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기수
종이 셋을 가방에 넣었다.
목록과 이면지와 고지서. 넣고 지퍼를 닫았다가 다시 열어서 이면지만 뺐다.
그건 식탁 서랍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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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진한테 연락한 건 이틀 뒤였다.
번호는 안 바뀌어 있었다. 저장해 둔 이름도 그대로다. `선우진`.
성이 선우라서 성만 부르면 이상하고 이름만 부르면 더 이상해서, 우리 기수는 그냥 다 붙여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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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하윤`
`나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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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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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좀 보자`
`오 무섭다`
`뭐가`
`십 년 만에 연락해서 얼굴 보자는 건 둘 중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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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아니면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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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답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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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두 시. 사무실 말고 밖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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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두 시에 나는 광화문 커피집에 앉아 있었다.
이 분 늦게 그가 들어왔다. 가방을 안 들고 왔고 손에 휴대전화만 있었다.
십 년 전보다 살이 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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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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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나도 안 변했다."
"거짓말."
"…….."
"거짓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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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앉았다.
앉으면서 의자를 뒤로 뺐다가 다시 붙였다. 테이블이 작았다.
"뭐 마실래."
"아메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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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고 돌아와서 그가 나를 봤다.
"그래서, 돈이야 소송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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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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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그가 휴대전화를 엎어 놨다.
"누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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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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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끄덕였다. 놀라는 걸 안 하려는 사람의 속도다.
"언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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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됐어."
"…….."
"먼저 말했어, 저쪽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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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나왔다.
내가 가져왔다. 그가 일어나려다 말았고 나는 두 잔을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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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져오려고 했는데."
"앉아 있어."
"…….."
"너 예전에도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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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
"남이 뭐 해 주는 거 못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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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
"안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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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잔받침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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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면서 그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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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는."
"없어."
"…….."
"그건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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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야?"
"…….."
"미안. 말이 헛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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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었다.
십 년 전에도 이 사람은 말이 먼저 나가고 뒤에 미안해했다.
그건 안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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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뭘 도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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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잔을 들었다.
들고 한 모금 마셨다. 뜨거웠고 나는 그걸 알면서 마셨다.
"아직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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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고?"
"…….."
"모르는데 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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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볼 데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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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
"다 그 사람 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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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
"결혼하고 생긴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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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잔을 놓았다.
"십일 년 동안 네 쪽 사람이 하나도 안 생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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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겼는데."
"…….."
"그 사람들도 그 사람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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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무 말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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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마디 더 했다.
"물어보면 물어본 게 그 사람한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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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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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십 년 동안 연락 안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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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웃었다.
"그게 장점이 될 줄은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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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봤다.
이번에는 안 빨랐다. 한참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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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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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지금 나한테 뭘 안 말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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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잔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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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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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됐고."
그가 등을 붙였다.
"안 말해도 되는데, 안 말하는 게 뭔지는 나도 알아야 돼. 아니면 나는 네가 말한 것만 가지고 답을 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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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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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제일 문제야."
그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한 번 쳤다.
"틀린 답을 정확하게 해 주거든. 나는 그거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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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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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네가 목록 받았다고 치자."
그가 냅킨을 한 장 뽑았다.
"거기 적힌 것만 가지고 나는 계산해. 깔끔하게 나와. 근데 안 적힌 게 있으면 그 계산은 다 틀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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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적힌 게 있는지 없는지를 네가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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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
"그래서 묻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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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냅킨을 접었다.
접어서 잔 밑에 깔았다. 잔이 흔들리던 게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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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적힌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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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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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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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분할."
"응."
"…….."
"저쪽이 목록을 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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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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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없는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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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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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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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내가 대답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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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를 안 냈다. 입만 웃었고 눈은 안 웃었다.
"아,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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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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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회계사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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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잔을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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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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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지가 아니라."
그가 휴대전화를 뒤집었다가 다시 엎었다.
"너 등록 안 끊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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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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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에 있으니까."
"…….."
"매년 나와. 이름 순이라 너 내 위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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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동안 그는 명부에서 내 이름을 봤다.
자기 이름 위에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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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는 한 해에 한 번 나온다.
열 번이다. 나는 그 열 번을 한 번도 안 봤다.
내 이름이 거기 있는 걸 나보다 이 사람이 더 많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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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볼 때 무슨 생각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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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안 했어."
"…….."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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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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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잔을 돌렸다.
"돌아오려나 보다, 했지. 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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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
"열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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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숫자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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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적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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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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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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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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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료 얼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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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손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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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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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냐고."
"…….."
"야,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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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받으면 나중에 못 그만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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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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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한참 봤다.
그리고 등을 뗐다. 테이블 쪽으로 몸을 당겼다.
웃던 게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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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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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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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쪽은 시간제로 받습니다."
"네."
"…….."
"착수금은 안 받고, 대신 자료를 주시는 만큼만 봅니다. 안 주신 건 안 본 걸로 하고 그것도 기록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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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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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중에 제가 못 봤다고 못 합니다."
"…….."
"그러라고 남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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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하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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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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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이름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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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렸는데도 대답이 반 박자 늦었다.
"세운테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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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무 말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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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쯤이었다.
그 이 초 동안 그는 나를 안 봤다. 테이블 위의 컵받침을 봤고, 컵받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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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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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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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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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 한 글자를 말하고 커피를 마셨다.
식었을 것이다. 아까부터 한 모금도 안 마셨다.
마시고 잔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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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정리되면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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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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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음 주부터 좀 바쁩니다."
"…….."
"그래도 연락은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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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방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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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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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그거."
"…….."
"안 본 건 안 본 걸로 남긴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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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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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제가 안 준 것도 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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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봤다.
"남습니다."
"…….."
"안 주신 게 뭔지까지는 안 남고, 안 주셨다는 것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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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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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는데 그가 한 마디 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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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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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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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 어디서 들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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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기 이마를 한 번 짚었다.
기억이 안 난다는 동작이었다. 십 년 전에도 그 동작을 했다.
그때는 정말 기억이 안 나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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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면 알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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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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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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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와서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가 바뀌는 데 오래 걸렸다. 기다리면서 나는 방금 그가 이마를 짚던 손을 생각했다.
오른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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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에 그 사람은 정말 기억이 안 나면 왼손으로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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