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야간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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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가 사진 한 장을 보내온 것은 아침이었다.
압수 자료 화면을 찍은 것이었다. 규칙 하나가 펼쳐져 있고 그 아래 조건란이 있었다.
`적용 시간대: 22:00 - 06:00`
`적용 요일: 전일`
`담당자 확인: 불요`
세 줄이었다.
`47건 중 31건에 시간대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나머지 16건은 전 시간대입니다.`
나는 고시원 침대에 앉아서 그 사진을 한참 봤다.
밤에 확인 전화를 걸 사람이 적다는 것은 병원에서 일해 본 사람이면 다 안다. 당직은 혼자고, 담당의는 자고 있고, 깨우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 그 시간에 화면에 이름이 떠 있으면 사람은 화면을 믿는다.
누군가 그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죄가 되지 않는다.
죄가 되는 것은 그걸 조건란에 적어 넣은 일이다.
`담당자 확인: 불요`
이 한 줄을 넣으려면 사람이 손으로 눌러야 한다. 기계는 스스로 확인을 생략하지 않는다.
나는 답을 보냈다.
`나머지 열여섯 건은 어떤 규칙입니까.`
`검사 수치 알림입니다. 원래 있던 것들이고요.`
`그럼 새로 넣은 마흔일곱 건 중에 서른한 건이 밤에만 도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나머지 열여섯 건은요.`
한참 뒤에 답이 왔다.
`낮에도 돕니다. 대신 그 열여섯 건은 알림만 띄우고 오더는 안 냅니다.`
밤에만 오더가 나간다.
낮에는 사람이 많고 밤에는 적다. 낮에 오더가 나가면 누군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밤에는 이상하다고 말할 사람이 자고 있다.
이걸 나눈 사람은 병원의 낮과 밤이 어떻게 다른지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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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선생을 만난 것은 오후 두 시였다.
서지안이 자리를 만들었다. 병원이 아니라 지하철역 근처 카페였고, 셋이 앉았다.
임 선생은 삼십 대 초반이었고 가운을 입지 않았다. 비번인 날이라고 했다. 앉자마자 물부터 한 잔 다 마셨다.
“형사님한테 어제 진술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안이 말했다.
“고맙다고 하지 마십시오.”
임 선생은 컵을 내려놓았다.
“어제 조사받고 집에 가서 근무표를 뒤졌습니다. 오월 이십일일하고 유월 삼일이었습니다.”
“찾으셨군요.”
“두 번 다 새벽 세 시대였습니다.”
지안이 수첩을 꺼내려다 말았다. 임 선생이 그걸 봤다.
“적으셔도 됩니다. 형사님한테 이미 다 말했습니다.”
“그래도 여기서는 안 적겠습니다.”
임 선생이 잠깐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월 건은 기억납니다. 오십 대 남자였고 심정지로 왔습니다. 십오 분쯤 하고 화면에 그게 떴어요. 이탈 권고. 저는 그때 그걸, 소생 가능성 낮으니 다른 환자 보라는 알림으로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계속했습니다.”
“…….”
“이유는 별거 없습니다. 보호자가 밖에 있었고, 아직 이십 분이 안 됐고, 제가 그날 손이 남아서요.”
임 선생은 물을 한 잔 더 따랐다.
“그 사람 살았습니다. 중환자실 갔다가 열흘 뒤에 걸어 나갔어요.”
지안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유월 건은요.”
임 선생의 손이 컵에서 멈췄다.
가방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출력물이었고 접힌 자국이 여러 번이었다. 어제부터 계속 폈다 접었다 한 종이였다.
“이건 제 근무 기록입니다. 형사님께 드린 건 사본이고요.”
지안이 종이를 받지 않고 눈으로만 봤다.
“유월 삼일 새벽 세 시 이십 분에 알림이 떴습니다. 그건 로그에 있습니다.”
“그때 뭘 하셨습니까.”
“모릅니다.”
“모르신다고요.”
“옆 베드에 있었습니다. 그건 기억납니다. 낙상 환자였고 봉합을 하고 있었어요. 돌아왔을 때 인턴이 정리를 하고 있었고, 저는 그게 끝난 줄 알았습니다.”
“끝났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그때는 아무 뜻도 아니었습니다.”
임 선생이 종이를 다시 접었다.
“어제 그 인턴한테 전화했습니다. 지금 다른 병원 있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기억이 안 난답니다.”
“…….”
“당연합니다. 저도 어제까지 기억 안 났으니까요. 그날 밤 응급실에 온 사람이 열아홉 명이었습니다.”
지안이 물었다.
“그 환자는요.”
“전원 갔습니다. 다른 병원으로요.”
“그 뒤는요.”
“모릅니다.”
임 선생은 그 세 글자를 말하고 나서 오래 있었다.
“전원 기록은 있는데 그다음이 저희 시스템에 안 남습니다. 받은 병원에 물어보려면 사유가 있어야 하고요.”
“사유를 뭐라고 적으셨습니까.”
