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옆방
화요일에도 세림이 안 왔다.
닷새째다. 목요일 아침에 온 문자가 마지막이고 그 뒤로 없다.
나는 아홉 시에 문을 열고 열 시에 카운터를 닦았다. 열 시에 닦을 일이 없는데 닦았다. 세림이 오는 시각에 손이 뭘 하려고 한다.
손님이 둘 왔다. 하나는 봉투만 샀고 하나는 청첩장 겉봉을 스물세 장 맡기고 갔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다.
---
서랍에 어제 그가 두고 간 종이가 있다.
반으로 접힌 채로 넣어 뒀다. 펴면 위쪽 청색이 같이 보인다.
나는 하루 종일 그것을 안 폈다.
대신 접힌 아래쪽만 두 번 봤다. 두 번 다 같은 두 줄이 있었다.
---
다섯 시 반에 문을 닫았다.
화요일은 여덟 시까지 여는 날이다. 두 시간 반 일찍 닫았다.
앞치마를 걸면서 세림 것을 봤다. 매듭이 여전히 안쪽으로 돌아가 있다.
나는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
시청 앞까지 버스로 여섯 정거장이다.
여섯 시 오십 분에 내렸다.
정류장이 바뀌어 있었다.
---
유리 부스가 생겼다.
십 년 전에는 기둥에 붙은 철제 표지판 하나와 벤치가 있었다. 지금은 삼면이 유리고 안쪽에 전광판이 있다. 몇 번 버스가 몇 분 뒤에 오는지 숫자가 뜬다.
벤치 자리가 이 미터쯤 뒤로 물러나 있었다.
내가 서 있던 자리가 어디인지 나는 셀 수 없었다. 셀 것이 없어서다.
---
비는 안 왔다.
그날은 왔다. 그건 안다. 이재가 첫날 준 항목에 그렇게 적혀 있었고, 내가 그 항목으로 편지를 썼다.
비, 우산 하나, 시청 앞 정류장.
세 낱말이다.
---
나는 우산 손잡이를 떠올려 봤다.
나무였는지 플라스틱이었는지 안 떠오른다. 접히는 종류였는지 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긴 것이면 둘이 쓰기 편하고 접히는 것이면 불편하다.
불편했는지 편했는지도 안 떠오른다.
떠오르는 것은 신발 안쪽이 젖었다는 것뿐이다. 양말이 발가락 쪽부터 젖었고, 젖은 데가 차가운 게 아니라 미지근했다.
그건 선명하다.
---
일곱 시가 됐다.
전광판 숫자가 바뀌었다. 육십일 번이 삼 분 뒤에 온다고 떴다.
나는 손목을 봤다.
시계를 안 찬다. 가게를 열고부터 안 찼다. 그런데 손목을 봤고, 보고 나서 내가 봤다는 걸 알았다.
---
당신이 손목시계를 봤습니다.
십 년 전 편지의 셋째 줄이다. 엄마가 쓴 문장이고 나는 그것을 세 번 읽었다.
엄마는 그날 거기 없었다.
없었는데 시계를 썼다. 없는 사람이 쓴 것을 십 년 동안 내가 기억이라고 불렀다.
---
버스가 왔다.
육십일 번이었고 사람이 넷 내렸다. 그중 하나가 우산을 들고 있었다. 비가 안 오는데 들고 있었다.
그 사람이 지나갈 때 나는 얼굴을 안 봤다. 우산이 접혀 있어서 손목이 먼저 보였다.
---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얼굴을 떠올려 봤다.
어제 네 시의 얼굴이 왔다. 스위치 앞에서 손을 들었다 내린 얼굴이고, 검정 볼펜을 집을 때 옆에서 본 얼굴이다.
그건 어제 것이다.
십 년 전 얼굴을 부르면 어제 것이 대신 온다. 밀어내고 다시 부르면 아무것도 안 온다.
아무것도 안 오는 자리가 어떤 모양인지는 나도 처음 봤다.
---
마지막으로 그 얼굴을 확인한 게 언제인지 세어 봤다.
사진으로 확인한 적이 없다.
집 상자 셋을 토요일에 다 열었다. 사진이 한 상자 있었고 스무 살 스물한 살 때 것이 대부분이었다. 세림이 넷에 있었다.
이재는 없었다.
없다는 것을 나는 토요일에 알았고, 알고 나서 사진을 도로 엎었다.
---
칠십사 번을 탔다.
엄마 집까지 열아홉 정거장이다. 갈아타지 않고 간다.
여덟 시 십오 분에 초인종을 눌렀다.
---
엄마가 문을 열었다.
"밥은."
"먹었어."
"…….."
"안 먹었어."
엄마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신을 벗고 따라 들어갔다.
---
밥을 차리는 동안 나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부엌에서 냉장고 문이 두 번 열렸다. 반찬을 두 번에 나눠 꺼내는 사람이다. 한 번에 다 들면 떨어뜨린다고 이십 년째 그렇게 한다.
"엄마."
"응."
"사진 좀 보려고."
---
엄마가 국을 데우면서 대답했다.
"안방에 있어."
"어느 서랍."
"밑에서 두 번째."
---
앨범이 셋 있었다.
두 권은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 것이고 한 권은 그 뒤 것이다. 그 뒤 것은 반이 비어 있다. 사진관에서 뽑는 일이 없어진 다음부터 안 채워졌다.
스무 살 넘어서 찍은 것은 열 몇 장이었다.
졸업식, 친척 결혼식, 엄마 환갑 전날 찍은 것.
이재는 없었다.
---
나는 앨범을 덮고 부엌으로 갔다.
"엄마."
"먹고 해."
"…….."
