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그 아래
월요일 아침에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토요일 저녁에 접은 것이라 접힌 자리가 세 군데 있었다. 펴 놓으면 가운데가 뜬다. 손바닥으로 눌렀는데 다시 떴다.
파란 줄 서른여섯. 추가 서른여섯. 언제까지.
세 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새 용지를 꺼내 위의 두 줄만 옮겼다. 파란 줄 일흔둘이라고 한 줄로 쓸 수 있었는데 두 줄로 썼다.
옮긴 것을 봉투에 넣어 문 옆에 세워 두었다. 월요일 낮에 트럭이 온다.
원래 종이는 도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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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시에 세림이 안 왔다.
목요일 아침 뒤로 연락이 없다. 보낸 것도 그때가 마지막이고 받은 것도 그때가 마지막이다.
앞치마가 못에 걸려 있었다. 세림 것은 끈이 한 번 끊어져서 매듭이 있고, 그 매듭이 안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여덟 번 갔다. 여덟 번째에서 끊었다. 아홉 번째에 자동응답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서 여덟에서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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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시에 손님이 왔다.
쉰 살쯤 된 여자였고 문을 반만 열고 들어왔다. 가게 안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 물었다.
"여기 전에 있던 데 맞죠?"
"자리는 그대로입니다."
"간판이 바뀌었네요."
"오 년 전에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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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카운터로 왔다.
"제가 여기다 편지를 하나 맡겼었는데요."
"이름 여쭤도 되겠습니까."
"조미숙이요."
나는 공책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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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스물몇 장 넘긴 자리에 있었다. 줄이 안 그어져 있다.
날짜가 삼 년 전 시월이다.
"있습니다."
"있어요."
"두 통 쓰셨고 한 통은 그날 가져가셨습니다."
여자가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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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랍 아래 칸을 열었다.
안 찾아간 것은 봉투째 종이 상자에 넣어 둔다. 여덟 해 동안 열한 통이 모였고 상자는 아직 반이 안 찼다.
세 번째 것이 조미숙이었다.
봉투 겉면에 아무것도 안 적혀 있다. 받는 사람을 안 정하고 나가신 분이라 그렇다.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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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봉투를 받았다.
받아서 손에 들고 있었다. 열지는 않았다.
"삼 년이나 됐는데 안 버리셨네요."
"안 버립니다."
"…….."
"값도 안 받았습니다."
여자가 지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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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을 받고 나는 공책에 줄을 그었다.
여자가 그것을 봤다.
"그거 뭐예요."
"찾아가시면 긋습니다."
여자가 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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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나갔다.
봉투는 열지 않고 가방에 넣었다. 문 앞에서 한 번 서더니 그냥 나갔다.
열한 통이 열 통이 됐다.
나는 상자를 닫고 서랍을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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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에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이재였다.
여덟 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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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들어와서 스위치 쪽으로 갔다.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두 개예요?"
"하나 나갔습니다."
"…….."
"지난주에요."
그가 손을 내린 채로 서 있었다. 세 개 중 하나를 끄는 사람인데 두 개 중 하나를 끄면 밝기가 반이 된다.
그는 안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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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았다.
나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카운터에 놓았다. 열네 번 하던 동작이라 손이 알아서 했다.
"이재 씨."
"네."
"왜 안 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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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봤다.
"지방에 있었습니다. 극장이 하나 없어져서요."
"…….."
"조명 다는 데 두 해 걸린 걸 뜯어서 내리는 데 아흐레 걸렸습니다."
"그거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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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답을 안 했다.
나는 기다렸다.
십오 초쯤 있다가 다시 물었다.
"그거 말고 왜 안 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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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카운터를 봤다.
봉투 진열 쪽이 아니라 카운터 나뭇결을 봤다. 거기 볼 게 없다.
나는 공책을 꺼냈다.
폈다. 백 몇 번째 줄이 비어 있다.
"번호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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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요."
"이름 칸하고 번호 칸이 있습니다."
"…….."
"첫날 제가 안 물었습니다."
그가 공책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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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들고 적었다.
이름을 먼저 적고 번호를 적었다. 이름은 한글이고 번호는 아라비아 숫자다. 항목을 적을 때 그는 늘 한글로 적었다. 이천십육년 이월 십육일, 우체통 앞.
번호는 한글로 적을 수가 없다.
적고 나서 공책을 도로 돌려놓았다.
"이제 찾으실 수 있습니다."
