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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한 그릇의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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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쳐진 옛 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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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각 처마 밑에 사람이 그득했다. 차경은 상 앞에 앉아 있었다. 옛 장부가 펼쳐진 채였다. 마지막 장은 비어 있었다. 그는 남설과 정만호가 눈을 밟고 들어서는 것을 보고도 서두르지 않았다.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았다. "남 낭자." 차경이 붓을 들었다. 느긋한 말투였다. "장 서는 날 이 먼 마당까지, 무슨 셈을 지려고 오셨소." "이름을 적으러 왔습니다." 남설이 상 앞에 섰다. 끝이 날카로웠다. "차 주인, 이 장부에 벤 사람은 적혀 있고, 붙인 사람은 없지요." 마당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차경 앞으로 사람들의 눈이 모였다. 차경에게 외상 진 자가 반이었다. 그 반의 눈이, 처음으로 셈을 매기는 쪽에 얹혔다. "붙인 사람이라." 차경이 웃었다. 셈이 밴 웃음이었다. "따져 보면, 붙인 사람은 이름이 남는 법이 없소. 심부름꾼은 장부에 적히지 않으니. 그게 이 어귀 셈법이올시다." "그 심부름꾼이," 남설이 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어미의 삐뚤한 획이 든 자리였다. "이십 년 전, 관과 상인 사이를 오가며 청부를 붙였습니다. 그 돈으로 이 여각을 열었지요. 어미가 삼 년 전 약값을 빌리러 왔을 때, 갚을 사람을 찾는다 했던 것도 차 주인은 알고 있었고요." 차경의 붓이 멎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러나 마당의 눈이 그 멈춤을 보았다. 정만호는 뒤에 서 있었다. 지게작대기 없이. 낮은 무게중심이 발밑에 배어 있었다. 그는 오른 어깨를 눌렀다. 걸음을 미리 아껴 두는 자세였다. "정 어른." 차경이 눈을 돌렸다. "낭자 뒤에 서 계시는군. 값이 매겨질 때 곁에 있겠다, 그 셈이올시다?" "차 주인." 정만호가 낮게 말했다. "그 장부, 마지막 장을 비워 둔 게 오래됐지." "임자를 기다렸으니." 차경이 마지막 장에 손을 얹었다. "벤 사람 이름을 마저 적으면, 정 어른은 내 사람이 되오. 이십 년 청부의 값을, 정 어른 하나로 물리는 셈이지. 낭자가 이름을 적어 준다면, 나야 붓만 놀리면 될 일이고." 남설은 종이를 상 위에 펼쳤다. 어미의 획 옆, 빈자리였다. "아니요." 남설이 말했다. "적을 이름은 어르신 것이 아닙니다. 차 주인 것입니다. 붙인 사람으로요." 차경의 손이 마당의 눈을 훑었다. 셈이 빨랐다. 이 여러 눈앞에서 붙인 사람으로 이름이 적히면, 그가 쥔 외상장부의 신용부터 흔들린다는 것을. 사람들이 값을 매기는 쪽이 바뀐다는 것을. "낭자." 차경의 말끝이 처음으로 느려지지 않았다. "그 종이엔 값이 없소. 이름만 적힌 빚은 사고팔 수 없다는 걸, 정 어른께 배웠을 텐데." "압니다." 남설이 붓을 들었다. "그래서 값을 매기지 않습니다. 값이 없으면 차 주인도 이걸 사갈 수 없지요. 임자는 어미와 저, 둘입니다. 벤 값의 이자를 아는 사람과, 붙인 값을 물을 사람. 둘이면 사갈 수 없다 하셨지요, 어르신." 정만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른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이번엔 결림을 그대로 지고 섰다. 남설은 어미의 획 옆에 붓을 댔다. 마당의 눈이 그 붓끝에 모였다. 차경은 벼루에 손을 얹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셈을 하는 자가, 처음으로 셈을 당하는 자리에 놓였다. 남설이 첫 획을 그었다. 바깥, 국솥은 종일 끓고 있을 것이었다. 돌아가서도 토렴할 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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