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받은 봉투
금요일에도 세림이 안 왔다.
문자도 안 왔다. 목요일에 쉬라고 한 뒤로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아홉 시에 문을 열고 봉투 진열을 정리했다. 파란 줄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흰색 작은 것을 옮겨 채울까 하다가 안 했다.
비어 있는 채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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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시에 전화를 걸었다.
세림에게 건 게 아니었다.
"응."
"엄마."
"밥 먹었어?"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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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준비한 문장이 없었다.
어제 밤에 정하려다가 그만뒀다. 정하고 걸면 대필이 되니까. 그래서 정하지 않고 걸었고, 걸고 나니 첫 마디가 안 나왔다.
"엄마."
"응."
"…….."
"물어볼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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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파란 줄 봉투 있잖아."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냉장고 소리가 났다. 십 년 된 그 냉장고다.
"상자 바닥에 있던 거."
"…….."
"엄마가 모른다고 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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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지."
"…….."
"거짓말이었지?"
엄마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카운터에 앉아 기다렸다.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으면 상대가 숨을 어디서 고르는지 들린다. 엄마는 두 번 골랐다.
십오 초쯤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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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내가 보낸 게 아니야."
"…….."
"받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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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두 번 들었다.
받은 거야.
상자 바닥에서 그것을 꺼낸 날부터 나는 그 봉투를 어머니가 쓰다 만 것으로 생각했다. 두 통을 쓰려고 봉투를 두 장 꺼냈고 하나가 남았거나, 잘못 써서 버렸거나.
칼자국이 곧았다.
손으로 찢은 게 아니라 칼로 그은 자국이고 아귀가 맞았다. 그것을 나는 처음 본 날에 확인했고, 확인하고도 그냥 지나갔다.
봉투는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뜯는다.
하루에 몇 장씩 봉투를 만지면서 나는 그 사실을 몰라서 지나간 게 아니다. 알면서 안 쓴 것이다.
어머니가 받는 쪽일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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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냈어."
"…….."
"엄마."
"세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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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손님이 들어왔고 나는 손을 들어 보였다. 손님이 봉투 진열 쪽으로 갔다.
"엄마 나중에 다시 걸게."
"그래."
"…….."
"끊지 마."
내가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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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십 분 만에 갔다.
크라프트 봉투 다섯 장을 사서 나갔다. 고르는 데 팔 분이 걸렸다. 크라프트는 두께가 두 가지인데 손님이 둘을 번갈아 들어 보다가 두꺼운 쪽으로 정했다.
나는 값을 받고 문까지 배웅하고 카운터로 돌아왔다.
그동안 수화기는 카운터에 엎어져 있었다. 엎어 놓으면 저쪽 소리가 안 들리고 이쪽 소리도 덜 간다. 손님이 있을 때 나는 늘 그렇게 한다.
수화기를 다시 들었다.
엄마가 안 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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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응."
"언제 받았어."
"이월 스무날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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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스무날.
노트에 오늘도 안 씀이라고 적힌 날이다. 뜯긴 네 장 바로 다음 장이다.
그날 엄마는 백 그램을 안 썼다고 적었다. 답장을 안 했으니 맞는 말이다.
"편지가 들어 있었어?"
"들어 있었지."
"…….."
"읽었어?"
"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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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쓰여 있었는데."
엄마가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
"짧았어."
"얼마나."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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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펜을 들었다.
들고 나서 놓았다. 받아 적을 일이 아니었다.
"뭐였는데."
"…….."
"엄마."
"언제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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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요.`
넉 자였다.
물음표가 있었느냐고 나는 묻지 않았다. 물어도 엄마가 기억할 것 같지 않았고, 있든 없든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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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야?"
"그게 다야."
"…….."
"이름도 없었어. 받는 사람도 안 적혀 있었고."
봉투에는 뭐가 적혀 있었느냐고 물으려다 나는 그것도 참았다.
그 봉투를 나는 봤다. 겉면에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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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답장했어?"
"안 했어."
"…….."
"한 번도?"
"한 번도."
"…….."
"뭐라고 해."
