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Fic
이름을 세탁하는 가게

12

부르는 쪽

마지막 날인 걸 알고 나간 건 아니었다. 목요일이었고 손님이 셋 왔다. 이불 하나, 작업복 둘. 다 1번과 2번에서 돌렸다. 3번은 안 썼다. 3번을 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안 썼다. --- 여덟 시에 세탁표가 나왔다. 4번 문에 붙어 있었다. 젖어 있었고 두 손으로 뗐다. `품목: 이름 한 벌` `세탁 방법: 부르지 말고 대답하게 할 것` `기한: 오늘` --- 기한이 있었다. 없음이 아니라 오늘이었다. 주문자 칸을 봤다. 내 이름이 있었다. 획이 둘 남아 있었다. --- 둘이면 주인과 같다. 주인은 이십삼 년째 둘이고 나는 여덟 달 만에 둘이다. 주인은 안 써서 안 줄었고 나는 써서 줄었다. 쓴 기억이 없다. 그런데 줄었다. --- 나는 그 종이를 카운터에 놓고 장부를 폈다. 첫 장으로 갔다. 첫 번째 당번의 줄이 있었다. 옆에 `1`이 있고 이름은 읽히지 않았다. 두 번째 자리를 찾았다. 글씨가 바뀌는 첫 자리다. 거기에도 이름이 있었다. --- 읽어 봤다. 읽혔다. 석 자였고 획이 다 있었다. 장부에 적힌 것은 안 지워지는 모양이었다. 지워지는 건 세탁표 쪽이고 장부는 남는다. --- 나는 그 이름을 종이에 옮겨 적었다. 적으면서 손이 떨리지 않았다. 떨릴 줄 알았는데 안 떨렸다. 적고 나서 소리 내지 않고 입만 움직여 봤다. 세 번 그렇게 했다. --- 아홉 시가 됐다. 카운터 등을 껐다. 안쪽 형광등을 껐다. 간판을 껐다. 4번 앞에 섰다. 빈 통이 반 바퀴 돌아 있었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 밖으로 나와 문을 잠갔다. 열쇠를 두 번 돌렸다. 늘 두 번이다. 주머니에 종이가 있었다. 이름을 적은 것이다. --- 걷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 열일곱에서 물소리가 났다. 스물에서 종이 소리가 났다. 스물하나에서 목소리가 왔다. 셋이었다. 집, 골목 끝, 가게.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나간다고 했다. 나가면 셈이 맞고, 셈이 맞으면 다음 사람이 온다. 다음 사람이 오면 내 이름이 비고, 비면 부를 게 없다. 주인은 하나일 때 대답했으면 나갔다고 했다. 지금은 셋이다. --- 스물둘. 목소리가 한 번 더 왔다. 집 쪽 소리는 내가 아는 소리다. 여덟 달 전에도 나를 그렇게 불렀다. 그 소리에 대답하면 나는 여덟 달 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여덟 달 전을 반납하게 된다. 골목 끝 소리는 여자다. 가게 소리는 주인이다. --- 셋 다 나를 부르고 있다. 부르는 쪽은 이름이 준다. 나는 그것을 오늘 아침에 알았다. 주인이 이름은 부를 때마다 붙는다고 했다. 어머니가 몇 번 불렀겠나고. 부르면 붙는다. --- 세탁 방법이 부르지 말고 대답하게 할 것이었다. 부르지 말라는 건 이쪽이 손해라서가 아니다. 부르면 상대에게 붙기 때문이다. --- 스물셋. 골목이 끝났다. 나는 섰다. 돌아보지 않았다. ---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가로등이 없는 자리라 안 보였다. 안 봐도 됐다. 세 번 입으로 굴려 봤으니까. 나는 그 이름을 불렀다. --- 내 이름이 아니었다. 두 번째 당번의 이름이었다. 석 자를 소리 내어 불렀고, 부르면서 골목 끝을 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은 채로 불렀다. --- 목소리 셋이 멎었다. 집도 골목 끝도 가게도 조용했다. 물소리가 안 났다. --- 여자가 대답했다. "네." --- 내 뒤가 아니라 앞이었다. 골목이 끝난 자리 너머, 내가 매일 꺾어 들던 방향이었다. 거기서 대답이 왔다. --- 나는 앞으로 걸었다. 스물넷. 여덟 달 동안 세어 본 적 없는 숫자다. 스물다섯. --- 주머니에서 종이가 뜨거워졌다. 꺼내 보니 이름이 없어져 있었다. 내가 적은 석 자가 사라지고 백지였다. 이름은 혼자 못 돌아온다고 여자가 말했었다. 혼자 못 돌아오니까 누가 불러야 한다. --- 스물여섯에서 뒤에서 소리가 났다. 문 열리는 소리였다. 가게 문이다. 내가 두 번 돌려 잠근 문이다. ---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셈이 맞고 셈이 맞으면 나간다. 나는 오늘 나가려고 부른 게 아니다. 스물일곱. --- 발소리가 났다. 내 뒤에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는 발소리였다. 나오는 게 아니라 들어가는 소리였다. 한 사람이었다. --- 그 사람이 문을 닫았다. 안에서 닫는 소리였다. --- 나는 스물여덟을 세었다. 집이 보였다. 불이 켜져 있었다. ---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세탁표가 있었다. 꺼내 봤다. `품목: 이름 한 벌` `세탁 방법: 부르지 말고 대답하게 할 것` `기한: 오늘` 주문자 칸이 비어 있었다. --- 나는 그것을 접어 넣었다. 넣고 대문을 열었다. 안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획이 둘 남은 이름인데 소리는 온전했다. --- 나는 신을 벗었다. 벗으면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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