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뜨거운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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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맞소?" 여산은 다시 묻지 않았다. 물은 한 번이면 됐다. 새 그릇에서 김이 올랐다. 여산은 국자를 솥에 걸쳐 두고 사내의 두 손을 봤다. 문턱 위의 손과 소매 안의 손. 둘 다 아직 무언가를 고르고 있었다.
밖에서, 아침 빛이 조금 더 높이 올랐다.
"값이 안 맞았소, 그때는." 사내가 마침내 입을 뗐다. 목소리가 낮았다. 여산이 던진 물음과 이 대답 사이에, 아침 하나가 통째로 흘렀다. "스무 해 전, 당신 품에 아이가 있었소. 나는 아이 값을 받고 왔지. 당신 값은 없었소. 삯에 없는 걸 베면, 셈이 어긋나오. 흑연방의 셈은 그렇소. 없는 값은 안 벤다."
"그래서 나를 살렸군." 여산이 말했다.
"살린 게 아니오." 사내의 소매 안 손이 아주 작게 굽었다. 그러나 이번엔 베려는 각도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쥐었다 놓는 손이었다. "셈에 없어서 지나쳤을 뿐이오. 그런데 지나친 값이 스무 해를 따라다녔소. 당신은 아이를 숨겼고, 나는 그 아이 값을 여태 못 지웠소. 이제 두 값이 한 줄에 모였지. 저 아이와 당신. 오늘 지우면 셈이 맞소."
매향이 상 위의 접힌 종이에 손을 얹었다. 펴지 않았다. 국물 자국이 밴 자리 그대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이 종이를 눌렀다. 셈은 자신의 것이라는 말을, 이번엔 손끝이 대신했다.
"할아버지." 도련이 물독 뒤에서 다시 한 걸음 나왔다. 이번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빈손이었다. 그 손이 여산의 옛 각도로 굽어 있었다. 비스듬히. 그러나 떨리지 않았다.
"뒤로 가라." 여산이 짧게 말했다.
"아니요." 도련이 멈추지 않았다. 사내를 봤다. "제 값을 지우러 오셨다면, 여기 있어요. 물독 뒤가 아니라."
사내의 문턱 짚은 손이 반 치 떴다. 밀려는 각도. 여산의 손끝이 저려왔다. 그는 상 아래로 손을 넣었다. 부러진 칼. 차가운 쇠. 스무 해 만에 손바닥이 그 자루를 감쌌다.
들지 않았다. 여산은 칼을 상 아래에 둔 채, 그 손으로 대신 그릇을 밀었다. 문턱 자리의 새 그릇을. 김이 오르는 것을. 사내의 손 바로 앞으로.
"당신 셈은 저 아이 값이 없어서 어긋났다 했지." 여산이 말했다. "지금도 없소. 저 아이는 이 골목 노파가 거둔 도련이오. 흑연방 장부의 씨앗이 아니라, 물 긷는 아이요. 벤다고 지워지는 줄이 아니오. 여기, 뜨거운 그릇 하나가 그 값이오. 매기려거든 이걸 매기시오."
사내의 두 손이 멎었다. 문턱 위의 손도, 소매 안의 손도.
"스무 해 전 당신은 없는 값을 안 벴소." 여산이 낮게 말했다. "그 손버릇이 아직 남았다면, 오늘도 없는 값은 못 베오. 저 줄엔 이제 아이 값이 없소. 내가 지웠소. 국밥집 장부에 도련이란 이름으로 다시 적어서."
밖에서, 사내의 손가락이 문턱 나무를 아주 천천히 긁었다. 오래 벤 손이 하는, 마지막으로 무게를 재는 동작이었다. 그리고 그 손이 문턱에서 떨어졌다. 반 치가 아니라, 온전히.
사내는 소매 안의 손을 마저 꺼냈다. 빈손이었다. 그 손이 그릇을 집었다. 김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그는 문턱 밖에 선 채, 국물을 한 모금 넘겼다.
"뜨겁소." 사내가 말했다.
"식은 셈은 안 받는다 했소." 여산이 국자를 솥에서 뗐다.
매향이 종이를 폈다. 이번엔 상 위에서. 오라비의 이름 옆, 한 줄. 그녀는 그 줄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지우지 않았다. 아직은. 사내가 문턱 밖에서 그릇을 비우는 동안, 매향은 그 줄을 오래 봤다.
여산의 손이 상 아래에서 부러진 칼을 놓았다. 헝겊도 흙도 없이, 그냥 상 아래에. 스무 해를 묻어둔 자리가 아니라, 손 닿는 자리에. 다시 들 일이 있을지는 몰랐다. 지금은 아니었다.
도련이 빈 그릇을 하나 집어 부뚜막으로 갔다. 처음으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세 그릇 더." 여산이 말했다. 문턱 밖의 사내를 향해서가 아니었다. 안의 세 자리를 향해서였다. 아침 빛이 문턱 위에 얇게 앉았다. 아무도 베지 않은 채, 하루가 또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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