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손님이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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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에 문자를 보냈다.
`밥 나와?`
세림이 십 분 뒤에 답했다.
`나와. 구내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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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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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두 자를 한참 봤다.
`엄마가 물어보래`
보내고 전화를 엎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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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시에 켜 봤다.
읽음 표시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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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시에 답이 왔다.
`뭐라고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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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네 자를 봤다.
엄마는 알고 싶다고만 했다. 전해 달라는 말은 안 했다.
`몰라`
`나도 몰라서 물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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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물어본 걸로 전해`
세림이 그렇게 보냈다.
`그게 다야?`
`그게 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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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에 가게에 갔다.
테이프를 챙겨 갔다. 비가 이틀 왔고 간판 아래 두 줄이 또 떨어졌을 것이다.
골목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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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가 서 있었다.
간판 아래다. 두 줄을 보고 있었다.
회색 외투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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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음을 멈췄다.
이재가 돌아봤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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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이 한쪽만 붙어 있었다.
바람에 들려서 종이가 뒤집혀 있었다. 이재가 그것을 손으로 눌러 놓았다.
"떨어졌던데요."
"붙이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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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테이프를 꺼냈다.
네 귀퉁이를 다 붙였다. 지난번에는 두 군데만 붙였다.
붙이고 손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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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기신 편지 찾아가세요`
`문 닫아도 연락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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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 크네요."
"멀리서 보라고요."
"…….."
"멀리서 보고 그냥 가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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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겠지요."
내가 그렇게 말했다.
이재가 두 줄에서 눈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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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좀 열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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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를 올렸다.
안이 비어 있다. 진열대 열두 칸이 다 비었고 카운터만 남았다.
이재가 들어와서 한 번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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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파셨습니까."
"반품했습니다."
"…….."
"반품이 됩니까."
"띠지 안 뜯은 것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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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가 손님 의자에 앉았다.
앉고 나서 무릎에 손을 놓았다. 여덟 해 동안 열네 번 앉은 자리다.
의자가 한 번 삐걱였다. 다리 한쪽이 짧아서 봄에 종이를 접어 괴어 놨다.
나는 카운터 안쪽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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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라는 말을 안 했는데 앉았다.
열네 번 중에 열세 번은 내가 앉으시라고 했다. 한 번은 안 했다.
한 번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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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 안 오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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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이재가 외투 단추를 하나 풀었다.
"두 시 것하고 다섯 시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두 시 것에 있었고요."
"…….."
"다섯 시 것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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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보셨습니까."
"두 번 봤습니다."
이재가 말했다.
"같은 걸 두 번 보면 두 번째에 딴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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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조용했다.
밖에서 세탁소 사람이 옷을 내걸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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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접힌 것이고 봉투에 안 들어 있었다.
카운터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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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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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이를 안 폈다.
"뭘 쓰시겠습니까."
"쓸 게 아닙니다."
이재가 종이를 손끝으로 반 뼘 밀었다.
"제가 받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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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신다고요."
"열네 번 그랬습니다."
이재가 그렇게 말했다.
"제가 항목을 드리고 문장은 문 선생이 만들었습니다. 받는 사람이 저였고요."
"…….."
"열다섯 번째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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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운터를 짚고 있었다.
"열넷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압니다."
"…….."
"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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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고 제가 안 했습니다."
이재가 말했다.
"문 선생이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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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받았다.
십사 회차를 내보낸 날 내가 그렇게 말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하고.
그날 이재는 알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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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은 몇 개입니까."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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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들었다.
열네 번 중에 하나짜리는 없었다. 제일 적었던 게 셋이고 제일 많았던 게 아홉이다.
아홉이었던 날은 여섯째 해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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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면 그냥 쓰시면 됩니다."
"제가 쓰면 제 말이 됩니다."
이재가 그렇게 말했다.
"열네 번 동안 저는 제 말을 안 들었습니다. 문 선생 말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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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이를 봤다.
접힌 채로 있다.
"펴 보겠습니다."
"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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폈다.
한 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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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왜 안 왔는지 묻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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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의 글씨다.
획이 가늘고 종이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접수 공책의 그 한 줄과 같다.
나는 그것을 두 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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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항목입니까."
"항목입니다."
"…….."
"이건 문장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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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입니다."
이재가 말했다.
"그래서 문 선생이 항목으로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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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손을 뗐다.
종이가 카운터 가운데 있었다. 한쪽 귀퉁이가 접힌 자국을 따라 들려 있다.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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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가 고개를 들었다.
"왜 못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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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사람이 선생님이면 제가 씁니다."
내가 말했다.
"그런데 이건 저한테 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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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제가 받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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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카운터에서 손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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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을 주십시오, 라고 제가 여덟 해 동안 말했습니다."
"들었습니다."
"그건 손님한테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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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손님입니다."
"아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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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가 나를 봤다.
"언제부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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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은 날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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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세탁소 문이 닫혔다.
이재가 무릎에 놓은 손을 한 번 폈다가 다시 놓았다.
"그날 저한테 연락을 안 하셨습니다."
"안 했습니다."
"…….."
"열네 번 오던 데가 없어졌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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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가 공책에 있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 줄은 선생님이 적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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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가 그 말을 들었다.
"기억합니다."
"…….."
"제가 적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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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해 동안 공책에 손님이 직접 쓴 건 그것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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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직접 쓰셨습니까."
이재가 잠깐 있었다.
"그날 문 선생이 손이 젖어 있었습니다."
"…….."
"종이를 만지다 오셨던 모양입니다. 펜을 드시려다 수건을 찾으시길래 제가 받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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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들었다.
그런 날이 여덟 해 동안 여러 번 있었다. 수건은 카운터 아래 둘째 칸에 있다.
그날만 손님이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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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가 종이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당겨서 접었다.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었다.
네 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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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가겠습니다."
"가져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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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가 일어섰다.
일어서서 진열대 쪽을 한 번 봤다. 열두 칸이 비어 있다.
"여기 뭐가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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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줄이요."
"…….."
"파란 줄이 뭡니까."
"줄 있는 편지지요. 제일 많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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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 쓰신 것도 그겁니까."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선생님 건 팔십 그램 흰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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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가 문 쪽으로 갔다.
문고리를 잡고 섰다.
"문 선생."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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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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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습니다."
"…….."
"석 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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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가 문을 열었다.
종이 울렸다.
"그때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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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으로요?"
내가 물었다.
이재가 돌아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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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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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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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에 셔터를 내렸다.
내리기 전에 밖에 나가서 두 줄을 봤다. 네 귀퉁이가 다 붙어 있었다.
골목 끝에서도 글씨가 보였다.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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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전화했다.
신호가 세 번 갔다.
"응."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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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봤어."
"…….."
"나온대. 구내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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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잠깐 있었다.
"그래."
"…….."
"그래, 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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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해."
내가 물었다.
엄마가 대답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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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응."
"세림이가 뭐라고 전하냐고 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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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했니."
"물어본 걸로 전한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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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숨을 한 번 쉬었다.
"그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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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응."
"여덟 번째 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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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참 있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냉장고 소리가 났다.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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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었다.
책상에 종이가 다섯 장 있다. 파란 줄 한 장이 가운데 있다.
나는 그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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