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이십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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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은 화요일 오전에 풀렸다.
경찰관 두 명이 와서 표식을 떼고 확인서를 받아 갔다. 십 분도 안 걸렸다. 다섯 달을 막고 있던 것이 종이 한 장이었다.
문을 열자 안에서 마른 먼지 냄새가 나왔다.
진료실 침대는 밀린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바닥 문은 감식이 열어놓고 간 뒤로 닫히지 않았다. 나는 그 문을 먼저 닫고 위에 침대를 다시 올렸다. 다리 네 개가 원래 자국에 들어갔다.
접수대를 닦았다. 마른 볼펜을 버리고 새 볼펜을 꺼냈다. 벽시계 건전지를 갈았다. 초침이 돌기 시작하는 데 삼 초쯤 걸렸다.
안쪽 방에 내 옷이 있었다. 다섯 달 만에 갈아입었다.
약장을 열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골라내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절반이 넘었다. 골라낸 것을 상자에 담아 의료폐기물 업체에 연락했다.
소독포를 삶고, 침통을 열어 침을 하나씩 확인했다. 스물네 개 다 멀쩡했다. 다섯 달 동안 닫혀 있었는데 녹이 안 슬었다. 좋은 통이었다.
접수대 서랍에서 진료기록부를 꺼냈다. 마지막 장에 민도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날 밤 내가 손으로 쓴 것이었다.
체온 39.1도. 혈압 낮음. 좌하복부 통증. 대학병원 검사상 특이소견 없음.
그다음 칸이 비어 있었다. 그날 나는 다음 줄을 못 썼다. 구급차가 왔고 경찰이 왔고 새벽 한 시가 넘었다.
나는 그 칸에 오늘 날짜를 적고 한 줄을 썼다.
`환자 회복, 퇴원 확인.`
다섯 달 늦은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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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오후 네 시였다.
“계정 명의자 나왔습니다.”
“누굽니까.”
“전화로는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왜요.”
“저녁에 가겠습니다. 서 선생님도 부르겠습니다.”
“한의원으로요?”
“오늘 여신다면서요.”
“누가 그럽니까.”
“도윤 씨가요.”
태주가 잠깐 말을 골랐다.
“원장님, 오늘 여시는 게 좋은 생각입니까.”
“왜요.”
“조서에 진맥 얘기가 있습니다. 지금 진료를 시작하시면 상대가 그걸 씁니다. 환자로 분류돼 있는 사람이 다음 날 진료실을 열었다고요.”
“분류는 병원 전산 얘기고 면허는 따로입니다.”
“법정에서는 그렇게 안 들립니다.”
“그럼 언제 여는 게 좋겠습니까.”
“재판 끝나고요.”
“몇 년입니까.”
태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형사님.”
“말씀하십시오.”
“그동안 밤에 갈 데 없는 사람은 어디로 갑니까.”
“…….”
“저 하나 문 닫아도 세상은 굴러갑니다. 압니다. 그런데 제가 문 닫는 이유가 제 재판이면, 그건 제가 저를 위해서 닫는 겁니다.”
“그게 나쁩니까.”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적어 두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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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아래 아크릴 판을 닦았다.
야간 진료.
글자 가장자리가 흐려져 있었지만 읽히기는 했다. 새로 만들 수도 있었다. 만들지 않았다.
여섯 시에 형광등을 켰다.
첫 손님은 없었다. 일곱 시에도 없었다.
일곱 시 사십 분에 문이 열렸다.
임 선생이었다.
가운을 안 입었고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문 안쪽에 서서 가게를 둘러봤다.
“여기가 그 한의원입니까.”
“맞습니다.”
“오늘 연다고 형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앉으십시오.”
임 선생은 앉지 않고 진료실 쪽을 봤다. 열린 문 너머로 침대와 침통과 벽시계가 보였다.
“진료 받으러 오신 겁니까.”
“아닙니다.”
“그럼요.”
“모르겠습니다.”
임 선생이 그제야 의자에 앉았다.
“유월 그 환자, 형사님이 확인해 주셨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전원 간 병원에서 그날 새벽에 사망했습니다.”
시계 초침 소리가 났다. 아까 갈아 끼운 건전지가 잘 도는 소리였다.
“일흔둘이었고, 기저질환이 있었고, 전원 시점에 이미 안 좋았습니다.” 임 선생이 말했다. “그 병원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하고요. 그 말도 맞을 겁니다.”
“…….”
“제가 그 십오 분에 뭘 했으면 달라졌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릅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는군요.”
“모르는 걸 안다고 하면 그다음에 아무것도 못 세웁니다.”
임 선생이 고개를 숙였다. 오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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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어나서 진료실로 들어갔다.
책상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오후에 써 둔 것이었다. 볼펜으로 썼고 글씨가 크다.
가지고 나와서 접수대 옆 벽에 붙였다.
임 선생이 고개를 들었다.
