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닿지 못하게 두는 일
정거장의 하루는 마이그레이션 알림음으로 시작한다.
세이런은 서고 하층의 통로를 걸으며 단말이 밤새 돌린 고정성 검사 결과를 읽었다. 오류 없음. 매체 노후로 옮겨야 할 서가는 이번 분기에도 스물세 칸. 디지털은 영원하지 않다. 옮기지 않으면 봉인된 기억들은 소리 없이 부스러진다. 그것이 이 정거장에서 그가 매일 하는 노동이었다 — 잊어달라고 맡겨진 것들을, 잊히지 않도록 지키는 일.
통로 끝, 하층의 특정 서가 앞에서 그는 걸음을 멈췄다. 언제나 이 자리, 언제나 같은 시각이었다. 몇 초. 그는 서가의 코드를 읽지 않았다.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접수 로그에는 자신의 서명이 없었다. 위탁인란은 비어 있었다. 그저, 여기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만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세이런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기록은 지우는 게 아니라, 닿지 못하게 두는 겁니다. 위탁을 맡기러 오는 이들에게 그는 늘 그렇게 말했다. 삭제는 없습니다. 인출 단서를 끊을 뿐입니다. 흔적은 남습니다. 접수한 시각, 봉인한 서가, 처리한 사람의 서명까지. 다만 당사자가 스스로 그 문에 손을 뻗을 수 없게 될 뿐이라고.
'남십자호'는 사흘 전에 떠났다. 정거장은 다시 조용했다.
그래서 아카이브 단말 앞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세이런은 처음엔 잔상인 줄 알았다. 이름표 없는 승객. 접수 명부에 대조되지 않는 하선객. 시스템은 그를 '미확인'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손님."
승객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단말이 아니라 그 너머, 봉인 서가가 있는 방향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손이 움직였다.
세이런은 그 손을 보았다. 입력 패널 위에서 손가락들이 흔들림 없이 움직였다. 망설임이 없었다. 서고를 스무 해 넘게 지켜온 세이런조차 외우지 못하는 하층 봉인 서가의 접근 코드를, 그 손은 알고 있었다.
"멈추십시오."
승객의 손이 멈췄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낯선 물건을 보듯이. 그러고는 세이런을 돌아보았다. 얼굴에는 놀라움도 두려움도 아닌, 그저 자기 자신에 대한 당혹이 있었다.
"손은 아는데," 그가 말했다. 문장은 중간에서 끊어졌다. "나는 몰라요. 이 손이 왜."
"방금 무엇을 입력하셨는지 아십니까."
"…그게, 뭐였죠?"
세이런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절차기억이 위탁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알았다. 몸이 익힌 동작은 남는다. 서술기억이 끊겨도 손은 기억한다. 하지만 그것은 언젠가 이 코드를 수없이 입력해본 손이라는 뜻이었다. 여기, 이 서고에서.
"성함이."
"몰라요." 그가 다시 말했다. 이번엔 되묻지 않았다. 확신에 찬 무지였다. "이름을… 몰라요. 아무것도. 여기 왜 왔는지도."
세이런은 단말을 확인했다. 탑승 이력 없음. 명부 대조 실패. 시스템은 그것을 오류로 처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류라기엔, 이 사람의 손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본부에 조회를 보내도 답은 수년 뒤에나 온다. 이 정거장에서 판단은 언제나 혼자 감당하는 일이었다. 세이런은 규정을 떠올렸다. 위탁 기억은 출처와 원질서를 지켜 보존한다. 보관원 자신도 임의로 열 수 없다. 열람에는 권한과 감사 로그가 따르고, 위반은 위반으로 기록된다.
그는 이 사람을 서가에서 떼어놓아야 했다.
"일단 숙소로 안내하겠습니다." 세이런은 낮게 말했다. "이곳은…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승객은 순순히 따라나섰다. 통로를 걷는 동안 그의 손은 여전히 조금씩 허공을 더듬고 있었다. 무언가를 입력하려는 것처럼. 세이런은 그 손을 오래 바라보았다.
임시 숙소 앞에서 그는 잠시 멈췄다. 이름이 없는 사람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서류의 '미확인'으로 부를 수는 없었다.
"이레." 세이런은 말했다. 어디서 온 소리인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당분간,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이레 씨."
승객은 그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처음 받아든 물건처럼.
"이레." 그가 따라 말했다. 그리고 아주 옅게, 안도인지 슬픔인지 모를 것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고맙습니다, 보관원님."
그날 밤 세이런은 서고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자기 방 단말에 하층 서가의 목록을 띄웠다. 3년 전 마이그레이션을 홀로 진행하며 우연히 훑었던 그 목록. 이레의 손이 향했던 코드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목록의 그 자리에는, 12년 전 접수된 위탁 한 건이 있었다.
그는 단말을 껐다. 열지 않는 것도 보존이라고, 오래전 누군가 그에게 가르쳤었다. 세이런은 그 말을 붙들고 눈을 감았다. 붙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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