다.
"두부 있었잖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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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샀어."
"…….."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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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웃었다.
십일 년 동안 그 웃음을 봤다. 화내는 것보다 그게 편한 사람이다.
나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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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바빠."
"…….."
"뭐가."
"그냥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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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컵을 밀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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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말일이 무슨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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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국을 뜨다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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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날은."
"…….."
"그냥 날짜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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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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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숟가락을 도로 넣었다.
"응. 그냥 날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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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안 물었다.
물으면 그가 설명을 시작한다. 설명이 시작되면 나는 그게 맞는 말인지 아닌지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는 동안 오늘이 지나간다.
십일 년 동안 그렇게 지나간 날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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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샤워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목록 얘기는 안 했다.
나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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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고 나는 누워 있었다.
옆에서 숨소리가 먼저 고르게 됐다. 그는 오 분이면 잠든다. 십일 년 동안 부러웠다.
오늘은 안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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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쯤에 나는 일어났다.
거실로 나가서 스탠드를 켰다. 식탁에 앉아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이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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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이 잘 안 나왔다.
두 번 그어서 나오게 했다. 처음 그은 자국이 종이 위에 남았다.
그 아래에 한 줄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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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급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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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네 글자를 적고 나는 펜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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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에 없던 것이 그거다.
법인 돈이 대표한테 나갔는데 어디 썼는지 증빙이 없는 것. 장부에는 자산으로 남는다. 회사가 대표한테 빌려준 걸로 적힌다.
빌려준 것이니까 언젠가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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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을 게 있으면 그건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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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에 안 적은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다.
몰라서 안 적었거나, 알고 안 적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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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회사 돈이 어디로 나가는지 모르는 대표는 없다. 열 명일 때도 없고 백 명일 때는 더 없다.
십 년 전에 다섯 명이었을 때는 내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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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줄을 보고 있었다.
보다가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으려고 펜을 들었다.
들었다가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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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려던 것은 이거였다.
그 계정을 그렇게 쓰자고 한 사람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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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안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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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반으로 접어서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앞치마는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었다. 십 년 동안 거기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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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 뭐가 들어 있던 적은 없다.
영수증도 안 넣는다. 나는 넣으면 꺼내는 사람이라서, 안 꺼낼 것은 안 넣는다.
오늘 넣은 건 꺼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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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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