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밀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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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의 손가락이 문턱 나무에 닿은 채로 아침 하나가 흘렀다.
밀지 않았다. 떼지도 않았다. 국물이 식었다. 여산은 그 그릇을 치우지 않았다. 김이 사라진 자리에 얇은 기름막이 앉았다.
"오래 그러고 있소." 여산이 말했다. "손이 아프지 않소."
"이십 년을 벼른 손이오." 사내가 말했다. "하루 짚는 건 아무것도 아니오."
여산은 사내의 손을 봤다. 문턱을 짚은 손. 그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무거운 것을 든 손처럼. 그런데 소맷자락 안, 다른 손. 그쪽이 아주 작게 굽었다 폈다. 한 번. 여산은 그것을 봤다.
밀려는 손은 문턱 위가 아니었다. 소매 안이었다.
여산은 국자를 놓았다. 부뚜막 위로 손을 뻗지 않았다. 대신 상 아래로 손을 넣었다. 매향이 여산의 손을 봤다. 도련도 봤다.
"저 손은 문턱을 짚어 나를 붙잡소." 여산이 낮게 말했다. "다른 손이 벤다. 삯을 매기는 손과 베는 손이 따로라 했지. 흑연방이 그리 말했지. 거짓이었소. 한 몸이오. 문턱 밖에서, 두 손으로."
사내가 처음으로 웃었다. 소리 없이.
"셈이 빠르오, 주인장." 사내가 말했다. "그래서 스무 해 전에도 값을 받아내기 어려웠지."
매향이 종이를 폈다. 이번엔 말하지 않았다. 접힌 것을 폈다가, 반으로 다시 접었다. 상 위에 놓았다. 국물 자국이 밴 자리에. 셈은 내가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접힌 종이가 대신했다.
사내의 소매 안 손이 다시 굽었다. 이번엔 조금 더.
"저 아이는 물독 뒤에 있소." 사내가 말했다. "물 붓는 손을 보고 알았지. 나는 손만 보오. 이름은 안 보고. 손 하나 지우면 줄 하나 지워지오. 간단한 셈이오."
"간단하지 않소." 매향이 말했다. 처음으로 앉았다. 문턱을 등지고. 도련 앞에. "그 줄엔 두 이름이 있소. 오라비와 저 아이. 당신은 두 손을 한 줄에 묶었소. 나는 그 줄을 물려받았소. 지우는 건 당신이 아니라 내가 정하오."
사내의 손가락이 문턱에서 반 치 떴다. 밀려는 각도였다.
그 순간 도련이 물독 뒤에서 나왔다. 반 걸음. 이번엔 물러서는 걸음이 아니었다. 앞으로. 물지게의 물통 하나를 손에 들고. 젓가락도 칼도 아니었다. 물통이었다. 그 손이 여산의 옛 각도로 물통 손잡이를 쥐었다. 비스듬히. 무거운 것을 든 손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할아버지." 도련이 여산을 불렀다. 조심스러웠으나 멈추지 않았다. "제 손이 떨린 건, 무거워서가 아니었어요. 내려놓을 줄 몰라서였어요. 이제 뭘 들어야 할지 알겠어요."
도련이 물통을 문턱 안쪽 바닥에 놓았다. 문턱을 넘지 않는 자리에. 물이 찰랑였다. 흔들림 없이 내려놓은 손이었다.
여산의 손이 상 아래에서 멈췄다. 부러진 칼이 그 손에 닿아 있었다. 스무 해 만에. 헝겊 없이, 흙 없이. 그러나 여산은 그것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손끝만 얹었다. 차가웠다. 스승의 피가 배었던 쇠. 여산은 그 온도를 오래 잊고 있었다.
"삯을 매기던 손." 여산이 말했다. "당신은 두 손이 다 벤다 했소. 그런데 스무 해 전, 내가 아이를 안고 달아날 때. 당신 손은 삯을 다시 매겼지. 나를 안 벴소. 왜 안 벴소."
사내의 손이 문턱 위에서 멎었다. 소매 안 손도 멎었다. 처음으로.
"값이 안 맞았소." 사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때는."
"지금은 맞소?" 여산이 물었다.
밖에서, 낮은 아침 빛이 사내의 두 손을 다 비췄다. 문턱 위의 손과 소매 안의 손. 둘 다 멈춰 있었다. 여산은 부러진 칼에서 손을 뗐다. 대신 국자를 들었다. 솥에서 국물을 펐다. 식은 그릇을 물리고, 새 그릇을 문턱 자리에 놓았다. 김이 다시 올랐다.
"값을 매기려거든 뜨거운 걸 매기시오." 여산이 말했다. "식은 셈은 안 받소."
사내의 목울대가 한 번 움직였다. 문턱을 짚은 손이, 아주 천천히, 무언가를 고르고 있었다. 세 그릇 너머, 도련이 내려놓은 물통이 조용히 찰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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