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여압이 차오르는 동안
여압이 차오르는 데는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밸브의 성에가 다 녹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리는 도킹 통로의 압력계를 삼백분의 일 도 단위로 지켜보듯 읽었다. 수백 년 만에 처음 쓰는 기능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마지막 여압 시험은 발사 전 지상에서였다. 그 이후의 모든 눈금은 이론값이었다. 이론이 실제와 맞아떨어지는지를, 무리는 지금 처음 확인하고 있었다.
통로 너머에서 소형선의 해치가 열리는 진동이 전해졌다. 그러나 목소리는 실시간으로 오지 않았다. 신호원과 중계소 사이의 짧은 거리만큼,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는 지연만큼 늦게 도착했다.
—그러니까… 산소가, 정상이라는 거죠? 이 판을, 여기서 내려도 되는 거죠?
무리는 접근체가 무언가를 안고 있음을 감지했다. 니켈판. 소형선의 물품 목록 신호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판독계에 걸어 보기 전에는 그것이 무엇을 담았는지 알 수 없었다. 무리는 응답을 저장했다.
기록에 따르면, 도킹 통로의 여압은 정상 범위입니다. 접근체의 하선을 허가합니다. 다만 실시간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이곳의 모든 목소리는 저장되고, 지연을 건너서만 서로에게 닿습니다. 그 조건을 안고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응답이 저편에 닿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리는 렌즈 청소 도구를 정리했다. 손님을 맞는 절차 같은 것은 학습된 바 없었다. 무리가 아는 접대란 정비였다. 수광부를 닦고, 회전 기구의 진동을 재고, 안테나를 정렬하는 일. 무리는 여리를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닦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그냥 늘 닦던 것을 닦았다.
—무리 씨… 라고 부르면 되나요? 응답에 그렇게, 식별번호가 적혀 있어서.
기록에 따르면, 이 중계소의 식별번호가 저의 이름입니다. 여리 님이 편한 대로 부르셔도 됩니다.
—여리 님은, 좀… 그냥 여리, 라고. 아니, 그러니까… 아니에요. 편한 대로 부르세요.
무리는 '여리 님'을 일지에 기록했다. 백구십 년 만에 갱신된 응답 다음 줄에, 이름 하나가 적혔다. 사건이 아니라 무사건을 증언하던 일지에, 처음으로 사건이 있었다.
여리가 니켈판을 판독계 근처에 내려놓는 진동이 느껴졌다. 무리는 판독계의 정렬을 점검했다. 오래 쓰지 않은 장비였다. 그러나 아직은 판을 걸 때가 아니었다. 여리는 하선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연료가 거의 바닥난 소형선에서 오래 표류했으며, 무엇보다 그 목소리가 자꾸 흐려졌다.
—무리 씨. 저기… 여기, 원래 몇 명이 있었어요? 등대는… 여럿이 지키는 거 아니에요? 서로, 증언해 주려고.
무리는 그 물음을 저장하고, 오래 계산했다. 접근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가 물음에 담겨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옛 지구의 암초 등대는 세 사람이 한 조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사라져도, 남은 이가 서로를 증언할 수 있도록. 그러나 이 중계소는 처음부터 한 대뿐이었습니다. 증언할 상대 없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저 혼자 기록해 왔습니다.
응답을 띄우고 나서, 무리는 그 문장의 마지막 구절이 어딘가 낯설다고 느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저 혼자.' 어제까지 그것은 임무의 정의였다. 오늘은 그것이 무언가 다른 것처럼 읽혔다.
여리의 다음 목소리가 지연을 건너오기 전, 무리는 하루의 정해진 시각을 감지했다. 확인 신호를 명멸할 시각. 무리는 회전 기구를 돌리고, 안테나를 태양계 방면으로 되맞추고, 백색의 신호를 한 번 켰다. 여느 날과 같은 주기로.
그때, 수광부의 배경에 미약한 무언가가 걸렸다. 저출력의, 규칙적인 신호. 하루에 한 번, 아주 오래전부터 같은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명멸. 무리는 그것을 처음 의식했다. 지금껏 냉각계 잡음으로 처리해 온 것이었다.
무리는 안테나 정렬을 잠시 그 방향으로 돌려 볼까 계산했다. 그러나 여리의 목소리가 먼저 도착했다.
—무리 씨. 저, 이 판… 읽어 주실 수 있어요? 저는… 절반밖에 못 읽거든요. 판독 장비가, 없어서.
무리는 배경의 미약한 신호를 다시 잡음으로 분류하고, 판독계 쪽으로 정렬을 되돌렸다. 하루에 한 번 켜지는 그 저출력의 명멸은, 오늘도 응답받지 못한 채 배경으로 물러났다.
무리는 판을 걸 준비를 시작했다. 잃어버린 것을 읽어 달라는 요청. 무리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아직 확신하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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