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Fic
이름을 세탁하는 가게

8

돌아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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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금요일에 왔다. 세 주 만이었다. 카운터에 앉아 장부를 넘겼고 나는 옆에 서 있었다. "잘하고 있네." "…….." "스물여섯 건." "스물일곱입니다." 주인이 손을 멈췄다가 다시 넘겼다. "그러네." --- "여쭐 게 있습니다." "물어." "왜 뒤돌아보면 안 됩니까." 주인이 장부를 덮었다. 덮고 나서 카운터 밑에서 걸레를 꺼내 유리를 닦기 시작했다. 안쪽 면부터 닦았다. "돌아보면 뭐가 보이겠나." "가게가 보이겠지요." "그렇지." --- "불 끈 가게가 보여." 주인이 유리를 문질렀다. "불 끈 가게를 보면 오늘 일이 끝난 게 되지. 끝난 걸 본 사람은 셈이 맞아." "…….." "셈이 맞으면 나가." 나는 그 말을 두 번 들었다. --- "나가는 게 나쁜 겁니까." "나쁘진 않지." 주인이 걸레를 접어 반대쪽으로 뒤집었다. "자네가 나가면 다음 사람이 와야 해." "…….." "다음 사람이 없으면 못 나가고." --- 나는 유리에 비친 4번을 봤다. "제가 네 번째입니까." "세어 봤나." "세어 봤습니다." 주인이 처음으로 나를 봤다. "그럼 아는 거네." --- "두 번째 분은 못 나가셨습니다." "…….." "세 번째 분이 왔는데도요." 주인이 걸레질을 멈췄다. "세 번째가 언제 왔는데." "모릅니다." "…….." "두 번째가 나간 자리에 세 번째가 온 게 아니야. 세 번째가 온 자리에서 두 번째가 못 나간 거지." --- 말이 비슷한데 달랐다. "순서가 반대라는 말씀입니까." "순서는 하나야." 주인이 유리를 마지막으로 한 번 닦고 걸레를 접었다. "다음 사람이 오면 앞사람 이름이 비어. 비어야 자리가 나니까. 그런데 이름이 비면 부를 게 없지." "…….." "부를 게 없으면 못 나가." --- 나는 카운터를 짚었다. "그러면 아무도 못 나갑니다." "첫 번째는 나갔어." "어떻게요." 주인이 걸레를 서랍에 넣었다. "자기 이름을 안 세탁했으니까." --- 밖이 어두워졌다. "세탁은 손님이 맡기는 겁니다." "그렇지." "…….." "제 이름은 제가 안 맡겼습니다." 주인이 장부를 나에게 밀었다. "그 글씨 누구 거야." --- 나는 안 봤다. 봐도 안다. 스물두 번째 줄부터 스물일곱 번째 줄까지 다 내 글씨고, 그중 하나가 내 이름이다. "제가 쓴 기억이 없습니다." "기억이 없어도 쓴 건 쓴 거야." 주인이 일어섰다. "두 번째도 그렇게 말했어." --- 주인이 나가고 나서 나는 카운터에 앉았다. 돌아보면 셈이 맞는다. 셈이 맞으면 나간다. 나가려면 이름을 불러야 하고, 이름은 다음 사람이 오면 비워진다. 그래서 뒤돌아보지 말라고 한다. 돌아보지 말라는 건 나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나갈 수 없는 채로 셈만 맞추지 말라는 뜻이었다. 셈이 맞았는데 못 나가면 골목 끝에 선다. --- 이십삼 년. --- 아홉 시에 불을 껐다. 문을 잠그고 걸었다. 열일곱에서 물소리. 스물에서 종이. 스물하나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 집 쪽이었다. 골목 끝 너머, 내가 매일 꺾어 드는 방향이었다. 이름을 불렀다. 획이 셋 없어진 이름인데 소리로는 다 있었다. 부르는 쪽은 획이 필요 없는 모양이었다.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무서워서였고 오늘은 아니었다. 세탁 방법이 부르지 말고 대답하게 할 것이었다. 대답하면 세탁이 끝난다. --- 스물둘. 목소리가 한 번 더 불렀다. 가까워지지 않았다. 같은 자리에서 두 번 불렀다. 스물셋. --- 골목이 끝났다. 나는 그 자리에 섰다.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은 채로 오른쪽을 봤다. 집으로 꺾는 쪽이다. 사람이 없었다. 목소리는 거기서 났는데 사람이 없었다. --- 나는 왼쪽을 봤다. 거기도 없었다. 앞을 봤다. 없었다. 세 방향에 아무도 없고 남은 방향이 하나였다. 나는 그쪽으로 몸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고 걸었다. 집까지 가는 길은 안 봐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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