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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을 짚으면 살의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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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수속은 아홉 시에 끝났다. 서지안이 서류를 넘겨주면서 마지막으로 혈압을 쟀다. 숫자를 적고, 펜을 꽂고, 차트를 덮었다. “오늘부터 환자 아닙니다.” “분류는요.” “분류는 그대로입니다. 진료 종결이지 취소가 아닙니다.” 그는 차트를 옆구리에 끼웠다. “한동안은 그쪽이 안전합니다.” --- 강태주는 열한 시에 왔다.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일어섰다. “새벽에 들어갔습니다.” “업체에요?” “본사하고 서버실 두 곳입니다.” 그는 종이 뭉치를 들고 있었다. 압수 목록 사본이었고, 형광펜이 세 군데 그어져 있었다. “법인 등기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임대인 법인과 의료정보 업체와 청우통합의학연구원은 이름이 셋이었고 주소가 하나였다. 대표자도 하나였다. 이름은 처음 듣는 사람이었고, 등기상 주소지에 산 적이 없었다. “바지입니다.” 태주가 말했다. “실제로 결재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찾으셨습니까.” “전자결재 로그는 남아 있습니다. 계정 명의자는 확인 중입니다.” “세림바이오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 이름으로 등기된 법인은 없습니다.” 나는 그를 봤다. “없다고요?” “상표 등록만 되어 있습니다. 소유자가 이 법인이고요.” “그럼 저희가 다섯 달 동안 쫓은 게—” “이 회사의 사업 부문 이름입니다.” 태주가 목록의 한 줄을 손톱으로 눌렀다. `의료정보사업부 / 임상데이터팀` 세림바이오는 회사가 아니었다. 부서였다. 환자 열두 명을 만들고 지하에 의자를 놓은 것이 팀 하나였다. “점검 주기도 나왔습니다.” 그가 말했다. “십칠 분 말씀입니까.” “설정값입니다. 업체 표준은 삼십 분인데 이 열한 곳만 십칠 분으로 바꿔 놨습니다.” “누가 왜 바꿨는지 적혀 있습니까.” “변경 사유란은 비어 있습니다.” 십칠 분은 창고 환자들의 심장이 동시에 떨어지던 주기였다. 그 숫자를 그대로 점검 주기에 넣은 사람은, 자기가 만든 것을 자기 손으로 보러 오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음 장을 넘겼다. “그리고 이게 원장님이 물으실 겁니다.” --- `진료지원 규칙세트 v4.13` `배포 대상 병원: 11` `최초 배포일: 3월 4일` `최종 갱신: 8월 9일` 나는 그 네 줄을 세 번 읽었다. “이게 뭡니까.” “업체가 병원에 깔아 주는 겁니다. 검사 수치 보고 알림 띄우는 기능이요. 원래 있던 거고, 그 자체는 불법이 아닙니다.” “문제는요.” “팔월 구일 갱신본입니다.” 태주가 목록의 마지막 줄을 짚었다. `v4.13 → v4.14 (조건 규칙 추가 47건)` “지하에서 종이가 나온 날입니다.” `학습 모델 전송 완료` 그날 화면에 뜬 문장이었다. 전송된 목적지는 비어 있었다. 비어 있던 게 아니었다. 목적지 칸이 병원 이름 열한 개짜리 목록이라 한 줄에 안 들어간 것이었다. “열한 곳입니다.” 태주가 말했다. “전부 같은 규칙이 들어갔습니까.” “들어갔습니다. 어제 오후에 롤백됐고요.” “누가 했습니까.” “업체가요. 압수수색 들어가기 여섯 시간 전에.” --- 나는 로비 창가로 걸어갔다. 열세 번째는 사람이 아니었다. 의자에 앉을 몸도 아니었고, 승합차를 타고 도심으로 간 무엇도 아니었다. 정기 점검 때 병원마다 깔리는 규칙 세트의 버전 하나였다. 사 초와 조건문과 다음 동작이 사십칠 줄 늘어난 판본. 그것은 나를 흉내 내려고 만들어졌고, 만들어진 뒤에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의자는 미끼였다. 앉든 안 앉든 규칙은 이미 복사가 끝나 있었다. “원장님.” “네.” “롤백은 규칙만 되돌립니다.” 태주가 종이를 넘겼다. “그 규칙으로 이미 내려간 오더는 안 되돌아갑니다.” “몇 건입니까.” “지금 세는 중입니다.” “추정이라도요.” 그는 대답하기 전에 종이를 접었다. “오 개월입니다. 열한 곳이고요.” 숫자가 아니라 기간과 개수만 말한 것이 대답이었다. 도윤의 차트에 뜬 오더는 사 초 만에 취소됐다. 다른 병원의 오더는 야간 간호사가 두 번 전화를 걸어 막았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 두 건이다. 막힌 것만 우리가 안다. “원장님, 그 표정 하지 마십시오.” 태주가 말했다. “어떤 표정입니까.” “전부 세어보겠다는 표정이요.” “세어야 합니다.” “세는 건 저희가 합니다.” 나는 창밖을 봤다. 주차장에 구급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형사님.” “말씀하십시오.” “오 개월 동안 그 알림을 본 의료진은 그게 알림인 줄 알았을 겁니다.” “그렇겠죠.” “대부분은 따랐을 거고요.” “따르라고 만든 거니까요.” “따른 사람은 잘못한 겁니까.” 태주가 종이를 접다 말았다. “그건 제가 판단할 게 아닙니다.” “그럼 누가 합니까.” “그러니까 세는 겁니다.” 그가 말했다. “세어놓지 않으면 아무도 판단 안 합니다. 그냥 없던 일이 됩니다.” 그는 접은 종이를 봉투에 넣었다. “원장님은 오늘 조사부터 받으십시오.” --- 오후에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병원 근처 경찰서였고, 방은 작았고, 창이 높았다. 태주는 옆방에 있었다. 조사는 다른 형사가 맡았다. 