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Fic
이름을 세탁하는 가게

7

네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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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에 사람이 서 있었다. 아홉 시였고 나는 막 간판을 끈 참이었다. 유리문 너머 골목에 여자가 하나 서 있었다. 이쪽을 안 보고 있었다. 골목 끝을 보고 서 있었고, 내가 문을 열 때까지 그 자세였다. --- "두 번째예요." 여자가 말했다. 전화로 들은 목소리였다. "…….." "열지 마세요." 나는 이미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들어오면 나갈 때 셈이 달라집니다." --- 나는 손을 뗐다. 여자는 그대로 서 있었다. 얼굴이 잘 안 보였다. 가로등이 뒤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보고 있는데 기억에 안 남았다. "물어볼 게 있습니다." "물으세요." "4번은 왜 비워 둡니까." --- "비워 둔 게 아니에요." "…….." "네 번째 자리예요." 여자가 골목 끝에서 눈을 안 뗐다. "기계가 넷이잖아요. 세탁기 번호가 아니라 당번 번호예요." --- 나는 안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기계는 넷이다. 1번 2번 3번은 옷을 빤다. 손님이 가져오는 이불이나 작업복을 빤다. 4번만 안 쓴다. "제가 몇 번입니까." "세어 보셨잖아요." --- 장부에서 글씨가 바뀌는 자리가 셋이었다. 셋에 나를 더하면 넷이다. "네 번째면." "네." "4번이 제 자리라는 겁니까." 여자가 처음으로 이쪽을 봤다. --- "그 반대예요." "…….." "4번이 당신 자리가 아니라, 당신이 4번 자리예요." 말이 뒤집혀서 잠깐 못 알아들었다. "기계가 사람 대신 도는 거예요. 당번이 넷째면 넷째 기계가 돌아요. 제가 있을 때는 3번이 돌았어요." --- "1번은요." "1번은 지금도 옷을 빨죠." "…….." "첫 번째 당번은 나갔으니까요." 여자가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나간 사람 자리는 다시 옷 빠는 기계가 돼요." --- 나는 그 말을 세어 봤다. 1번은 옷을 빤다. 2번도 3번도 옷을 빤다. 3번이 옷을 빤다는 건 여자가 나갔다는 뜻이다. "두 번째 당번은 오래 못 갔다고 들었습니다." "들으셨어요." "…….." "주인한테요?" "네." --- 여자가 웃는 소리를 냈다. 웃는 얼굴은 아니었다. "오래 못 갔다는 말이 무슨 뜻인 것 같아요." "…….." "금방 죽었다는 뜻으로 들으셨죠." "…….." "멀리 못 갔다는 뜻이에요." --- 여자가 골목 끝을 가리켰다. "저기까지가 제가 간 데예요." 스물세 걸음 되는 자리다. 내가 매일 세는 그 끝이다. "거기서 이름을 부르려고 했는데 부를 게 없었어요." "…….." "나갈 때는 자기 이름을 부르면서 나가야 하거든요. 그게 마지막 절차예요." --- "그건 규칙에 없습니다." "규칙에 있는 건 뒤돌아보지 말라는 것뿐이죠." "…….." "뒤돌아보지 말라는 건 규칙이고, 이름을 부르는 건 절차예요. 규칙은 알려 주고 절차는 안 알려 줘요." "왜 안 알려 줍니까." "알려 주면 아껴 쓰니까요." --- 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 이름을 아껴 쓰면 세탁이 안 들어온다. 세탁이 안 들어오면 저 구멍에 반납되는 것이 없다. "세 번째 당번은요." "몰라요." "…….." "제가 나가고 나서 온 사람이에요. 저는 밖에 있었으니까." --- "지금 밖에 계신 거군요." "밖이에요." "…….." "골목 끝까지가 밖이고 거기서부터는 아니에요." 여자가 발끝을 봤다. "이십삼 년째 여기 있어요." --- 나는 그 숫자를 들었다. 이십삼 년. 내가 매일 세는 걸음 수와 같았다. 그게 우연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제 이름은 획이 셋 없어졌습니다." "빠르네요." "…….." "저는 넉 달 걸렸어요." --- 여자가 골목 쪽으로 반 걸음 물러섰다. "이름이 다 지워지기 전에 부르세요." "제 이름을요." "…….." "부를 수 있을 때요." --- 여자가 더 물러섰다.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여자가 멈췄다. 멈춰서 오래 서 있었다. 대답을 고르는 시간이 아니라 대답을 찾는 시간 같았다. 그러고는 골목 끝으로 걸어갔다. --- 나는 문을 잠갔다.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열일곱에서 물소리가 났고 스물에서 종이 소리가 났다. 스물셋에서 골목이 끝났다. 거기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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