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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한 그릇의 값

2

토렴

남설은 국밥을 반만 먹고 숟가락을 놓았다. "어르신." 남설이 물었다. "여기, 붙박이로 문을 여신 지 얼마나 되셨는지요." "열다섯 해." "그럼 그 전에는." 정만호는 국자로 국솥 밑을 훑었다. 밑에 눌어붙지 않도록, 아침마다 같은 손짓이었다. "여기 없었다." "어디 계셨습니까." "됐다. 국 식는다." 남설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끝이 날카로운 눈이 그의 손을 좇았다. 정만호는 그 시선을 등으로 받으며 파를 썰었다. 도마에 칼이 닿는 소리가 고르고 낮았다. 너무 고르다는 것을, 그는 뒤늦게 알았다. 파 써는 손이 저렇게 흔들림 없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손목의 힘을 일부러 풀었다. 복단이 그 사이 부뚜막에 쭈그려 앉아 불을 살폈다. "아 글쎄, 낭자. 이 국밥집이 이 어귀에서 제일 오래됐거든요." 복단이 말끝을 늘였다. "장이 안 서는 날에도 문을 여는 집은 여기뿐이라. 봇짐장수들이 새벽에 들어와 배 채우고 길 나서고 그래요. 낭자도 봇짐 따라다녀 봤수?" "어미와 열여섯 해를 그리 살았지요." 남설이 말했다. "삼남을 안 돈 데가 없습니다." "어이구, 그럼 다리 성한 게 다행이지. 나는 이 다리 하나 상하고 길이 끊겼거든요." 복단이 제 정강이를 두드렸다. "그래 이 집에 눌러앉은 게 다섯 해라." 문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이번엔 절지 않는, 무게가 실린 걸음이었다. 정만호는 파 써는 손을 멈췄다. 차경이었다. 여각 주인은 문지방을 넘기 전에 신을 툭툭 털었다. 소맷자락에 눈이 붙어 있었다. "정 어른, 아침부터 기별 없이 왔소이다." 차경은 뒷짐을 지고 안을 둘러보았다. 남설에게 눈이 잠깐 머물렀다. "손님이 계셨구려. 이 아침에." "차 주인." 정만호는 국자를 내려놓았다. "앉으시오. 국 드릴까." "국은 됐고." 차경은 앉지 않았다. "따져 보면, 이 터 이야기를 매번 복단이 편에 흘려 보내는 것도 예가 아니다 싶어 직접 왔소이다. 정 어른이 여기 자리 잡은 지 열다섯 해, 자리값이 곧 재산 아니오. 그 재산을 값으로 쳐서 넘기시라는 말씀이올시다. 셈은 넉넉히 잡아 드리리다." "이 터는 팔 물건이 아니오." "세상에 값 안 매겨지는 물건이 어디 있소." 차경이 웃었다. 웃음에 셈이 배어 있었다. "인심도 결국 장부에 적히는 법이올시다. 정 어른네 외상장부, 그것도 결국은 빚이지요. 받을 것 못 받고 쌓인 게 얼만지, 어른은 아시오?" 정만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부뚜막 가장자리에 얹었다. 그때 남설이 차경을 보았다. 남설의 눈이 가늘어졌다. "차 주인." 남설이 말했다. "여각을 하신다고요." 차경이 남설을 돌아보았다. 잠깐, 아주 잠깐, 그의 눈이 남설의 트고 갈라진 손 위에 놓인 오지그릇에 닿았다. 이 빠진 자리가 두 군데인 낡은 그릇. 차경의 얼굴에서 웃음이 반 자쯤 걷혔다. "낭자." 차경이 천천히 말했다. "그 그릇, 어디서 났소." 남설은 그릇을 품 쪽으로 당겼다. "어미의 것입니다." "어미가…" 차경이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삼남을 도는 봇짐장수였소?" 남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 되었다. 정만호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차경이 남설을 안다. 그 앎이 얼굴에 지나갔다. 정만호는 국솥 쪽으로 몸을 돌렸다. 궂은 날도 아닌데 오른 어깨가 다시 결렸다. 그는 무심코 왼손으로 어깨를 눌렀다가, 손을 내렸다. 오른손 엄지 아래 두덩의 굳은살이 국자 손잡이에 닿았다. 그는 그 손을 슬며시 오므렸다. "차 주인." 정만호가 말했다. "터 이야기는 다음에 하시오. 아침 장사 준비 중이오." 차경은 잠시 남설을 더 보았다. 그러곤 소맷자락을 털며 몸을 돌렸다. "그러십시다. 나는 급할 게 없소이다." 문지방을 넘으며 차경이 덧붙였다. "낭자, 어미의 빚이 남았거든 여각으로 오시오. 삼 년 전 약값, 아직 셈이 안 끝난 것으로 아는데." 문이 닫혔다. 찬 기운이 발목을 감았다가 흩어졌다. 남설의 손이 그릇을 꽉 쥐었다. 트고 갈라진 자리가 다시 붉어졌다. "어르신." 남설이 낮게 말했다. "저 사람을 압니다. 삼 년 전, 어미 약값을 저 여각에서 빌렸지요. 그때 저 사람이… 이 그릇을 담보로 잡겠다 했습니다. 어미가 끝내 안 내주었고요." 정만호는 도마 위 파를 뚝배기에 옮겼다.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으려 애쓴 손이었다. "그릇이 담보가 될 리 없다." 정만호가 말했다. "이 빠진 오지그릇이. 값으로 치면 한 푼도 안 나간다." "그런데 저 사람은 이걸 원했지요." 남설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일까요, 어르신." 정만호는 국자를 들었다. 뜨거운 국물을 떠 뚝배기에 부었다가 따라냈다. 한 번, 두 번. 밥알에 온기가 배어들었다. "먹던 것 마저 들어라." 그가 말했다. "식으면 맛이 죽는다." 남설은 그를 잠시 보다가, 숟가락을 들었다. 정만호는 새로 토렴한 뚝배기를 부뚜막 온기 위에 얹어 두었다. 복단이 불씨를 뒤적이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무언가 말하려다, 말끝을 삼켰다. 바깥 어딘가, 아직 서지 않은 장 자리에 눈이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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