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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돈을 숨긴 방법은 내가 알려 준 것이었다

2

사모님

아침에 앞치마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두 장이었다. 어제 그가 놓고 간 목록과, 내가 밤에 적은 이면지. 둘 다 반으로 접혀 있었다. --- 이면지를 폈다. 네 글자가 있었다. 펜이 안 나와서 두 번 그은 자국도 그대로다. 폈다가 도로 접었다. --- 우편함에 고지서가 와 있었다. 회계사회에서 오는 것이다. 연회비 납부 안내. 십 년째 온다. --- 나는 그걸 매년 냈다. 내는 데 이유는 없었다. 안 내면 등록이 정지되고, 정지되면 다시 하는 데 절차가 있다. 그 절차가 귀찮아서 냈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 십 년이면 열 번이다. 귀찮아서 열 번 냈다는 말이 되는데, 그러기에는 그 절차가 그렇게까지 귀찮지 않다. 나는 고지서를 식탁에 놓았다. --- 열 시에 옷을 갈아입었다. 정장은 아니고 그냥 밖에 나가는 옷이다. 신발은 앞코가 상한 것 말고 다른 걸 신었다. 가방에 아무것도 안 넣었다. --- 회사는 삼호동에 있다. 십 년 전에는 이 층이었다. 계단이 좁아서 복사기를 넣을 때 난간을 뗐고, 다시 달 때 나사가 하나 모자랐다. 그 자리에는 지금 편의점이 있다. --- 지금 회사는 그 옆 블록이다. 오 층짜리 건물에 삼 층과 사 층을 쓴다. 일 층에 안내데스크가 있고 뒤에 엘리베이터가 둘이다. 나는 유리문 앞에서 한 번 섰다. --- 들어갔다. --- 안내데스크에 젊은 여자가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세운테크요." --- "약속되어 계신가요." "아니요." "…….." "성함이." --- "정하윤입니다." --- 그 사람이 화면을 봤다. 치고 나서 한 번 더 봤다. 안 나오는 이름을 두 번 찾는 얼굴이다. "잠시만요." --- 전화를 걸었다. "삼 층이요, 정하윤 님 오셨는데요." "…….." "네. 아, 네네." --- 전화를 끊고 나를 봤다. "사모님이셨구나." --- "네." --- 그 사람이 방문증을 꺼냈다. 꺼내면서 웃었다. 미안해하는 웃음이었고, 나는 그게 미안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올라가시면 돼요." --- 삼 층에서 문이 열렸다. 사무실이 넓었다. 책상이 스물몇 개 있고 창가 쪽에 회의실이 둘, 안쪽에 문이 닫힌 방이 하나. 십 년 전에는 책상이 다섯이었다. --- 누가 먼저 나를 봤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사모님 오셨어요?" --- 그 말이 사무실 안쪽으로 퍼졌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차례로 일어났다. 반쯤 일어나다 마는 사람도 있었다. 여섯 명쯤이 나를 봤다. --- "사모님 안녕하세요." "사모님, 커피 드릴까요?" "아유, 오랜만에 오셨네요 사모님." --- 나는 세 번 웃었다. --- "커피는 괜찮아요." "아유, 그래도 드셔야죠." "…….." "진짜 괜찮아요." --- 한 사람이 종이컵을 들고 왔다. 내가 괜찮다고 두 번 말한 뒤였다. 받아서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뜨거웠다. --- "대표님 지금 안에 계세요." "네." "…….." "불러 드릴까요?" --- "아니요. 괜찮아요." --- 괜찮다는 말을 세 번 했다. 세 번 다 안 통했다. --- 아무도 내 이름을 안 불렀다. --- 십 년 전 다섯 명 중에 남은 사람은 한 명이다. 이름이 기억났다. 그때 스물여섯이었고 지금은 서른여섯이다. 그 사람이 제일 늦게 일어났다. "오랜만입니다." --- "오랜만이네요." "…….." "잘 지내셨어요, 사모님?" --- 그 사람은 십 년 전에 나를 다르게 불렀다. --- 십 년 전에는 사무실에 책상이 다섯이고 나는 여섯 번째 사람이었다. 책상은 없었다. 저녁에 가서 회의 테이블 끝에 앉았다. 그때 그 사람이 나를 뭐라고 불렀는지 나는 기억한다. --- 기억하는데 여기서 그 말을 꺼내면 그 사람이 곤란해진다. 곤란하게 할 일이 아니다. --- 안쪽 방에서 문이 열렸다. --- 남편이 나왔다. 셔츠 차림이었고 손에 종이를 들고 있었다. 나를 보고 걸음이 반 박자 늦었다. "어." --- "왔어." --- "여긴 왜 왔어." --- 사무실이 조용했다. 