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Fic
맥을 짚으면 살의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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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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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층에서 연락이 온 것은 수요일 아침이었다. "보호자분 되시죠." "조카입니다." "어제 관을 뺐습니다." 나는 접수대에서 일어섰다. "말씀은요." "아직입니다. 성대가 부어서 며칠 걸립니다." "…….." "그런데 손을 쓰십니다." --- 병실에 들어갔을 때 외삼촌은 침대를 세우고 앉아 있었다. 목에 거즈가 붙어 있었고 코의 관은 그대로였다. 살은 더 빠져 있었다. 눈이 나를 먼저 찾았다. 지난번보다 초점이 빨리 맞았다. "외삼촌." 그가 오른손을 조금 들었다. 간호사가 협탁에 스케치북과 굵은 사인펜을 놓아두고 갔다고 했다. 손 떨림이 있어서 볼펜은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스케치북을 무릎에 놓아 드렸다. --- 그가 첫 장을 넘겼다. 이미 쓴 것이 있었다. 어제 쓴 모양이었다. `목마르다` `아프다` `몇시` 세 줄이었다. 글씨가 크고 삐뚤었다. 그가 다음 장을 넘겼다. 빈 장이었다. 사인펜을 잡는 데 시간이 걸렸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우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감쌌다. 두 번 미끄러졌다. --- 그가 썼다. `너` 한 글자를 쓰고 멈췄다. 손이 떨려서 획 끝이 흔들렸다. `왔` `구` `나` 네 글자를 쓰는 데 일 분쯤 걸렸다. "왔습니다." 그가 사인펜을 놓았다. 놓고 나서 손을 폈다 쥐었다. 나는 기다렸다. --- 다시 잡았다. `미` 거기서 멈췄다. 지난번에도 그 모양이었다. 그때는 입이었고 지금은 손이다. 나는 지난번에 막았다. 이번에는 안 막았다. 그가 다음 글자를 썼다. `안` 두 글자였다. 그 아래에 마침표도 없고 다른 말도 없었다. --- 나는 그 두 글자를 봤다. `미안` 십칠 년 만이었다. 어머니 장례 뒤에 그와 나는 서로에게 그 말을 한 적이 없다. 할 일이 없었고, 할 일이 생긴 뒤에는 못 했다. "들었습니다." 그가 고개를 조금 움직였다. "외삼촌." "…….." "그 말은 이제 들었으니까 됐습니다." 그가 사인펜을 다시 잡았다. --- `아니` `다` 두 글자를 쓰고 그다음 줄로 갔다. `할말` `따로` `있다` 나는 스케치북을 조금 돌려 잡았다. 그가 쓰기 편한 각도로. --- `재` `활` `병` `원` 한 글자씩이었다. 사인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났다. `온사람` 그가 거기서 손을 멈췄다. 숨을 두 번 쉬고 다시 썼다. `의사` "의사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몰라` --- "어떻게 생겼습니까." 그가 사인펜을 들었다가 놓았다. 얼굴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대신 다른 걸 썼다. `나이` `나랑` `비슷` "…….." `말투` `병원` `사람` `아니고` `가르치는` `사람` 나는 그 여섯 줄을 읽었다. 가르치는 사람. --- "외삼촌." 그가 나를 봤다. "그 사람이 뭐라고 했습니까." 사인펜이 다시 움직였다. `니맥` `재는거` `알려주면` `누나` `얼굴` `찾아준다` 그가 거기까지 쓰고 손을 내렸다. --- 나는 스케치북을 무릎에서 들지 않았다. `누나 얼굴 찾아준다` 기억을 되찾게 해 준다는 말은 조서에도 있었다. 태주가 읽어 준 문장에도 있었다. 그런데 조서에는 뇌 치료라고 적혀 있었다. 의사가 뇌 치료를 말했다면 그건 진료다. 누나 얼굴을 찾아 준다고 했다면 그건 다른 것이다. --- "믿으셨습니까." 그가 한참 있다가 썼다. `안믿었다` "…….." `근데` `매주` `왔다` `아무도` `안오는데` `그사람만` 사인펜 뚜껑이 협탁에서 굴러 떨어졌다. 나는 줍지 않았다. `매주` `와서` `누나` `얘기` `물었다` `나는` `대답` `했다` --- "외삼촌." "…….." "제 얘기는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그의 손이 멈췄다. 