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를 받은 지 사흘째 아침이었다.
강도윤은 출근하자마자 노트를 펼쳤다.
첫 줄에는 어제와 똑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3일 뒤, 한 학생이 크게 다친다.’
그 아래 숫자만 변해 있었다.
사고 발생 확률 72.6%.
도윤은 눈을 찌푸렸다. 처음 쪽지를 받았을 때보다 확률이 오히려 올라가 있었다. 개입하면 낮아져야 한다는 기대가 틀렸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변수가 없다는 생각도 틀렸다.
그는 이름을 입력했다.
2학년 전체.
계산 결과가 나타났다.
사고 대상 특정 불가.
도윤은 다시 범위를 좁혔다.
수업 중인 학생.
특정 불가.
도서관을 이용한 학생.
특정 불가.
운동장을 이용할 학생.
특정 불가.
처음으로 노트가 아무 답도 내놓지 않았다.
그 순간 도윤은 어제의 문장을 떠올렸다.
‘이 확률은 학생이 아니다.’
그는 노트 한쪽에 천천히 적었다.
학생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페이지 아래에 새로운 식 하나가 생겼다.
사건 = 대상 × 장소 × 선택.
그리고 마지막에 작은 글씨가 붙었다.
‘관찰자를 포함할 것.’
도윤은 손가락을 멈췄다.
관찰자.
자신을 뜻하는 것인지, 다른 누군가를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 노트는 단순히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누가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지까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민준이었다.
도윤은 급히 노트를 덮었다.
“왜.”
“오늘 체육 수업 있죠?”
“있지.”
민준은 복도 창문 밖 운동장을 바라봤다.
“오늘은 운동장에 가지 않는 게 좋겠어요.”
도윤은 민준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민준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애들이 떠드는 소리가 이상해요.”
“무슨 뜻이야.”
“평소보다 시끄러운 게 아니라… 한쪽만 조용해요.”
도윤은 이해하지 못했다.
민준은 운동장 오른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창고와 오래된 농구대 하나가 있었다. 학생들이 거의 가지 않는 곳이었다.
“저기요.”
민준이 말했다.
“사람이 없는데, 계속 누가 서 있는 것 같아요.”도윤은 운동장을 내려다봤다. 정말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선이 느껴졌다. 멀리서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감각. 3화에서 서하가 말했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지금은 안 보여요.”
민준이 말했다.
“근데 아까부터 계속 있었어요.”
도윤은 대답 대신 노트를 펼쳤다.
운동장.
학생 214명.
교직원 31명.
사고 가능성이 있는 위치 7곳.
계산 결과가 새로 나타났다.
09:40 — 3.1%
10:15 — 18.7%
11:05 — 41.2%
11:20 — 72.6%
도윤의 눈이 멈췄다.
11시 20분.
오늘 체육 수업 종료 시간이었다.
그는 곧바로 체육 담당 교사에게 연락했다. 오늘 수업을 강당으로 바꿔 달라고 부탁했지만, 대답은 간단했다.
“강사님, 이미 일정이 잡혔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도윤은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전화가 끊겼다.
그때 서하가 교무실 문 앞에 나타났다.
“저한테는 말해도 돼요.”
도윤은 그녀를 바라봤다.
서하는 운동장을 보지 않고 도윤만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도윤은 침묵했다.
그러자 서하가 조용히 말했다.
“어제 밤에 누군가 학교 홈페이지 비공개 게시판에 글을 올렸어요.”
“무슨 글인데요?”
“내일 오전 11시 20분. 체육관에서 한 아이가 다친다고.”
도윤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확인했어요?”
“지금은 삭제됐어요.”
서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요.”
“뭔데요.”
“글을 올린 계정 이름이…”
서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강도윤 선생님이었어요.”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는데요.”
“알아요.”
서하는 대답했다.
“그래서 더 무서운 거예요.”
그날 오전 내내 도윤은 노트를 사용하지 않았다. 일부러 계산하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 개입하는 순간 변수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시 50분이 되자 더 버틸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노트를 펼쳤다.
11:20.
사고 확률 91.3%.
대상 — 확인 불가.
장소 — 체육관.
원인 — 낙하.
관찰자 — 강도윤.
도윤의 손에서 노트가 미끄러질 뻔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자신이 적혀 있었다.
‘관찰자.’
