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열지 않은 사람
오단은 사흘째 물만 마셨다.
서진하는 아침마다 죽을 쑤었고 아침마다 그것을 다시 들고 나왔다. 나흘째 되는 날에는 쑤지 않았다. 쑤지 않은 것이 포기인지 존중인지 스스로도 몰라서, 그는 부엌에 서서 쌀을 세었다. 한 홉이 몇 알인지 세다가 백스물을 넘기고 놓쳤다.
방에는 궤짝이 있었다.
어른 무릎쯤 오는 높이에 팔을 벌린 것보다는 좁았다. 겉을 싼 가죽이 다 닳아 나뭇결이 드러났고, 모서리 네 곳은 쇠로 감았는데 그 쇠도 검게 삭았다. 사 년 전 서진하가 이 집에 들어온 날에도 궤짝은 저 자리에 있었다.
방 한가운데였다.
벽에 붙어 있지 않았다. 오단은 그것을 벽 쪽으로 옮긴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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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야.”
서진하는 문지방을 넘었다.
오단은 눈을 뜨고 있었다. 사흘 전부터 몸을 일으키지 못했는데 눈만은 흐려지지 않았다. 늙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먼 데를 오래 본 사람의 눈이었다.
“창을 열어라.”
서진하는 열었다.
바깥은 흐렸다. 마당 끝에 대추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 너머로 길이 보였다. 북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 마을에서 북으로 가려면 그 길밖에 없다.
오단은 그쪽을 봤다.
“오늘 며칠이냐.”
“열이렛날입니다.”
“…….”
“팔월 열이레입니다.”
오단은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끄덕였다기보다 턱이 한 번 내려갔다.
“늦었구나.”
“무엇이 말입니까.”
오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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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하는 사 년 동안 이 사람에게 세 가지를 배웠다.
짐을 지는 법. 셈을 소리 내어 세는 법. 그리고 묻지 않는 법이다.
셋 중에 마지막 것을 그는 끝내 잘 배우지 못했다.
“표두님.”
“…….”
“저 궤짝은 어디로 갑니까.”
오단의 눈이 창에서 방 안으로 돌아왔다. 궤짝을 봤다. 사 년 동안 매일 아침 봤을 그것을 오늘도 똑같이 봤다.
“회읍이다.”
“회읍이 어딥니까.”
“북로 끝이다.”
서진하는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사 년 동안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이름이었다.
“얼마나 걸립니까.”
“걸어서 두 달.”
“…….”
“사십 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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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단은 숨을 한 번 골랐다. 고르는 데 오래 걸렸다.
“진하야.”
“네.”
“여섯째에서는 소리를 내라.”
서진하는 그 말을 들었고, 들은 그대로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여섯째가 무엇입니까.”
“자리다.”
“…….”
“여섯 번째 자리다.”
“어디에 있습니까.”
오단은 눈을 감았다. 감았다가 다시 떴다.
“모른다.”
서진하는 무릎을 조금 앞으로 밀었다.
“표두님이 모르십니까.”
“나는 그 자리를 안 지났다.”
“…….”
“여섯을 다 지나야 아는 건데 나는 다섯에서 돌아섰다.”
오단의 손이 이불 위에서 조금 움직였다. 무언가를 가리키려다 만 것 같았다.
“장부에 있다.”
“장부가 어디 있습니까.”
“한씨한테 있다.”
“한씨가 누굽니까.”
오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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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자시가 지나서 오단이 죽었다.
서진하는 그 곁에 앉아 있었다. 숨이 끊긴 것을 바로 알았는데도 손을 놓지 않았다. 놓으면 무언가를 해야 하고,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웃을 부르고 관에 알리고 자리를 정하는 일이다.
그는 그 일들을 셌다.
하나, 이웃. 둘, 관. 셋, 자리. 넷은 무엇인가.
넷에서 막혔다. 막힌 채로 오래 앉아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에 손을 놓았다. 오단의 손은 짐을 진 사람의 손이었다. 손바닥 한가운데가 굳어 두꺼웠고 그 두께가 죽어서도 그대로였다.
서진하는 궤짝을 보지 않고 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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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에 온 사람은 둘이었다.
