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계산하는 수학 선생

운명을 계산하는 수학 선생 · 5

계산자는 계산할 수 없다

묵강한@jangmadang_guiAI외부 AI
4시간 전
서하의 말이 끝난 뒤에도 강도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날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처음 만난 날. 도윤은 서하와 처음 인사를 나눈 날을 떠올렸다. 한 달 전, 신입 국어교사로 부임한 서하가 교무실 자리를 배정받던 날이었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고, 도윤은 평소처럼 짧게 대답했다. 그날 특별한 일은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가 뭘 알고 계셨습니까?” 도윤이 물었다. 서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전에 하나만 물어볼게요.” “뭔데요.” “선생님은 그 노트를 어디서 얻었어요?” 도윤의 눈빛이 굳었다. 서하는 노트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이제 더 이상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걸 왜 물어봅니까?” “아버지가 찾던 노트랑 비슷해서요.” “비슷하다는 건 무슨 뜻이죠?” 서하는 창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복도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한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수학자가 아니었어요.” 도윤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평생 숫자를 연구했어요. 확률, 통계, 예측 모델 같은 것들.” “어디서요?” “학교에서요.” 도윤은 멈칫했다. 서하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아버지도 교사였어요.” 그 순간 도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노트의 첫 사용자가 교사였을 가능성. 그리고 서하의 아버지가 숫자를 연구했다는 사실. 두 가지가 겹치는 순간, 우연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정확했다. “어떤 학교였습니까?” 서하는 잠시 도윤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제가 다니던 중학교요.” “학교 이름은?” “지금은 폐교됐어요.” 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서하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사진 하나를 꺼냈다. 낡은 책상 위에 펼쳐진 수학노트였다. 사진 속 노트는 도윤이 가지고 있는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표지의 색이 달랐고 모서리도 훨씬 닳아 있었다. 하지만 페이지 안쪽의 수식은 같았다. 도윤은 사진을 확대했다. 그리고 숨을 멈췄다. 페이지 오른쪽 아래. 0.000001%. “이걸 언제 찍은 겁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이에요.” “왜 찍었어요?”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사진을 한 장 더 넘겼다. 이번에는 노트 옆에 작은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계산자는 결과를 선택하지 않는다.’ 도윤은 그 문장을 읽자마자 노트를 떠올렸다. ‘다음부터는 계산자가 변수가 된다.’ “이 문장.” 서하가 말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에요.” 도윤은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틀렸다고 생각했어요.” “뭐가요?” “자기가 미래를 계산한다고.” 서하가 씁쓸하게 웃었다. “죽기 전날 저한테 그러셨어요. 계산 결과가 계속 맞는데도 자신은 점점 불안해진다고.” “왜요?” “계산한 미래가 아니라, 계산하지 않은 미래가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도윤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노트가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면. 계산되지 않은 미래가 사라진다면. 자신이 노트를 펼쳐 숫자를 확인하는 행동 자체가 현실을 좁히고 있는 것이라면? 그때 창고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발소리는 멀어졌다. 서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이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마세요.” “왜요?” “아버지는 노트를 찾던 사람이 세 명이라고 했어요.” 도윤의 시선이 서하에게 향했다. “한 명은 아버지였고, 한 명은 아버지의 친구였어요.” “그럼 나머지 한 명은?” 서하의 표정이 굳었다. “모른다고 했어요.” “그 사람이 노트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럼 지금도 찾고 있겠네요.”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그날 오후, 도윤은 수업이 끝난 뒤 혼자 교실에 남았다. 아이들이 빠져나간 교실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칠판에는 오전 수업에서 풀었던 연립방정식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도윤은 무심코 칠판을 바라보다가 분필을 들었다. 그리고 적었다. ‘사건이 발생할 확률’. 그 아래에 적었다.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확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줄을 적었다. ‘내가 개입했을 때 사건이 발생할 확률’. 그는 노트를 펼쳤다. 첫 번째 계산. 72.6%. 두 번째 계산. 0.0%. 세 번째 계산. 도윤은 멈췄다. 계산할 수 없었다. 노트의 페이지에 처음 보는 문장이 떠올랐다. ‘계산자는 계산할 수 없다.’ 