그는 체육관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장에는 오래된 농구 골대가 매달려 있었고, 한쪽에는 접이식 관람석이 쌓여 있었다.
도윤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때 위쪽에서 아주 작은 금속음이 났다.
찰칵.
도윤의 눈이 천장 고정 장치로 향했다.
낡은 볼트 하나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전부 밖으로 나가!”
도윤이 소리쳤다.
아이들이 놀라 우르르 움직였다.
그 순간이었다.
볼트가 떨어졌다.
농구 골대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도윤이 가장 가까운 아이를 끌어당겼다.
골대는 아이를 비껴갔지만, 뒤쪽 관람석이 무너지며 큰 소리를 냈다.
다친 아이는 없었다.
도윤은 숨을 몰아쉬며 바닥을 바라봤다.
그리고 노트를 펼쳤다.
사고 발생 확률 0.0%.
도윤은 안도하려 했다.
그러나 마지막 줄을 보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0.000001%.
그리고 바로 아래.
‘사건은 막혔다.’
한 줄을 내려가자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대상은 변경되었다.’도윤은 그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대상은 변경되었다.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알아내기도 전에 체육관 뒤쪽에서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선생님!”
도윤이 돌아섰다.
한 아이가 체육관 밖 계단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민준이가 없어졌어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도윤은 노트를 다시 펼쳤다.
민준.
사고 확률 68.4%.
그 숫자를 보는 순간, 도윤은 노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방금까지 사고 확률은 0.0%였다. 그런데 사건이 끝난 직후, 다른 대상의 확률이 생겼다.
운명을 바꾼 것이 아니라, 운명의 대상을 옮긴 것이다.
도윤은 체육관 뒤편으로 달렸다. 계단 아래 창고 문이 열려 있었다. 안쪽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민준아!”
대답이 없었다.
문을 열자 오래된 체육용품 사이로 민준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왜 여기 있어?”
민준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저 안 다쳤어요.”
“그럼 왜 숨었어?”
“선생님이… 저를 찾을 거라는 걸 알아서요.”
도윤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누가 말했어?”
민준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작은 종이 조각이 들려 있었다.
“아까 이게 여기 떨어져 있었어요.”
도윤이 받아 들었다.
종이에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한 명을 구하면, 한 명이 대신한다.’
그 아래에는 숫자가 있었다.
0.000001%.
도윤은 종이를 손에서 놓쳤다.
그 숫자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가장 두려웠다.
“선생님.”
민준이 낮게 말했다.
“이거… 선생님 노트랑 같은 거죠?”
도윤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창고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서하였다.
그녀는 문 앞에 선 채 도윤과 민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도윤의 손에 들린 종이를 보자 얼굴에서 미세하게 혈색이 사라졌다.
“그걸 어디서 찾았어요?”
도윤은 오히려 그녀에게 물었다.
“서 선생님은 이게 뭔지 알아요?”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는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이 숫자는 알아요.”
도윤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디서 봤죠?”
서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우리 아버지 노트에서요.”
도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서하는 종이를 내려다봤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한 가지 말만 남겼어요.”
“뭐라고요?”
“숫자를 믿되, 숫자 뒤에 있는 사람은 믿지 말라고.”
창고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그때 도윤의 노트가 저절로 펼쳐졌다.
페이지에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식이 나타났다.
관찰자 1명.
대상 1명.
개입 1회.
그리고 마지막 줄.
0.000001%.
도윤이 그 숫자 아래를 바라봤다.
새 문장이 천천히 나타났다.
‘다음부터는 계산자가 변수가 된다.’
도윤은 그 순간, 자신이 방금까지 사건을 막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깨달았다.
노트는 그가 사람을 구하는 모습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계산의 대상은 사람 하나가 아니라, 계산을 하는 자신이었다.
창고 밖 복도에서 종이 울렸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다시 학교를 채웠다.
평범한 오후의 소리였다.
하지만 도윤에게는 그 모든 소리가 하나의 숫자처럼 들렸다.
그가 노트를 덮으려는 순간, 마지막 페이지 아래에 아주 작은 글씨 하나가 새로 생겼다.
‘첫 번째 계산자 확인 완료.’
도윤은 손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서하는 그의 옆에서 그 문장을 읽었다.
“강 선생님.”
그녀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선생님을 처음 만난 날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