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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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세탁기를 벽에서 뗀 건 목요일이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밑에 각목을 넣고 지렛대로 들어 한쪽씩 밀었다. 삼십 분 걸려서 손 하나 들어갈 만큼 틈이 났다.
주인은 목요일에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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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배수관이 없었다.
없는 걸 알고 있었다. 삼 주 전에 확인했다. 오늘 보려던 건 배수관 자리에 무엇이 있느냐였다.
구멍이 있었다.
벽에 뚫린 구멍이고, 지름이 팔뚝만 했다. 가장자리가 매끈했다. 뚫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안이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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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등을 비췄다.
빛이 안 닿았다.
벽 두께는 한 뼘이 안 된다. 밖은 옆집 담벼락이고 그 사이가 좁다. 팔뚝만 한 구멍이면 반대쪽이 보여야 한다.
안 보였다.
빛이 들어가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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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을 넣지 않았다.
넣지 않은 이유를 지금 적자면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쓰겠지만, 그때는 무섭다는 생각이 안 났다. 그냥 손이 안 갔다.
대신 종이를 넣었다.
카운터에서 백지를 한 장 가져와 구멍에 반쯤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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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겨지지 않았다.
빨려 들어가지도 않았다. 넣은 만큼 그대로 있었다.
십 초쯤 뒤에 종이가 젖었다.
밖에서 안쪽으로 젖는 게 아니라, 구멍 안에 들어간 부분부터 젖어서 밖으로 번졌다.
나는 그것을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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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자리에 글자가 있었다.
내가 안 쓴 글자다. 번져서 반쯤 뭉갰는데 두 자였다.
`반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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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종이를 카운터에 놓고 앉았다.
앉아서 오래 봤다.
세탁이라는 말을 나는 지금까지 지운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이름에 묻은 것을 물에 풀어 없앤다고.
없애는 데는 반납이 없다.
반납은 원래 있던 데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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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보낸다면 어디로 돌려보내는지가 있어야 한다.
구멍 안이 그 자리일 것이다.
그런데 반납이라고 적힌 걸 보면 이름이 원래 저기 있던 것이 된다. 사람에게 붙어 있던 것을 떼어 내는 게 아니라, 저기서 잠깐 빌려 준 것을 도로 받는다는 말이다.
빌린 것이라면 기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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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랍에서 세탁표 두 장을 꺼냈다.
`기한: 없음`
두 장 다 없음이었다.
없음이 기한이 없다는 뜻인 줄 알았다. 오늘 다시 보니 다르게도 읽힌다.
이미 없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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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를 폈다.
글씨가 바뀌는 자리 셋을 다시 찾았다. 끊겼다가 돌아오는 글씨 하나가 있었고 돌아온 뒤가 옅었다.
그 옅은 글씨의 마지막 줄을 봤다.
`품목: 이름 한 벌`
`세탁 방법: 흐르는 물에 오래`
`기한: 없음`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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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래 줄부터 내 글씨였다.
사이에 빈 줄이 없었다. 그 사람이 마지막 줄을 쓴 다음 줄에 내가 첫 줄을 썼다.
나는 첫 줄을 쓴 날을 기억한다. 주인이 장부를 밀어 주면서 여기부터 쓰라고 했다.
여기부터라고 한 자리가 그 사람 바로 아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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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돌기 시작했다.
벽에서 뗀 채로 돌았다. 몸통이 흔들리면서 뒤쪽이 구멍에서 더 멀어졌다.
물소리가 났다.
구멍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기계가 아니라 벽에서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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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계를 도로 밀었다.
각목을 빼고 어깨로 밀었다. 아까 삼십 분 걸린 걸 이 분에 했다.
붙자마자 소리가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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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시에 불을 껐다.
문을 잠그고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열일곱 걸음에서 소리가 났다. 어제와 같은 자리였다.
나는 세는 걸 멈추지 않았다.
열여덟, 열아홉.
스물에서 다른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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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가 아니었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였다.
가게 안에 종이가 저 혼자 넘어갈 만한 게 하나 있다.
나는 스물하나를 세고 스물둘을 세고 스물셋에서 골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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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주머니를 봤다.
젖은 종이가 있었다.
카운터에 두고 온 것이다. 두고 온 걸 봤고, 불을 끌 때 그 자리에 있는 것도 봤다.
말라 있었다.
`반납` 두 자가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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