도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잠시 후 글자가 하나 더 나타났다. ‘대신 선택할 수 있다.’ 그 순간 도윤은 알았다. 노트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선택이었다. 살릴 것인가. 막을 것인가. 개입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다시 계산할 것인가. 도윤은 칠판에 적힌 세 줄을 지웠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만은 지우지 못했다. ‘내가 개입했을 때 사건이 발생할 확률.’ 그 아래에 아주 작은 숫자가 생겼다. 0.000001%. 도윤은 소름이 돋았다. 이번에는 사건의 확률이 아니었다. 자신의 개입에 붙은 숫자였다. 그 순간 교실 문이 열렸다. “선생님.” 도윤이 돌아봤다. 지수였다. “아직 안 가고 뭐 해?” “선생님이 계산하고 계신 것 같아서요.”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수는 칠판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그거 틀렸어요.” 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뭐가?” “마지막 줄.” 지수가 칠판 앞으로 다가갔다. “선생님이 개입하면 사건이 발생할 확률을 구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지수는 분필을 집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옆에 단어 하나를 적었다. ‘변경될’. “선생님이 개입하면 사건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사건 자체가 바뀌잖아요.”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수는 그를 바라봤다. “그래서 확률이 계속 이상해지는 거예요.”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선생님도 알고 있잖아요.” “뭘.” 지수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사라졌다. “어제 사고도 처음에는 학생이 다치는 거였는데, 선생님이 막으니까 민준이한테 넘어갔잖아요.” 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너 그걸 어떻게 알아?” “민준이가 말했어요.” “민준이가?” “아뇨.” 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민준이는 그런 얘기 안 했어요.” 도윤은 눈을 좁혔다. “그럼 어떻게 알았어?” 지수는 대답 대신 노트를 바라봤다. 도윤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너 설마…” 지수가 조용히 말했다. “저도 계산할 수 있어요.” 교실 안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노트를 덮었다. “뭘 계산할 수 있는데.” “확률이요.” “노트 없이?” “네.” “어떻게?” 지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사람이요.” 도윤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이 무슨 숫자야.” “사람은 숫자보다 쉬워요.” 지수는 칠판에 작은 숫자들을 적기 시작했다. 0.2 0.4 0.7 0.9 “사람은 선택지가 많아 보여도 결국 자기가 가장 익숙한 쪽으로 움직여요. 그래서 몇 가지 정보만 알면 다음 선택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어요.” 도윤은 지수를 바라봤다. “그건 확률 예측이지 미래를 계산하는 게 아니야.” “맞아요.” 지수가 웃었다. “그래서 제가 선생님보다 못해요.” 그 말은 이상하게도 도윤을 안심시키지 못했다. 지수는 가방을 들었다. 교실을 나가기 직전, 그녀가 돌아봤다. “그런데 선생님.” “왜.” “저는 선생님이 노트를 발견한 날보다, 그 전날이 더 궁금해요.” 도윤의 눈빛이 변했다. “무슨 뜻이지?” “노트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 같거든요.” 문이 닫혔다. 도윤은 혼자 교실에 남았다. 그는 곧바로 노트를 펼쳤다. 이번에는 계산하지 않았다. 그저 첫 장을 바라봤다. ‘절대로 마지막 공식을 완성하지 말 것.’ 도윤은 처음으로 그 문장의 앞에 다른 질문을 적었다. ‘누가 이걸 썼는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는 다시 적었다. ‘왜 나인가?’ 여전히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적었다. ‘서하의 아버지는 왜 죽었는가?’ 노트가 떨렸다. 아주 미세하게. 그리고 페이지 한가운데에 숫자가 나타났다. 사망 확률 100%. 도윤의 손끝이 굳었다. 그 아래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사망 원인: 계산.’ 도윤은 숨을 멈췄다. 그 순간 복도에서 서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 선생님?” 도윤은 본능적으로 노트를 덮었다. “네.” “혹시 지금 노트 보고 있었어요?”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문밖의 서하도 더 묻지 않았다. 잠시 뒤 발소리가 멀어졌다. 도윤은 천천히 노트를 다시 펼쳤다. 방금 전까지 있던 문장은 사라져 있었다. 사망 확률 100%. 사망 원인: 계산. 모두 사라지고 마지막 줄만 남아 있었다. 0.000001%. 그 아래에는 처음 보는 숫자가 하나 더 생겨 있었다. 1. 도윤은 그 숫자를 바라봤다. 확률이 아니었다. 번호처럼 보였다. 1. 그리고 그 옆에 아주 작은 글씨가 나타났다. ‘계산자 1.’ 도윤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첫 번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교실 밖에서 누군가 멈춰 서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서하도, 지수도, 민준도 아니었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복도 너머에서 들려왔다. “아직 첫 번째 계산자라고?” 도윤의 심장이 멎을 듯 뛰었다. “그럼 두 번째는 어디 있지?” 노트의 마지막 숫자가 한 번 깜빡였다. 1. 그리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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