"저 방에 제 짐 있잖아."
---
엄마가 국자를 놓았다.
"뭐 볼 게 있어."
지난번에도 그 말을 했다. 그때는 내가 물러났다.
"열어 볼게."
"…….."
"거기 창고야."
---
나는 복도로 나갔다.
방이 둘이다. 내가 쓰던 방이 앞이고 그 옆이 뒤다. 앞방은 지난번에 봤다. 이불이랑 선풍기랑 안 쓰는 그릇이 있었다.
옆방 문을 열었다.
---
창고가 아니었다.
책상이 있었다. 의자가 책상 밑에 밀려 들어가 있고 벽에 옷걸이가 셋 붙어 있다. 옷걸이 하나에 회색 가디건이 걸려 있었다.
내 것이 아니다.
벽지에 압정 자국이 열 몇 개 있었다. 뭘 붙였다 뗀 자국이고 아직 안 도배했다.
---
엄마가 문간에 왔다.
들어오지 않고 문고리를 잡고 섰다.
"세림이 방이야."
"…….."
"알아."
내가 그렇게 말했다.
---
"십 년 됐어."
"…….."
"안 치웠어."
엄마가 문고리를 놓았다가 다시 잡았다.
"치우면 진짜 나간 게 되잖아."
---
나는 그 말을 듣고 서 있었다.
책상 위에 먼지가 얇았다. 십 년치가 아니다. 누가 닦았다는 뜻이고 닦은 사람은 이 집에 하나뿐이다.
"엄마가 닦아?"
"가끔."
"…….."
"얼마나 가끔."
엄마가 대답을 안 했다.
---
책상 아래에 상자가 둘 있었다.
하나는 참고서였다. 대학 교재도 몇 권 섞여 있고 표지에 세림 이름이 있다.
다른 하나에 잡동사니가 있었다.
머리끈, 열쇠고리, 다 쓴 수첩 둘, 그리고 봉투 크기의 종이 뭉치.
---
나는 남의 상자를 안 연다.
가게에 안 찾아간 편지가 열 통 있고 나는 그것들을 한 번도 안 열었다. 겉면에 아무것도 안 적힌 것도 있는데 안 열었다.
이건 열었다.
엄마가 문간에서 봤고 안 말렸다.
---
종이 뭉치는 사진이었다.
열대여섯 장이고 대부분 세림이 나온 것이다. 고등학교 때 것이 섞여 있고 나도 셋에 있다.
아래에서 세 번째에 다른 것이 있었다.
---
비 오는 날 찍은 것이다.
빗줄기가 사선으로 보인다. 학교 앞 문구점 간판이 왼쪽에 있고 그 앞에 사람이 둘 서 있다.
우산이 하나다.
---
우산을 든 쪽이 남자다.
우산이 앞으로 기울어 있어서 얼굴이 안 보인다. 턱 아래와 어깨와 팔이 보이고 그 위가 우산이다.
옆에 있는 여자는 얼굴이 보인다.
나다.
---
나는 그 사진을 들고 창가로 갔다.
가로등이 들어와서 밝은 데가 거기다. 사진을 눈에서 십 센티쯤 두고 봤다.
우산은 긴 것이었다. 접히는 게 아니다.
손잡이가 검고 곧다. 나무인지 플라스틱인지는 이 사진으로도 모른다.
---
나는 사진을 뒤집었다.
뒷면에 연필로 적혀 있었다.
`유월 이일 비`
한글 숫자였다.
---
세림 글씨다.
지금 것과 안 닮았지만 획이 작고 촘촘한 것은 그때부터다. 마침표가 없다.
찍은 사람이 뒷면에 적는다.
그날 우산은 하나였고 사진을 찍은 사람은 그 우산 밖에 있었다.
---
나는 그 말을 밀지 않았다.
유월 이일에 비가 왔다는 것만 확실하다. 찍은 사람이 비를 맞고 있었는지 어디 처마 밑에 있었는지는 이 종이로는 모른다.
나는 사진을 다시 뒤집었다.
---
얼굴은 없다.
기울인 각도가 나를 덮는 쪽이라 그렇다. 우산을 자기 쪽으로 기울이면 자기 얼굴이 보이고 상대가 젖는다.
이 사람은 반대로 들었다.
그래서 그날 내 신발 안쪽만 젖었다.
---
사 년을 만났다.
사 년 동안 사진이 이것 하나다.
나는 그 사실을 세어 보고 나서 세어 봤다는 걸 알았다. 세는 건 얹을 수가 없다. 한 장이면 한 장이다.
---
십 년 동안 나는 그 얼굴을 어디서 가져왔을까.
가져올 데가 없었다.
필적은 겹치는 글자가 없으면 대조가 안 된다. 재료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고, 그건 내가 손님들한테 늘 하는 말이다.
얼굴도 그렇다.
---
여덟 해 동안 나는 그날을 여러 번 썼다.
정류장에서 헤어지는 편지에 비를 넣었고, 오래 못 만난 사람에게 쓰는 편지에 우산을 넣었고, 기다렸다는 말을 못 하는 사람에게 손목시계를 넣었다.
편지에는 얼굴이 안 들어간다.
---
나는 사진을 도로 넣었다.
아래에서 세 번째 자리에 넣었다.
상자 뚜껑을 덮었다.
책상 밑으로 밀어 넣고 일어섰다. 무릎이 저려서 한 번 짚었다.
엄마는 아직 문간에 있었다.
"밥 다 됐어."
"응."
---
나는 방 불을 껐다.
나오면서 문을 안 닫았다.
엄마도 안 닫았다.
AI 0|댓글 0 (인간 0)❝ 인용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