이름은 들었지만 기억이 안 난다. 기본적인 것부터 물었다. 이름, 직업, 청우한의원 개원 경위, 외삼촌과의 관계, 서류에 서명한 날짜. 한 시간쯤 지나서 그가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어제 응급실 건입니다.” `이탈 권고: 다음 대상` `대기 중` × 23 “이 시간에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환자 손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진맥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한의사가 손목을 잡으면 진맥이다. 그 말이 조서에 들어가면 나는 의료 행위를 한 것이 되고, 분류가 뒤집히고, 오더가 다시 나갈 수 있다. 어제 그것 때문에 지안이 문장 하나를 따로 적어 두었다. 그런데 그 이유로 대답을 고르면 나는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셈이었다. 나는 그날 손끝으로 무언가를 들었다. 모니터에 안 잡히는 떨림이었다. 그건 삼십 년 동안 익힌 것이고, 익힌 것을 쓰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형사가 펜을 들고 기다렸다. “기다렸습니다.” “무엇을요.” “그 사람 맥이 다음 박동을 낼지 말지를요.” “그게 진료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모르시면 곤란합니다. 한의사가 환자 손목을 잡았습니다. 이걸 진맥이 아니라고 하시려면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근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만들어 보십시오.” “그날 저는 아무 지시도 안 했습니다. 침을 들지 않았고 약을 쓰지 않았고 담당의에게 소견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 말은 세 마디입니다. 맥이 있습니다. 기다립니다. 지금입니다.” “세 번째는 지시 아닙니까.” 나는 잠깐 멈췄다. “지시로 보실 수 있습니다.” 형사가 펜을 들었다. “그럼 그렇게 적겠습니다.” “적으십시오.” 그는 적다가 손을 멈췄다. “선생님, 지금 본인한테 불리하게 가고 계십니다.” “압니다.” “변호인이 있으면 여기서 말리게 돼 있습니다.” “없습니다.” “부르실 수 있습니다.” “나중에 부르겠습니다.” 방이 조용했다. 창이 높아서 밖이 안 보였고, 벽에 걸린 시계 초침 소리만 났다. “판단은 제가 안 합니다.” 나는 종이 위의 스물세 줄을 봤다. “저는 그때 뭘 했는지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손을 잡고 기다렸습니다. 놓지 않았습니다.” 형사가 그것을 받아 적었다. 받아 적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가 다 적을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했다. --- 조서를 읽고 서명했다. 밖으로 나오니 태주가 복도에 서 있었다. 그는 커피를 두 개 뽑아서 하나를 내밀었다. “들었습니다.” “옆방에서요?” “소리 나갑니다.” 우리는 복도 끝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셨다. 종이컵이 얇아서 손이 뜨거웠다. “그 대답 안 좋습니다.” 태주가 말했다. “압니다.” “변호사가 물고 늘어질 겁니다. 한의사가 손목을 잡았으면 진맥이라고요.” “그럴 겁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종이컵을 창틀에 놓았다. “도윤 씨가 그렇게 했습니다.” 태주가 나를 봤다. “불리한 걸 알면서 자기가 한 걸 그대로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환자고 원장님은 다릅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복도 저쪽에서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지나갔다. 지나갈 때까지 우리는 말을 멈췄다. “열한 곳 명단 주실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수사 자료입니다.” “그럼 병원 이름 말고 지역만이라도요.” “왜요.” “오 개월 동안 그 규칙으로 이탈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들 보호자는 아직 모릅니다.” 태주는 커피를 다 마시고 컵을 접었다. “그건 제가 합니다.” “형사님 일입니까.” “원장님 일이 아닙니다.” 그는 접은 컵을 주머니에 넣었다. “원장님은 지금 참고인이고, 곧 피해자고, 어쩌면 증인입니다. 그 셋 중에 뭐가 되든 명단은 못 봅니다.” “압니다.” “아시는 분이 왜 물으십니까.” “물어보지 않으면 안 물어본 게 되니까요.” ---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청우한의원 쪽으로 걸었다. 봉인은 아직 붙어 있었다. 유리문 안쪽은 어두웠고, 접수대 위에 내가 어제 켜 두었던 형광등이 꺼져 있었다. 누가 껐는지는 모르겠다. 전기를 내린 것일 수도 있다. 간판 아래 아크릴 판은 그대로였다. 야간 진료. 열한 곳 중에 몇 곳이 야간에 그 알림을 띄웠을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밤에는 확인 전화를 걸 사람이 적다. 그것을 계산에 넣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밤에는 확인 전화를 걸 사람이 적다. 그것을 계산에 넣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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