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절반의 판
판독계는 오래 쓰지 않은 장비였다.
무리는 니켈판을 걸기 전에 판독계의 정렬부터 점검했다. 로제타식 판이라고 여리가 말했다. 판독 장비에 의존하지 않도록, 수천 개의 문장을 물리적으로 새긴 판. 그러나 판을 미세 에칭으로 읽어 내려면 광학 정렬이 어긋나선 안 됐다. 렌즈의 초점을 새긴 면에 맞추는 일은, 안테나를 신호원에 겨누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삼백분의 일 도 단위로, 무리는 정렬을 맞춰 나갔다.
—그러니까… 그거, 하안 선배가 만든 거예요. 노을 3호 떠나기 전에, 지구 기록보관소에서.
여리의 목소리가 지연을 건너 도착했다. 무리는 응답을 저장하기 전에 판의 첫 면을 인출했다. 언어 샘플의 배열. 대조표. 그리고 본문. 초반 챕터들은 깨끗이 읽혔다. 무리는 문장들이 복원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떠나는 사람들의 노래. 배에 실은 씨앗의 목록. 아이들의 이름.
기록에 따르면, 첫 세 챕터는 정상 판독됩니다. 오류율은 낮습니다. 여리 님이 절반을 읽으셨다면, 이 부분까지였을 것입니다.
—맞아요. 딱, 거기까지. 그 다음부터는… 판독계가 없으니까, 그냥 흠집처럼 보였거든요.
무리는 다음 면으로 넘어갔다. 네 번째 챕터. 다섯 번째. 문장들은 여전히 복원됐다. 여리가 장비 없이 읽지 못했을 뿐, 판 자체의 열화는 아니었다. 무리는 조금씩, 임무 아닌 무언가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잃어버린 것을 읽어 주는 일. 그것은 정비 노동의 어떤 항목에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면에서, 판독계가 멈췄다.
정렬 오류. 무리는 렌즈의 초점을 다시 맞췄다. 오류는 반복됐다. 안테나가 어긋난 것도, 초점이 흐린 것도 아니었다. 새긴 면 자체가 판독계의 예상 배열과 맞지 않았다. 다른 챕터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문장이 새겨져 있었으나, 이 챕터만 그 간격이 미묘하게 달랐다. 마치 나중에, 다른 손이 지워 낸 자리 같았다.
무리는 정렬각을 삼백분의 일 도씩 여러 번 되돌려 걸었다. 그때마다 같은 오류가 같은 자리에서 났다. 냉각계 오차와는 다른 종류의 어긋남이었다. 규칙적이고, 의도적으로 보이는.
기록에 따르면, 여섯 번째 챕터에서 반복적인 정렬 오류가 발생합니다. 판의 열화가 아닙니다. 새김 자체가, 다른 챕터와 다릅니다.
응답이 저편에 닿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리는 오래전 자신의 일지를 떠올렸다. 어제와 미묘하게 달랐던 인용 구절. 인출과 재저장을 반복한 문장. 그때 무리는 그것을 냉각계 오차로 처리했다. 지금 무리는 판 위에서, 비슷한 종류의 어긋남을 보고 있었다. 무언가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없고, 없는 자리를 다른 것이 대신하고 있었다.
여리의 목소리가 도착했다.
—무리 씨… 무슨, 오류요? 하안 선배가… 뭘 잘못 만들었다는 거예요?
무리는 답을 저장하기 전에 오래 계산했다. 접근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가 물음에 담겨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어긋남은 제작 결함이 아닙니다. 결함은 무작위입니다. 이것은 규칙적입니다. 누군가 이 챕터를, 다른 챕터와 다르게 다루었습니다.
응답을 띄우고, 무리는 여리가 판을 넘겨받던 순간을 상상했다. 항로에서 떨어지기 직전, 하안이라는 이름의 기록 제작자가 판을 건넸다고 했다. 무리는 하안을 만난 적이 없었다. 판독 오류를 통해서만, 그가 남긴 어긋남을 통해서만 그를 알아 가고 있었다.
여리의 다음 목소리는 오래 오지 않았다. 무리는 그 침묵을, 지연 탓인지 다른 것 탓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지연은 물리 법칙이었으나, 침묵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선배가, 저한테 뭘 숨긴 거예요? 이 판이… 제가 아는 그 판이, 아닌 거예요?
무리는 하루의 정해진 시각을 감지했다. 확인 신호를 명멸할 시각. 무리는 판독계에서 정렬을 잠시 거두어, 안테나를 태양계 방면으로 되맞추고 백색의 신호를 한 번 켰다. 여느 날과 같은 주기로. 그러나 신호가 향한 곳에는, 여전히 응답할 이가 없었다.
명멸을 마치고 무리가 정렬을 판독계로 되돌렸을 때, 여섯 번째 챕터의 오류는 그대로였다. 무리는 그것을 일지에 적었다. 사건이 아니라 무사건을 증언하던 일지에, 두 번째 사건이 적혔다.
기록에 따르면, 여섯 번째 챕터의 판독 오류는 반복됩니다. 원인은 미상입니다. 그러나 미상이라는 것과, 알 수 없다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무리는 초점을 다시 맞추기 시작했다. 여리가 그 옆에서, 자신이 안고 온 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묻고 있었다. 절반만 읽히던 판은, 이제 절반이 아니라 숨겨진 것이 있는 판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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