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쌓인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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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손님이 왔다.
낮 손님이 아니라 여덟 시 사십 분에 온 손님이었다. 이불을 들고 왔고 무거워서 카운터에 올리는 걸 도왔다.
"내일 찾으러 올게요."
"네."
여자가 나가면서 유리문 앞에서 멈췄다.
"여기 언제부터 하셨어요?"
"넉 달쯤 됐습니다."
"…….."
"오래 하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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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나가고 나서 나는 이불을 1번에 넣었다.
돌렸다.
물이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관을 타고 오는 소리고 배수관이 있는 기계의 소리다.
4번과 다르다.
같이 들으니 다르다는 게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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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이 도는 동안 나는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넉 달쯤 됐습니다, 라고 나는 방금 말했다.
세어 보니 넉 달이 아니었다.
여덟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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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봤다.
내가 온 날에 동그라미를 쳐 뒀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여덟 달 하고 아흐레다.
나는 그것을 두 번 셌다.
두 번 다 여덟 달이었다.
방금 나는 넉 달이라고 말했고, 말할 때 틀렸다는 느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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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당번은 넉 달 걸렸다고 했다.
이름이 다 지워지는 데 넉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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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랍에서 세탁표를 꺼냈다.
석 자 중에 획이 셋 없다. 어제 본 그대로였다.
오늘 없어진 건 획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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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이 멈췄다.
이불을 꺼내 건조기에 넣었다. 넣고 문을 닫는데 유리에 내가 비쳤다.
얼굴을 봤다.
내 얼굴이었다. 그건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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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가 도는 동안 나는 4번 뒤로 갔다.
각목을 넣고 밀었다. 이번에는 십 분 걸렸다. 요령이 생겼다.
구멍에 손전등을 비췄다.
빛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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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을 넣었다.
넣기로 한 게 아니라 넣고 나서 넣었다는 걸 알았다.
차갑지 않았다. 뜨겁지도 않았다. 공기도 물도 아니었고, 손등에 아무것도 안 닿았다.
손끝에만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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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였다.
한 장이 아니었다.
손끝을 움직이니 여러 장이 스쳤다. 겹쳐서 세워져 있는 것 같았다. 도서관 서가에 책이 꽂힌 것처럼 세로로 서 있었다.
나는 하나를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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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표였다.
`품목: 이름 한 벌`
주문자 칸에 이름이 있었다.
내 이름이 아니었다.
석 자였고 획이 하나도 안 빠져 있었다. 또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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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읽었다.
읽히는데 모르는 이름이었다.
읽고 나서 입안이 이상하지 않았다. 내 이름을 읽었을 때와 달랐다. 남의 이름은 남의 이름으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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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하나를 뽑았다.
다른 이름이었다.
또 하나.
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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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장을 뽑고 나서 손을 뺐다.
카운터에 늘어놓았다.
여섯 개의 이름이 다 달랐고 여섯 개 다 획이 온전했다.
여기 들어오면 획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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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중 하나를 다시 봤다.
세 번째 것이었다.
주문자 칸 아래 작은 글씨가 있었다. 다른 다섯 장에는 없는 줄이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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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하나였다.
나는 나머지 다섯 장을 뒤집어 봤다. 없었다.
세 번째 것에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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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당번의 이름일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다섯은 당번이 아니다. 그냥 손님들 이름이다. 여덟 달 동안 내가 받아서 돌린 것들.
나는 그 이름들을 한 번씩 읽었다.
읽으면서 아무 기억도 안 났다. 받은 기억이 없어도 받은 건 받은 거라고 주인이 말했다.
돌린 기억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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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장을 도로 넣었다.
숫자 있는 것만 손에 남겼다.
넣고 나서 기계를 밀어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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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가 멈춰 있었다.
언제 멈췄는지 몰랐다. 이불을 꺼내 개서 봉지에 넣고 이름표를 붙였다.
내일 찾으러 온다고 했다.
이름표에 여자 이름을 적어야 하는데 안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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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름표를 비워 뒀다.
비워 두고 카운터에 올렸다.
올려놓고 보니 그것도 주문자 칸이 빈 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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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시가 지나 있었다.
십 분 늦었다.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걸었다.
열일곱, 스물, 스물하나.
오늘은 아무 소리도 안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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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에서 골목이 끝났다.
주머니에 종이가 한 장 있었다.
숫자 3이 적힌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꺼내 가로등 밑에서 봤다.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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