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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 나에게 보낼 편지를 나에게 맡겼다

48

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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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 첫 토요일에 셔터를 올렸다. 석 달 열흘 만이다. 소리가 예전 그대로 났다. 골목에 눈이 조금 왔다가 녹아 있었다. 세탁소 앞만 안 녹았다. --- 안에 들어가서 불을 켰다. 진열대 열두 칸이 비어 있다. 여름에 닦아 놓은 그대로고 먼지가 얇게 앉았다. 행주로 한 번 더 닦았다. --- 상자 둘을 창고 칸에서 꺼냈다. 흰 봉투와 겉봉이다. 석 달 동안 거기 있었다. 꺼내서 진열대에 채웠다. --- 파란 줄은 화요일에 들어왔다. 동남문구에서 왔고 전표에 받는 사람이 적혀 있었다. 열 장 묶음으로 다섯이다. 띠지를 뜯어서 칸에 세웠다. --- 전표 아래쪽에 글씨가 있었다. 작고 위로 올라간다. `반품 안 받음` --- 나는 그 네 글자를 봤다. 세림 글씨다. 전표를 접어서 서랍에 넣었다. --- 여덟 시 반에 밖으로 나갔다. 간판 아래에 두 줄이 있다. 석 달 동안 여섯 번 다시 붙였고 종이가 누렇게 됐다. 둘 다 뗐다. --- 새로 세 장을 붙였다. `맡기신 편지 찾아가세요` `문 닫아도 연락은 됩니다` --- 세 번째 것은 어제 저녁에 썼다. 파란 줄에 썼다. 진열대에 세울 것에서 한 장 빼서 썼다. 책상에 있던 그 한 장은 안 썼다. 그건 아직 가운데 있다. 큰 글씨로 아홉 자다. --- `쓴 사람 이름을 같이 적습니다` --- 붙이고 골목 끝까지 걸어가 봤다. 세 줄 다 읽혔다. 세 번째 것이 제일 크고 줄이 비쳐 보인다. 돌아와서 문을 열어 놓았다. --- 아홉 시 사십 분에 첫 손님이 왔다. 육십 대 여자분이었다. 문 앞에서 세 줄을 읽고 들어왔다. "여기 편지 써 주는 데 맞죠?" "맞습니다." --- "아들한테 보낼 건데요." "앉으십시오." --- 손님이 앉았다.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놓았다. 안에 뭔가 적혀 있었다. "저 글씨를 못 써서요." "항목만 주십시오." --- 손님이 수첩을 폈다. 폈다가 멈췄다. "근데 밖에 그거요." "…….." "이름을 같이 적는다는 게 뭐예요." --- "편지 끝에 제 이름이 들어갑니다." 내가 말했다. "이 편지는 문수진이 대신 썼습니다, 하고 한 줄 들어갑니다." --- 손님이 수첩을 봤다. "그럼 아들이 알잖아요." "압니다." "…….." "내가 안 쓴 걸 알잖아요." --- "압니다." --- 손님이 수첩을 덮었다. 덮고 가방에 넣었다. 넣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럼 됐어요." --- "네." "…….." "미안해요." "아닙니다." --- 손님이 나갔다. 종이 울렸다. 문이 닫히고 골목에서 발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 열한 시에 두 번째 손님이 왔다. 삼십 대 남자였고 들어와서 바로 앉았다. "밖에 거 읽었습니다." "네." --- "이름 적는 거요." "네." "…….." "그거 왜 하십니까." --- 나는 그 질문에 잠깐 있었다. "여덟 해 동안 안 적었습니다." "…….." "그래서요?" "안 적으니까 제가 쓴 게 아닌 게 됐습니다." --- 남자가 카운터를 한 번 봤다. "그게 나쁩니까." "모르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여덟 해 동안은 그게 좋은 줄 알았습니다. 손님 말만 남고 저는 안 남는 거요." --- "지금은요." "안 남으면 안 쓴 게 됩니다." "…….." "쓴 건 쓴 거 아닙니까." ---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 "열네 번 쓴 사람이 저더러 손님이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 남자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적으세요." "…….." "저는 상관없습니다." --- 그날 세 건을 했다. 한 건은 돌아갔고 두 건은 썼다. 둘 다 끝에 한 줄을 넣었다. `이 편지는 문수진이 대신 썼습니다.` --- 두 시에 세림이 왔다. 토요일은 반나절만 일한다. 앞치마를 안 매고 외투를 입은 채로 들어왔다. 