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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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한 다음 날 아침에 나는 고시원 방에서 눈을 떴다.
두 평이었다. 침대에 누우면 발이 문에 닿았고, 창은 손바닥만 했고, 그 창으로 옆 건물 벽이 보였다. 하루 이만 원이었고 사흘치를 미리 냈다.
살던 곳은 청우한의원 안쪽 작은 방이었다. 봉인이 붙은 문 안쪽이라 옷 한 벌 꺼낼 수 없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은 병원에서 입고 나온 옷과 지갑과 휴대전화, 그리고 침통 하나였다.
침통은 사고 나던 날 조수석에서 굴러떨어졌던 것이다. 그 뒤로 늘 갖고 다녔다.
방바닥에 앉아서 침통을 열었다. 침이 스물네 개 들어 있었고 하나도 안 줄어 있었다. 다섯 달 동안 나는 이 침으로 사람을 찔러본 적이 없다.
닫아서 가방에 넣었다.
서지안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그때였다.
“어디십니까.”
“고시원입니다.”
“고시원이요?”
“한의원이 봉인이라 잘 데가 없습니다.”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한 시에 병원 앞 카페로 오실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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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운을 입지 않고 있었다. 그 차림을 처음 봤다. 셔츠 소매를 접었고, 앞에 커피가 두 잔 있었는데 하나도 안 줄어 있었다.
“어제 두 사람한테 물어봤습니다.”
“무엇을요.”
“진료 지원 창에서 이탈 권고 뜬 걸 본 적 있냐고요.”
나는 컵을 들다 말았다.
“명단 없이요?”
“명단은 필요 없습니다. 학회에서 만난 사람들입니다.”
“서 선생님.”
“한 사람은 못 봤답니다.”
“다른 한 사람은요.”
지안이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내밀었다. 문자였다.
`그거 우리도 뜬 적 있어요. 5월인가 6월인가.`
`야간에 두 번쯤 본 것 같은데 그때는 그냥 알림인 줄 알았어요.`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나는 그 세 줄을 두 번 읽었다.
“이분은 어느 과입니까.”
“응급의학과입니다. 삼 년 차고요.”
“야간에 두 번.”
“그때 뭘 했는지는 안 적혀 있습니다.”
“물어보셨습니까.”
지안이 고개를 저었다.
“거기서 멈췄습니다.”
나는 화면을 다시 봤다.
`그때는 그냥 알림인 줄 알았어요.`
알림은 따르라고 만든 것이다. 검사 수치가 위험선을 넘으면 뜨고, 뜨면 확인한다. 삼 년 차 응급의학과 의사가 새벽 세 시에 그 창을 보고 무엇을 했을지 나는 안다. 나도 그 시간의 당직을 삼십 년 다른 형태로 해봤다.
바쁠수록 창을 믿는다.
“이 사람은 지금도 자기가 뭘 봤는지 모릅니다.” 지안이 말했다.
“압니다.”
“알면 어떻게 될까요.”
“잠을 못 잘 겁니다.”
“그래도 알아야 합니까.”
나는 대답하기 전에 컵을 밀어 놓았다.
“모르면 다음에 또 따릅니다.”
“그러니까 물어본 겁니다.”
“답장하셨습니까.”
“아직요.”
“하지 마십시오.”
“왜요.”
“어제 조서에 제 진술이 들어갔습니다. 선생님 로그도 같이 갑니다. 그 로그를 낸 사람이 다른 병원 의료진한테 미리 말을 돌렸다는 게 확인되면요.”
“증거가 흔들립니까.”
“흔들립니다.”
지안은 화면을 껐다. 껐다가 다시 켰다.
“그러면 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
“야간에 두 번 봤다는 사람 말입니다. 자기가 뭘 봤는지 아직 모릅니다.”
“형사님이 갑니다.”
“언제요.”
“모릅니다.”
“그 사이에 그 사람은 계속 모릅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제 태주가 나에게 그은 선을 오늘 내가 지안에게 긋고 있었다. 문장이 거의 똑같았다. 형사님 일입니다, 원장님 일이 아닙니다.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지안이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어제 조사에서 불리하게 답하셨죠.”
“네.”
“왜요.”
“사실이라서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는 커피를 처음으로 한 모금 마셨다. 다 식은 것이었다.
“제가 물어본 게 사실입니다. 숨기면 그것도 흔들립니다.”
“그럼 형사님께 먼저 말씀하십시오. 오늘 안에요.”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이미 물어본 다음에요.”
“순서가 틀렸다는 건 압니다.”
그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그런데 순서를 지켰으면 저 사람은 지금도 몰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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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는 세 시에 전화를 받았다.
지안이 먼저 말했고, 나는 옆에 있었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끊고 나서 지안이 말했다.
“화 안 내시네요.”
“화를 내면 그다음이 없으니까요.”
십 분쯤 뒤에 태주에게서 나에게 문자가 왔다.
`서 선생님 진술 따로 받겠습니다.`
`원장님은 오늘 아무 데도 가지 마십시오.`
나는 답을 보냈다.