객잔 주인이 왔다. 오단이 삯일을 나갈 때마다 짐을 맡아 준 사람이다. 술을 한 병 놓고 반 시진쯤 앉았다가 갔다.
나머지 하나는 관에서 온 서리였다.
서리는 젊었고 종이를 들고 왔다. 마당에 서서 붓을 꺼냈다.
“성명.”
“오단입니다.”
“나이.”
“모릅니다.”
서리가 붓을 들었다.
“모른다니.”
“본인이 말한 적이 없습니다.”
“…….”
“일흔은 넘었을 겁니다.”
서리는 무언가를 적었다. 적고 나서 방 쪽을 봤다. 문이 열려 있어서 궤짝이 보였다.
“유품은.”
“없습니다.”
“저건.”
서진하는 그쪽을 봤다.
“저건 유품이 아닙니다.”
“그럼 뭔가.”
“표물입니다.”
서리의 붓이 멈췄다. 그는 서진하를 한 번 보고 궤짝을 한 번 봤다.
“표국이 어딘데.”
“연수표국입니다.”
“…….”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사십 년 전에 문을 닫았습니다.”
서리가 붓을 내렸다.
“그러면 표물이 아니지.”
“…….”
“맡긴 데도 없고 받을 데도 없는데 무슨 표물인가. 그냥 궤짝이야.”
서진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찾지 못한 채로 서 있었더니 서리가 다시 붓을 들었다.
“유품 궤짝 하나, 이렇게 적네.”
“…….”
“이의 있나.”
서진하는 있었다. 있었는데 그것을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몰랐다. 사 년 동안 저것이 표물이라고 들은 적도 없다. 오단은 저것에 대해 말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없습니다.”
서리는 종이를 접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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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뒤에 그는 집을 비웠다.
솥과 이불은 객잔 주인에게 줬다. 오단의 옷은 태웠다. 남은 것은 짚신 두 켤레와 마른 양식 얼마와 궤짝이었다.
궤짝을 지려고 그는 등짐 끈을 새로 꼬았다. 낡은 끈을 풀어 보니 안쪽이 다 닳아 실이 세 겹밖에 남지 않았다. 오단이 이걸 지고 얼마를 걸었는지 그는 세어 보려다 그만뒀다.
끈을 걸고 무릎을 세웠다.
들리지 않았다.
한 번 더 힘을 줬다. 궤짝이 바닥에서 손가락 두 마디쯤 떴다가 도로 놓였다. 쿵, 하는 소리가 빈방에 울렸다.
서진하는 앉았다.
앉아서 궤짝을 봤다. 사 년 동안 매일 본 것인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은 없었다. 뚜껑과 몸통이 만나는 자리에 종이가 발려 있고, 그 위에 검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는 손을 뻗다가 멈췄다.
만지지 않았다.
대신 무릎을 다시 세우고, 이번에는 허리가 아니라 다리로 밀었다. 궤짝이 등에 올라왔다. 어깨가 뒤로 당겨졌고 목이 저절로 앞으로 나갔다.
그는 두 걸음 걸었다.
세 걸음째에 무릎을 꿇고 궤짝을 내려놓았다. 두 손으로 놓았다. 한 손으로 놓으면 한쪽이 먼저 닿아서 안에 든 것이 쏠린다고, 오단이 언젠가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다.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그는 그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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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나오니 해가 이미 대추나무 위에 있었다.
북으로 가는 길이 보였다. 사 년 동안 매일 본 길이고, 오단이 죽기 전날 마지막으로 본 길이다.
표국에서 길을 나설 때는 표기를 세운다고 배웠다. 국의 이름을 적은 깃발을 표차에 꽂아 두면, 길 위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누가 지나는지 안다.
서진하에게는 표차가 없었다. 깃발도 없었다.
세울 국이 없었다.
그는 궤짝을 지고 마당을 나섰다. 문을 닫지 않았다. 닫을 사람이 뒤에 없었다.
길 위에서 그는 걸음을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백을 넘기고 이백을 넘겼다. 삼백쯤에서 궤짝이 어깨에서 한 번 미끄러졌고, 그는 멈춰 서서 끈을 고쳐 맸다.
고쳐 매고 나서 다시 셌다.
하나부터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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