`이 진료실의 판정 기준`
`하나. 응급 판정 전 최소 이십 분을 본다.`
`둘. 이십 분을 줄일 때는 줄인 사람의 이름과 이유를 적는다.`
`셋. 화면은 이름을 적지 않는다.`
임 선생은 그것을 세 번쯤 읽었다.
“이십 분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선생님이 세던 숫자입니다.”
“제가요?”
“어제 그러셨습니다. 이십 분 하고, 안 되면 팀한테 물어보고, 보호자 부르고. 그렇게 배웠다고요.”
“그건 제 병원 프로토콜입니다. 여기는 한의원이고요.”
“그래서 제 벽에 붙였습니다.”
임 선생이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세 번째 줄은 무슨 뜻입니까.”
“화면은 이름을 안 적습니다. 오더를 내도 누가 냈는지 안 남습니다. 사람은 남습니다.”
“그게 다입니까.”
“그게 답니다.”
임 선생은 한참 더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다음에도 이십 분을 셀 겁니다.”
“네.”
“세면서 이게 맞나 생각할 거고요.”
“그러실 겁니다.”
“그게 나아진 겁니까, 나빠진 겁니까.”
나는 벽의 종이를 봤다.
“적어 두면 나아집니다.”
“적어도 사람은 죽습니다.”
“죽습니다.”
“…….”
“그때 누가 무엇을 왜 줄였는지는 남습니다.”
임 선생이 문 쪽으로 갔다. 문고리를 잡고 섰다.
“선생님, 여기 야간에 엽니까.”
“엽니다.”
“몇 시까지요.”
“자정까지요.”
“제가 비번 날 와도 됩니까.”
“환자로요?”
“아니요.”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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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와 지안은 여덟 시 반에 왔다.
셋이 접수대 앞에 섰다. 태주가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카운터에 놓았다.
전자결재 로그 출력물이었다. 결재란에 계정 아이디가 있고, 그 아래 실명 확인 결과가 붙어 있었다.
지안이 그것을 먼저 봤다.
그가 종이를 잡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서 선생님.” 태주가 말했다.
“…….”
“아시는 분입니까.”
지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종이를 카운터에 내려놓고 손을 뗐다.
나는 이름을 읽었다.
`배준상`
그 아래 직함이 있었다.
`전 응급의학과 교수 / 現 의료정보사업부 자문`
“제 지도교수입니다.” 지안이 말했다.
시계 초침이 돌았다.
“몇 년입니까.” 내가 물었다.
“육 년 배웠습니다.”
“…….”
“제가 응급실에서 이십 분 세는 것도 그분한테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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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가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내일 소환합니다.”
“나옵니까.” 내가 물었다.
“나올 겁니다. 도망갈 사람이면 롤백을 안 했겠죠.”
지안은 아직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서 선생님.” 태주가 말했다. “진술하실 때 그 관계 말씀하셔야 합니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사건에서 빠지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압니다.”
지안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어제와 같았다. 응급실에서 손을 안 놓던 얼굴이었다.
“빼기 전에 하나만 확인하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그분이 조건란에 이십이 시부터 여섯 시라고 적었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그럼 그건 밤을 아는 사람이 적은 게 아닙니다.”
지안이 벽에 붙은 내 종이를 봤다.
“밤에 사람을 가르쳐 본 사람이 적은 겁니다.”
태주가 봉투를 든 손을 내렸다.
“그게 무슨 차이입니까.”
“밤을 아는 사람은 밤에 사람이 적다는 걸 압니다. 가르쳐 본 사람은 밤에 삼 년 차가 뭘 망설이는지까지 압니다.”
“…….”
“이십 분을 십오 분으로 줄인 건 아무 숫자나 고른 게 아닙니다. 삼 년 차가 이십 분을 다 못 채우고 손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지점입니다. 저는 그걸 육 년 동안 그분한테 배웠습니다.”
지안은 거기서 말을 멈췄다.
“진술서에 그것도 적겠습니다.”
“그건 의견입니다.” 태주가 말했다. “진술서에는 사실만 적으십시오.”
“그럼 사실만 적겠습니다.”
“무엇을요.”
“제가 그분한테 이십 분을 배웠다는 것요.”
태주가 수첩을 꺼내 그 문장을 적었다.
“그리고 제 로그도 흔들립니다.” 지안이 말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응급실 대기 중 스물세 번. 그거 제가 낸 겁니다. 배 교수 제자가 낸 기록이라고 하면 상대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짜고 쳤다고 하겠죠.”
“그러니까 빠지는 게 맞습니다.”
지안이 카운터에서 손을 뗐다.
“대신 그날 응급실에 간호사가 셋 있었습니다.”
나는 그를 봤다.
“원장님이 어제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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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나간 뒤에 나는 문을 잠그지 않았다.
자정까지 이십 분 남아 있었다.
접수대 불을 켜 두고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침통을 꺼내 열었다.
스물네 개가 그대로였다.
한 개를 꺼내 소독포 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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