멈춘 채로 오래 있었다. `석달` `쯤` `뒤` "…….." `니가` `손목` `잡는걸` `봤다고` `했다` `그사람이` `몇초냐고` `물었다` --- 나는 창 쪽을 봤다. 칠 층 창으로 주차장이 보였다. 구급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세본적` `없다고` `했다` `그래서` `세라고` `했다` `공책도` `그사람이` `사오라고` --- 나는 그 병실을 기억한다. 재활병원 육 층이었고 창이 서쪽이라 오후에 해가 들었다. 침대가 넷이었고 외삼촌은 창가에서 두 번째였다. 가면 나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고, 앉으면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건 인사였다. 말을 못 하는 사람에게 하는 인사였고, 나는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잡고 있으면 아무 소리도 안 났다. 옆 침대 텔레비전 소리와 복도 카트 소리만 났다. 그동안 그는 세고 있었다. 세면서 나를 봤을 것이다. 내가 놓을 때가 언제인지 보려면 얼굴이 아니라 손을 봐야 하는데, 그는 얼굴을 봤던 것 같다. 사람은 놓기 전에 얼굴이 먼저 바뀐다. `미안하다`를 그때 쓸 수도 있었다. 그는 안 썼다. 대신 숫자를 적었다. --- "외삼촌." 그가 사인펜을 다시 들었다. "그거 왜 계속 적으셨습니까." 그의 손이 종이 위에서 한참 멈춰 있었다. `처음엔` `시켜서` 한 줄을 쓰고 다음 줄로 갔다. `나중엔` `니가` `언제` `안오나` `보려고` 나는 그 다섯 줄을 읽었다. `숫자` `줄면` `곧` `안온다` `그거` `알고` `싶었다` --- "그래서 마지막 장은 왜 비우셨습니까." 그가 처음으로 눈을 감았다. 감은 채로 있다가 떴다. `그날` `니가` `안왔다` `셀게` `없었다` "…….." `근데` `빈칸으로` `두면` `그사람이` `영이라고` `쓸것같아서` 사인펜이 종이를 눌렀다. 획이 굵어졌다. `영은` `아니라서` --- 나는 스케치북을 협탁에 내려놓았다. 그가 사인펜을 놓지 않고 들고 있었다. "외삼촌." 그가 나를 봤다. "이거 형사님한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그가 사인펜을 다시 잡았다. `한다` `나` `며칠` `남았냐` "…….." `안남았어도` `한다` --- 간호사가 들어와 수액을 갈았다. 나가면서 스케치북을 보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외삼촌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오래 쥐고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나는 사인펜을 받아 뚜껑을 찾아 끼웠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을 내 두 손 사이에 넣었다. 손목이 아니라 손이었다. 그가 손가락을 오므렸다. 나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 면회가 끝날 때 간호사가 왔다. 나는 스케치북을 협탁에 그대로 두었다. 가져가면 증거가 되고, 두면 그냥 환자 물건이다. 태주가 정식으로 받아 가야 한다. 나가기 전에 그 장을 한 번 더 봤다. `영은` `아니라서` 거기서 끝나 있었다. 문 앞에서 돌아봤다. 그는 다시 사인펜을 잡고 있었다. 뭔가를 쓰려는 자세가 아니라 그냥 쥐고 있는 자세였다. --- 일 층에서 태주에게 전화했다. "칠 층에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십니까?" "글로 쓰십니다." "…….." "제가 옮겨 적지 않았습니다. 스케치북 그대로 있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태주가 잠깐 있었다. "잘하셨습니다." "내일 오십니까." "오늘 갑니다." 끊고 나서 나는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았다. 앉아서 아무것도 안 했다. 십 분쯤 뒤에 일어나서 가게로 갔다. 여섯 시에 문을 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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