"찾을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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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책을 안 덮었다.
"이재 씨."
"네."
"십구일에 도착한 편지요."
"네."
"저희 어머니가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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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조용해졌다.
바깥에서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그 소리가 다 지나갈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어머님이요."
"네."
"…….."
"제 글씨를요."
"두 장 연습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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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웃지 않았다.
웃을 자리가 아닌데 나는 그가 웃을까 봐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을 기다렸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십칠일에 문을 연 사람도 어머님이었습니까."
"네."
"…….."
그가 거기서 끊었다. 그러면 제가 그때, 까지 나오고 다음이 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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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다음을 안 물었다.
물으면 그가 설명하게 된다. 설명하면 말이 정리되고, 정리된 말은 이 사람 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그게 편해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편한 방식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지난주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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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 씨는요."
그가 물었다.
"안 나옵니다."
"…….."
"며칠 됐습니다."
그가 봉투 진열 쪽을 봤다.
파란 줄 자리가 비어 있다. 그는 거기 뭐가 있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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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펜을 들었다.
"항목 주십시오."
그가 가방을 열었다. 여는 데 시간이 걸렸다. 지퍼가 아니라 단추라 원래 시간이 걸리는 가방이다.
꺼낸 것은 접힌 종이였다.
항목 종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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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지 한 장이었다.
팔십 그램이고 가장자리가 노랗다. 위쪽에 몇 줄이 있고 아래쪽이 비어 있다.
십 년 전 그가 쓴 편지의 두 번째 장이다. 십칠일에 부쳤다가 돌아온 것이고, 이 카운터에서 그가 처음 펴 본 것이다.
"오늘은 안 드립니다."
"…….."
"제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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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펜을 놓았다.
놓고 나서 두 자루를 꺼내 그 앞에 놓았다. 하나는 검정이고 하나는 청색이다.
청색은 잘 안 나간다. 십 년 전에는 많이 썼다. 학생들이 쓰던 색이고, 그 편지의 위쪽 몇 줄도 그 색이다.
나는 청색을 앞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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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검정을 집었다.
"그거 쓰시면 색이 다릅니다."
"압니다."
"…….."
"청색으로 쓰면 그때 쓴 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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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위쪽 몇 줄이 안으로 접혀 들어가고 빈 아래쪽만 남았다. 십 년 전에 이 종이는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혔다. 지금은 한 번만 접혔다.
접힌 자리를 손등으로 한 번 눌렀다.
그리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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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안 걸렸다.
두 줄쯤이었고 그가 쓰는 동안 나는 안 봤다. 손님이 쓸 때는 안 보는 것이 규칙이다.
쓰고 나서 그는 접힌 채로 카운터에 놓았다.
"이거 두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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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실 겁니까."
"…….."
"모르겠습니다."
그가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스위치 쪽을 한 번 더 봤다. 그러고는 그냥 나갔다. 문에 달린 종이 두 번 울렸다. 나갈 때 문을 반만 열고 나가는 사람이라 종이 두 번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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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에 문을 닫았다.
닫고 나서 카운터에 앉아 종이를 폈다.
접힌 자리를 펴면 위쪽 몇 줄이 같이 보인다. 나는 위쪽을 안 폈다. 접힌 채로 아래만 봤다.
두 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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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십육년 이월 이십일 저녁 일곱 시`
`시청 앞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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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이었다.
위쪽 청색과 나란히 놓이지 않게 접혀 있어서 색이 다른 것은 안 보였다. 펴면 보인다.
나는 안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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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이십일.
엄마 노트에 오늘도 안 씀이라고 적힌 날이다. 뜯긴 네 장 바로 다음 장이고, 세림이 파란 줄 봉투를 문 밑에서 받고 답을 보낸 날이다.
넉 자를 보낸 날이다.
그날 저녁 일곱 시가 종이에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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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있었다고는 안 적혀 있었다.
적으려면 갔다고 써야 하고, 갔다고 쓰면 그건 오늘 쓴 말이 된다. 그는 십 년 전에 못 쓴 자리를 채웠지 십 년 뒤의 말을 적은 게 아니다.
그러니까 그가 그 시각에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이 종이로는 모른다.
모르는 채로 나는 그 두 줄을 세 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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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을 폈다.
백 몇 번째 줄에 오늘 적은 것이 있었다. 이름 칸에 강이재, 번호 칸에 열한 자리.
이름 위에 줄을 그었다.
번호는 그대로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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