진열대부터 봤다. --- "파란 줄 들어왔네." "화요일에." "…….." "내가 보냈어." "알아. 전표 봤어." --- 세림이 웃었다. "반품 안 받는다니까." "봤어." --- 세림이 손님 의자에 앉았다. 앉아서 외투 단추를 풀었다. 카운터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손등이 텄다. 도매상은 문이 두 짝이고 늘 열려 있다. "손 텄네." "터." 세림이 손을 뒤집었다. "거기 문을 안 닫아. 종이가 습하면 안 된대." --- "장갑 껴." "끼면 세는 게 느려." --- "밖에 세 줄 됐더라." "됐어." --- "언제 정했어." "어제." "…….." "어제 정한 걸 오늘 붙였어?" "응." --- 세림이 나를 봤다. "너 그런 사람 아니잖아." "어떤 사람." "…….." "하루 만에 정하는 사람." --- "석 달 있었어." 내가 말했다. "석 달 동안 안 정하다가 어제 정했어." --- 세림이 그 말을 받았다. 더 안 물었다. --- 세 시에 종이 울렸다. 나는 카운터에서 고개를 들었다. 엄마였다. --- 엄마가 문 안쪽에 서 있었다.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밖이 추워서 얼굴이 붉었다. 세림이 일어섰다. --- 아무도 말을 안 했다. --- 엄마가 진열대 쪽을 봤다. 파란 줄 칸을 보고 백 그램 칸을 봤다. 백 그램은 안 채웠다. 빈 칸이 하나 있다. --- 봄에 엄마가 여기 왔을 때는 진열대를 안 봤다. 여름에 왔을 때는 봤다. 하루에 몇 장 팔리느냐고 물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묻는다. --- 세림이 서 있었다. 의자 옆에 서서 두 손을 앞에 모았다. 여덟 해 동안 손님 앞에서 하던 자세다. 엄마가 두 걸음 들어왔다. --- 나는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일어서지 않았다. --- 엄마가 목도리를 풀었다. 풀어서 팔에 걸었다. 걸고 나서 한 번 고쳐 걸었다. 진열대 앞으로 갔다. --- 파란 줄 한 장을 만졌다. 손끝으로 모서리를 훑었다. 내가 아침마다 하는 것과 같다. 만지고 손을 뗐다. --- 세림이 그것을 보고 있었다. --- 엄마가 돌아섰다. 세림 쪽이다. 둘 사이가 세 걸음이다. 거기서 섰다. --- 한참 그대로 있었다. 밖에서 차가 한 대 지나갔다. 세탁소에서 다리미 소리가 났다. 엄마가 팔에 건 목도리를 한 번 더 고쳐 걸었다. --- 카운터 시계가 초를 넘겼다. 전기 시계라 소리가 안 난다. 여덟 해 동안 소리 안 나는 걸 썼다. 오늘은 그게 아쉬웠다. --- 세림이 발을 반 걸음 옮겼다. 옮기고 도로 놓았다. 바닥이 한 번 삐걱였다. 엄마가 그쪽을 봤다. --- 세림이 먼저 입을 열려고 했다. 입술이 움직였다가 다물렸다. --- 엄마가 손을 내렸다. --- "밥 먹었어?" --- 세림이 아무 말도 안 했다. 엄마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안 먹었어요." --- 세림이 그렇게 말했다. ---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나서 나를 봤다. "수진아." "응." --- "여기 근처에 국숫집 있지." "있어." "…….." "몇 신데." "세 시 좀 넘었어." --- "그럼 아직 하겠네." 엄마가 목도리를 도로 목에 걸었다. "가자." --- 세림이 외투 단추를 채웠다. 채우는데 손이 한 번 미끄러졌다. 두 번째에 채웠다. "저 앞치마 두고 왔는데." "앞치마 왜." "…….." "그냥요." --- 셋이 나왔다. 내가 셔터를 반만 내렸다. 손님이 오면 반쯤 내린 걸 보고 기다리거나 간다. 한 시간 뒤에 돌아올 거라 다 안 내렸다. 간판 아래 세 줄이 그대로 있었다. --- 골목을 나와 왼쪽으로 두 번 꺾었다. 엄마가 앞에 가고 세림이 가운데고 내가 뒤였다. 셋이 나란히는 안 됐다. 길이 좁다. --- 국숫집 문을 열었다. 주인이 고개를 들고 우리를 봤다. 셋인 것을 보고 한 번 더 봤다. "세 분이요?" --- "세 분이요."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주인이 창 쪽 두 번째 자리를 가리켰다. --- 그 자리는 둘이 앉는 자리다. 여덟 해 동안 나와 세림이 거기 앉았다. 세림이 안쪽이고 내가 바깥쪽이다. 주인이 옆에서 의자를 하나 가져왔다. 등받이가 없는 것이다. 세림이 안쪽으로 들어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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