“아직 못 적었습니다.”
임 선생이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물이 다 식어 있었을 것이다.
“진료 목적이라고 적으면 거짓말입니다. 저는 지금 그 사람 진료 안 합니다. 개인 사유라고 적으면 안 알려줍니다.”
“형사님께 말씀드리십시오.”
“말씀드렸습니다. 수사로 가면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기다리시면 됩니다.”
“얼마나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제 밤에 잠이 안 와서 계산을 해봤습니다.” 임 선생이 말했다. “오 개월이면 백오십 일이고, 야간이 여덟 시간이면 천이백 시간입니다. 열한 곳이니까 만 삼천이백 시간이고요.”
“…….”
“그중에 제가 아는 건 두 번입니다.”
“두 번을 아시는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지안이 말했다.
“그게 위로가 됩니까.”
“안 됩니다.”
지안은 그렇게 말하고 더 붙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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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선생이 나에게 물은 것은 헤어지기 직전이었다.
“선생님은 그날 어떻게 하셨습니까.”
지안이 나를 봤다.
“기다렸습니다.” 내가 말했다.
“얼마나요.”
“모릅니다. 시계를 안 봤습니다.”
“그게 됩니까.”
“그날은 됐습니다.”
임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초를 셉니다. 이십 분 하고, 안 되면 팀한테 물어보고, 보호자 부르고요.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게 맞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화면이 십오 분에 끊었습니다.”
“…….”
“제가 세던 이십 분을 화면이 십오 분으로 줄인 겁니다. 그게 제일 무섭습니다.”
임 선생은 가방을 들었다.
“그 알림 없앴다면서요.”
“롤백했다고 합니다.”
“그럼 다음에는 제가 이십 분 셉니까, 아니면 이십 분 세는 게 맞나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까.”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이 아니었다.
임 선생이 나갔다.
지안과 나는 한참 앉아 있었다.
“저 사람 당분간 힘들 겁니다.” 지안이 말했다.
“압니다.”
“알려준 게 잘한 일입니까.”
“모르겠습니다.”
“원장님은 어제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식은 커피를 밀어 놓았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편해지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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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태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원장님 진술 말입니다.”
“정정하라고 하십니까.”
“검사님이 기회를 주신답니다. 진맥이 아니었다고 바꾸면 됩니다.”
“사실은 안 바뀝니다.”
“그럼 상대가 이걸로 로그를 칩니다. 무면허 의료행위 중에 나온 기록이라고요.”
“무면허는 아닙니다. 저는 한의사입니다.”
“그럼 면허 범위 밖이라고 하겠죠.”
전화기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원장님, 저는 정정하시는 게 낫다고 봅니다.”
“형사님.”
“네.”
“그날 응급실에 간호사가 셋 있었습니다.”
“…….”
“제가 뭘 했는지 그 사람들이 봤습니다. 제 말보다 그쪽이 셉니다.”
태주가 잠깐 말이 없었다.
“이름 아십니까.”
“한 명은 압니다. 나머지는 얼굴만요.”
“근무표 보면 나옵니다.”
“그 사람들한테는 형사님이 가십시오. 제가 가면 안 됩니다.”
“왜요.”
“제가 가서 물으면 그것도 사전 접촉입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태주가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어제 서 선생님 건으로 배우셨군요.”
“배웠습니다.”
“진술 받겠습니다.”
“제 것은 그대로 두십시오.”
“원장님.”
“네.”
“정정 안 하시면 법정에서 그 대목만 열 번 나옵니다.”
“나오게 두십시오.”
“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나는 창밖을 봤다. 고시원 창으로는 옆 건물 벽밖에 안 보였다.
“고치면 나중에 또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
“지금 저쪽이 하고 있는 게 그겁니다. 롤백하면 없던 일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요.”
태주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형사님.”
“말씀하십시오.”
“임 선생 유월 건, 전원 간 병원 확인되면 저한테는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안 궁금하십니까.”
“궁금합니다. 그런데 그건 임 선생이 먼저 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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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고시원 방에서 다시 사진을 열었다.
`적용 시간대: 22:00 - 06:00`
여덟 시간이었다.
하루의 삼분의 일이고, 병원이 가장 조용한 시간이고, 사람 하나가 혼자 판단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 여덟 시간을 고른 사람은 병원에서 일해 본 사람이다. 어느 시간에 누가 몇 명 남는지, 언제 전화를 걸기가 가장 어려운지 아는 사람이다.
의사일 수도 있고 간호사일 수도 있고 그 옆에서 오래 본 사람일 수도 있다.
외삼촌은 아니다. 그는 조건란을 만질 위치에 있어 본 적이 없다.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침통을 열었다.
스물네 개가 그대로 있었다.
내일은 봉인이 풀리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풀리면 청소부터 해야 한다. 다섯 달 동안 아무도 안 쓴 진료실이다.
간판 아래 아크릴 판은 아직 걸려 있다.
야간 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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