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Fic
첫사랑이 나에게 보낼 편지를 나에게 맡겼다

2

부치지 않을 편지

"부치지 않는다고요?" "네." "그럼 어디로 보냅니까." "안 보내요." 나는 의뢰서를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받는 사람 칸의 세 글자가 위를 향해 있었다. 내 이름을 내 가게에서 남의 글씨로 보는 일은 처음이었다. 획이 가늘고 끝이 살짝 올라가 있었다. 왼손으로 쓴 사람 특유의 각도였다. "이재 씨." "네." "저희는 대필입니다. 받는 사람이 있어야 일이 됩니다." "받는 사람은 있는데요." 그는 의뢰서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그 사이가 짧았다. 오래 준비한 사람의 속도였다. "여기 앉아 계시잖아요." 형광등이 웅웅거렸다. 여름이 되면 저 소리가 커진다. 고쳐야지 하면서 삼 년째 그냥 뒀다. "제가 왜 이걸 써드려야 합니까." "돈은 드립니다." "그 얘기가 아닙니다." "알아요." 그는 그러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기다리는 데 쓰지 않기로 했다. 손님한테는 기다려주지만 이 사람한테는 아니다. "규칙이 있습니다. 없는 사실은 못 씁니다. 그러니까 사실을 주셔야 합니다." "무슨 사실이요."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마세요." 그가 나를 봤다.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고 할 만한 시간이었다. "십 년 전에 왜 갔는지, 그런 거요?" "아니요. 그건 안 물어봅니다." "그럼요." "이 편지에 들어갈 사실만요. 날짜, 장소, 있었던 일. 그것만 주시면 됩니다." 그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네 번 접혀 있었고 접힌 자리가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오래 접혀 있던 종이는 펴도 다시 접힌 데로 돌아간다. "여기 적어 왔어요." 받아서 폈다. 날짜가 스물 몇 개, 그 옆에 한 줄씩. 시청 앞 정류장. 비. 우산 하나. 학교 뒤 계단. 삼백원. 자판기 고장. 버스 안. 창문 쪽. 잠. 문장이 아니라 항목이었다. 감정어는 한 개도 없었다. 형용사도 거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적어 온 사람은 처음이었다. 손님들은 보통 반대로 한다. 사실은 흐리고 감정만 길게 적어 온다. 세 번째 줄에서 눈이 멈췄다. 버스 안, 창문 쪽, 잠. 그 옆의 날짜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날 나는 시험을 망쳤고 종점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옆자리에 누가 앉아 있었는지는 십 년 동안 한 번도 떠올린 적이 없었다. 종이를 접었다가 다시 폈다. 접힌 자리가 원래 있던 데로 돌아갔다. 나는 그것을 다 읽고 나서 물었다. "이걸 왜 저한테 쓰게 하십니까. 직접 쓰시면 되잖아요." 그는 잠깐 웃었다. 웃었다기보다 입꼬리가 한쪽만 움직였다. "써봤어요." "그런데요." "그건 좀……." 그는 문장을 맺지 않았다. 맺지 않는 것이 대답이라는 듯이. --- 다음 날 아침 첫 손님은 매달 오는 사람이었다. 오십 대 여자였고, 올 때마다 같은 부탁을 했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에게 보낼 편지. 내용도 매번 거의 같다. 봄이면 목련 이야기, 여름이면 마당 수돗가 이야기. 지난달 것을 그대로 옮겨 써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렇게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값을 덜 받겠다고. "안 돼요." 여자는 그때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읽을 때마다 처음이니까요. 처음 받는 편지를 두 번 쓴 글씨로 드리면 안 되죠."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나는 매달 새로 쓴다. 문장도 조금씩 바꾼다. 목련이 폈다고 썼다가, 다음 해에는 목련이 지고 있다고 쓴다. 