`병원에 갑니다.`
`어디요.`
`칠 층입니다.`
한참 뒤에 답이 왔다.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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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은 칠 층 끝 병실에 있었다.
지하에서 나온 뒤로 여기 있었고, 나는 다섯 달 동안 두 번 왔다. 두 번 다 문 앞까지만 갔다.
면회 대장에 이름을 적었다.
`윤해진 / 관계: 조카`
관계 칸을 채우는 데 시간이 걸렸다. 조카라고 적으면서 나는 그 글자가 서류에서 어떻게 쓰였는지를 생각했다. 정기적 접촉 관계에 있는 직계·방계 친족.
같은 관계를 두 군데서 다르게 쓴다.
병실은 이인실이었고 옆 침대는 비어 있었다. 창가 쪽에 외삼촌이 누워 있었다.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지하에서 봤을 때보다 더 빠졌다. 코에 관이 들어가 있고 팔에 수액이 들어가고 있었다. 왼쪽 귀 뒤의 반달 흉터는 그대로였다.
눈은 뜨고 있었다.
“외삼촌.”
눈동자가 움직였다. 천장에서 내 쪽으로 왔다. 초점이 맞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접니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안 났다. 목에 관이 들어간 자리가 있었다.
나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말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 서류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고 공책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왜 그랬느냐고 물을 수도 있었다. 물어도 대답이 안 나온다는 것을 알면서 묻는 것도 방법이다. 삼십 년 동안 나는 대답 못 하는 환자에게 말을 거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게 안 됐다.
외삼촌의 오른손이 이불 위에 나와 있었다. 손등에 반창고가 붙어 있고 손가락이 반쯤 굽어 있었다. 나는 그 손목을 잡지 않았다.
대신 내 왼쪽 손목을 그 손 안에 넣었다.
손가락이 반쯤 굽어 있어서 저절로 감겼다. 힘은 거의 없었다. 잡은 것이 아니라 얹힌 것에 가까웠다.
공책에는 조카가 자기 손목을 잡고 있던 시간이 적혀 있었다. 육십이 초, 사십일 초, 이십이 초, 구 초, 사 초.
그건 내가 잡은 시간이었다.
한 번도 반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외삼촌의 눈이 손 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올라왔다.
소리는 안 났지만 입 모양이 있었다.
미, 하고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하지 마십시오.”
내가 말했다.
“그 말 들으려고 온 거 아닙니다.”
입이 멈췄다.
“공책 봤습니다.”
눈이 감겼다가 떠졌다.
“마지막 장에 숫자가 없더군요.”
외삼촌의 손가락이 한 번 움직였다. 굽은 상태에서 조금 더 굽었다. 내 손목을 눌렀다기보다 자기 손이 저절로 오므라든 것이었다.
나는 손을 빼지 않았다.
창밖에서 헬기 소리가 났다. 옥상 착륙장이 있는 병원이었다. 소리가 커졌다가 멀어질 때까지 우리는 그대로 있었다.
시계를 보지 않았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수액을 갈고 나갔다. 나갈 때 문을 반쯤 닫았다.
“외삼촌.”
눈이 다시 나를 봤다.
“누나 얼굴 아직 기억 안 납니까.”
대답은 없었다.
“제가 압니다.”
나는 왼손을 그대로 둔 채 오른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냈다. 앨범에 사진이 몇 장 없었다. 그중에 어머니 사진이 한 장 있었다. 오래된 종이 사진을 찍어둔 것이라 화질이 나빴다.
화면을 눈높이에 맞춰 들었다.
외삼촌의 눈이 화면을 봤다.
한참 봤다.
눈가가 젖었다.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고 젖기만 했다. 몸에 물이 부족한 사람은 그렇게 된다.
나는 화면을 끄지 않고 그대로 들고 있었다. 팔이 저릴 때까지 들고 있었다.
사진 속 어머니는 마당에 서 있었다. 뒤에 장독이 있고 옆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웃고 있지는 않았다. 사진 찍는 걸 싫어하던 사람이라 대부분 이런 얼굴이다.
외삼촌은 그 옆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세림바이오가 그에게 준 것은 치료가 아니었다. 이 얼굴을 다시 보게 해 준다는 말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그는 자기 몸을 내주었고, 약관 뒷면에 조카까지 딸려 갔다.
지금 그 얼굴은 내 손에 있는 오천 원짜리 화면 안에 있다.
보여 주는 데 필요한 건 전화기 한 대였다.
팔을 내렸다.
“나중에 인쇄해서 갖다 놓겠습니다.”
외삼촌의 눈이 화면이 사라진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벽에 붙여 드리겠습니다. 보고 싶을 때 보시라고요.”
눈이 감겼다.
감긴 눈꺼풀이 떨렸다. 자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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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 시간이 끝날 때 나는 손을 뺐다.
빼면서 외삼촌의 손가락을 이불 안으로 넣어 주었다. 손이 차가웠다.
문 앞에서 한 번 돌아봤다.
외삼촌은 다시 천장을 보고 있었다.
면회 대장에 나가는 시각을 적게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칸을 채웠다.
들어온 시각과 나간 시각 사이가 오십칠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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