엄마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방을 구하라고 써 놓고 언제까지냐고 물으면, 그다음에 무슨 말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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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십 년 전 이월에 스물두 살이었던 사람이 셋 있었다. 나와 이재와 세림이다.
그중에 둘이 그 집에 살았고 하나는 그해 이월에 나갔다.
나간 사람이 나가기 전에 한 줄을 써서 보냈다.
언제까지요.
그 넉 자를 나는 세 번쯤 다르게 읽어 봤다. 언제까지 나가야 하느냐로 읽히고, 언제까지 여기 있어도 되느냐로도 읽히고, 언제까지 이렇게 하실 거냐로도 읽힌다.
세 번째로 읽으면 그건 묻는 말이 아니다.
어느 쪽으로 썼는지는 쓴 사람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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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어디 있어."
"없어."
"버렸어?"
"태웠어."
"…….."
"봉투는 왜 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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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오래 있었다.
"버릴 데가 없었어."
"…….."
"그게 무슨 말이야."
"쓰레기통에 넣으면 누가 볼 거 아니야."
"…….."
"봉투는 아무것도 안 적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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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
편지는 태울 수 있다. 글자가 있으니까. 태우면 글자가 없어진다.
봉투에는 글자가 없다. 없는 걸 태우면 태웠다는 사실만 남는다.
그래서 상자 바닥에 넣었다.
십 년 동안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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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응."
"세림이 요새 안 나와."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며칠째야."
"오늘이 이틀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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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아."
"응."
"봉투 산 사람이 세림이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
"파란 줄. 네 가게에서 파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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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어떻게 알아."
"모르지."
"…….."
"그런데 그거 아직 파는 데가 몇 군데 없다며."
내가 사흘 전에 그렇게 말했다. 문구점에서 백 그램은 사는데 봉투는 파란 줄 없는 것만 있다고.
엄마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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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응."
"저번에 두고 온 종이 썼어?"
"…….."
"안 썼어."
"…….."
"쓸 거야?"
엄마가 대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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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어."
"…….."
"열아홉 장 남았어."
"…….."
"그거 다 쓸 일은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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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나는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끊기 전에 엄마가 밥 먹었냐고 한 번 더 물었다. 아까 물었는데 또 물었다. 나는 먹었다고 두 번째로 대답했다.
끊고 나서 그게 물어보려던 말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 줄 봉투 자리가 비어 있었다.
거기 있던 서른여섯 장이 어디로 갔는지 나는 이제 짐작한다.
짐작하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 그 둘을 구분하는 일로 나는 팔 년을 살았다.
구분해 놓고 아무것도 안 했다.
십 년 전에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문 밑에 넣은 편지에 답이 왔고, 답이 넉 자였고, 무슨 뜻인지 정하지 못한 채로 태웠다.
태우고 봉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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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 용지를 꺼냈다.
파란 줄 서른여섯이라고 적었다.
적고 나서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추가 서른여섯`
일흔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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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적었는지 나는 지금도 설명할 수 없다.
세림이 서른여섯 장을 가져갔으니 서른여섯을 채우면 된다. 더 시킬 이유가 없다. 파란 줄은 한 달에 두세 장 나가고, 서른여섯이면 일 년 치다.
일흔둘이면 두 해 치다.
그런데 손이 그렇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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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손님이 둘 더 왔다.
하나는 봉투만 샀고 하나는 짧은 사과문이었다. 사과문은 항목이 둘이었다. 늦어서 미안하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다.
두 줄로 쓰면 되는 것을 나는 네 줄로 늘렸다. 손님이 좋다고 했다.
여섯 시에 문을 닫았다.
닫기 전에 봉투 진열 앞에 섰다.
파란 줄 자리에 손을 넣어 봤다. 안쪽 판까지 손이 닿았다. 먼지가 없었다.
세림이 이 주 전에 여기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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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을 뺐다.
손끝에 아무것도 안 묻어 있었다.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골목으로 나와 걷다가 열 걸음쯤에서 멈췄다. 뒤에서 누가 부른 것도 아니고 뭘 두고 온 것도 아니었다.
돌아가서 발주 용지를 고칠까 했다.
고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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