어차피 같은 마당이다. 엄마에게. 마당 수돗가 옆에 목련이 하나 남았습니다. 올해는 늦게 폈고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 물을 틀면 아직도 처음에 녹물이 조금 나옵니다. 그것까지 그대로입니다. 여자는 늘 마지막 줄을 자기가 불러준다. 그것만은 자기 문장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날 불러준 줄은 이랬다. 다음 달에 또 오겠습니다. 다음 달에 또 오겠습니다, 를 나는 열한 번째 쓰고 있었다. 그날 여자는 편지를 받아 들고 봉투에 넣지 않은 채 한 번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접었다. "글씨가 좀 달라졌네요." "그런가요." "괜찮아요. 좋은 쪽으로요." 여자가 나가고 나서 나는 내 손을 봤다. 어제 왼손잡이 글씨를 오래 들여다본 탓인지, 아침에 쓴 글자들의 끝이 조금 올라가 있었다. --- 세림은 열한 시에 왔다. 오자마자 봉투 상자를 뒤집어 쏟았다. "어제 몇 시에 갔어?" "아홉 시쯤." "거짓말." "왜." "불 켜져 있었잖아. 나 열 시에 지나갔거든." 나는 편지지를 정리했다. 정리할 것이 별로 없었는데도 계속 만졌다. "손님 있었어." "그 시간에? 누구?" "그냥 손님." 세림은 나를 보다가 봉투를 접기 시작했다. 손등으로 종이를 한 번 쓸고 접었다. 사각, 하는 소리. "그냥 손님을 아홉 시까지 받아? 너 요새 왜 그래." "돈 벌어야지." "돈은 무슨. 삼천 원짜리한테 밀리는 주제에." 세림은 웃었고 나는 웃지 않았다. 세림이 그걸 알아차렸다는 것도 알았다. 알아차리고도 넘어가 주는 게 세림이 십 년 동안 해온 일이다. 점심 무렵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수진아, 밥은." "먹었어요." "뭐 먹었니." "김밥이요." "김밥이 밥이니." 엄마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물어놓고 다음 말로 넘어간다. 그날도 그랬다. 이번 주말에 내려오라고, 장롱 정리를 해야 하는데 혼자는 못 하겠다고 했다. 나는 가게가 바쁘다고 했다. "바쁘면 됐고." 전화가 끊겼다. 됐고, 라는 말은 엄마가 화났을 때 쓰는 말이 아니다. 화가 안 났을 때 쓰는 말도 아니다. --- 이재는 저녁 일곱 시 반에 왔다. 이번에는 문을 열고 천장을 보지 않았다. 대신 들어오자마자 스위치 쪽으로 갔다. "하나만 꺼도 될까요." "네." 세 개 중 하나가 꺼졌다. 가게가 반쯤 어두워졌고, 이상하게도 종이가 더 하얗게 보였다. "조명 하는 사람이라서요." "무대요?" "네." "그건 몰랐네요." "십 년 전엔 안 했으니까요." 그는 어제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나는 계약서 양식을 꺼냈다. 손님이 열 번 이상 오는 경우에만 쓰는 것이다. "단가는 장당으로 받습니다. 선금 삼십 퍼센트고요. 쓴 건 봉투에 넣어서 드립니다. 부치는 건 손님이 하시는 겁니다. 저는 안 부칩니다." "안 부치실 거잖아요." "규정이 그렇습니다." 그가 펜을 들었다. 서명란에 이름을 쓰는 동안 나는 다른 것을 물었다. "몇 통이나 쓰실 건데요." 펜이 멈췄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는 그런 걸 보는 일을 팔 년 했다. "스물아홉 통이요." "스물아홉이요?" "네." "왜 스물아홉입니까." 그는 서명을 끝내고 펜을 내려놓았다. 뚜껑을 닫는 소리가 작게 났다. "그건 서른 통째에 말씀드릴게요." 그가 나간 뒤에 나는 꺼둔 형광등을 다시 켰다. 켜고 나서 다시 껐다. 종이가 아까처럼 하얗게 보이지는 않았다. 계약서를 서류함에 넣으려다 말고 서명란을 봤다. 강이재. 십 년 전 글씨와 같은지 다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십 년 전에 그 사람 글씨를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없다. 딱 한 번을 빼고. 그 한 번은 내가 받았고, 답장은 하지 않았다. 답장할 데가 없었다. 봉투에 보내는 사람 주소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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