여섯 명이 각자 다른 데를 보기 시작했다. 보는 척하는 게 여섯 개 다 달랐다. 나는 그걸 다 봤다. --- "지나가다가." --- "지나가다가?" "…….." "응." --- 그가 회의실 쪽을 가리켰다. "들어와." --- 회의실은 유리였다. 앉으면 밖에서 다 보인다. 블라인드가 있는데 안 내렸다. 나는 창을 등지고 앉았다. --- "무슨 일이야." "별일 아니야." --- "별일 아닌데 회사를 와?" "…….." "오면 안 돼?" --- 그가 종이를 테이블에 놓았다. 놓고 손으로 한 번 폈다. 어제 식탁에서 한 동작이다. 같은 손버릇이다. --- "안 되는 건 아닌데." "…….."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 나는 그 말을 들었다. --- "뭐라고 생각하는데." --- "아니, 그러니까." "…….." "어제 그 얘기 하러 온 줄 알잖아." --- "아니야." --- "그럼 뭔데." --- 나는 대답할 것을 고르지 않았다. 고르면 거짓말이 되고, 거짓말은 그가 알아챈다. 십일 년 동안 그건 못 이겼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골랐다. --- "그냥 와 봤어." --- 그가 나를 봤다. --- "하윤아." "응." --- "다음 달 말일." "…….." "알아." --- 그가 일어섰다. "나 회의 있어." --- 나도 일어섰다. --- 회의실을 나오면서 나는 가까운 책상을 한 번 봤다. 모니터 옆에 결재 서류가 엎어져 있었다. 위쪽에 회사 이름이 있고 그 아래 칸이 셋이다. 기안, 검토, 승인. --- 칸 셋의 폭이 다르다. 가운데가 제일 좁다. --- 그 양식을 내가 만들었다. --- 십 년 전에 만들었다. 셋 다 같은 폭으로 하면 검토 칸에 도장이 두 개 들어가서, 가운데만 좁게 했다. 좁게 하면 하나만 들어간다. --- 아직 쓰고 있다. --- 나는 그 서류를 집지 않았다. 집으면 읽게 된다. 읽으면 나는 읽은 사람이 되고, 읽은 사람은 안 읽은 것처럼 못 한다. 지나갔다. --- 지나가면서 한 가지만 생각했다. 양식이 그대로면 그 안에 들어가는 이름들도 그대로다. 계정 이름은 양식보다 더 안 바뀐다. 한 번 붙이면 십 년쯤은 간다. ---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누가 따라왔다. 아까 그 사람이었다. 십 년 전부터 있던 사람. 손에 아무것도 안 들고 있었다. --- "사모님." "네." --- "저……." "…….." "아니에요. 조심히 가세요." --- "네." ---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 일 층에서 방문증을 반납했다. 안내데스크 여자가 그걸 받아서 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공책을 내밀었다. "여기 퇴실 시간만 적어 주시면 돼요." --- 공책이었다. 줄이 그어져 있고 칸이 넷이다. 이름, 방문처, 입실, 퇴실. 내 줄이 이미 적혀 있었다. --- 이름 칸에 `정하윤`. --- 아까 그 사람이 적은 것이다. 나는 안 적었는데 적혀 있다. 글씨가 동그랗다. --- 퇴실 시간을 적었다. 열한 시 사십 분. 숫자 네 개. --- 적고 나서 그 줄을 봤다. --- 이 건물에서 오늘 내 이름이 적힌 데는 여기 한 줄이다. 삼 층에는 없다. 결재 양식에도 없고 책상에도 없고 문 닫힌 방에도 없다. 십 년 동안 없었다. --- 나는 공책을 돌려줬다. --- "안녕히 가세요, 사모님." --- "네." --- 밖에 나오니 해가 높았다. --- 집에 와서 나는 식탁에 앉았다. 고지서가 아침에 놓아둔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봉투를 뜯었다. --- 금액과 계좌와 납부 기한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등록 상태가 있었다. 한 단어였다. `유지` --- 나는 그 두 글자를 한참 봤다. --- 유지는 내가 한 게 아니다. 돈을 낸 건 나지만 유지라고 적은 건 저쪽이다. 저쪽에서 보기에 나는 십 년 동안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는 사람이다. 끊긴 적이 없으면 쉰 적도 없는 것이 된다. --- 고지서를 접어서 이면지 옆에 놓았다. 종이가 셋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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