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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을 짚으면 살의가 들린다

29

지하 이 층

수색은 월요일 아침에 했다. 태주가 전화로 알려 줬고 나는 가지 않았다. 참고인이 갈 자리가 아니었다. 오후 두 시에 그가 왔다. "있었습니다." "방이요?" "계단참 뒤에 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도면에는 배관실로 되어 있고요." "안은요." "사람이 살았습니다." --- 그는 사진을 보여 주지 않았다. 대신 목록으로 말했다. 접이식 침대 하나. 전기 포트. 옷걸이 봉에 걸린 셔츠 네 벌. 컵라면 상자. 그리고 벽에 붙은 종이 여러 장. "종이가 뭡니까." "명단입니다." 태주가 수첩을 폈다. "이름하고 주소가 적혀 있습니다. 손으로 쓴 겁니다." "몇 명입니까." "쉰넷입니다." --- 나는 그 숫자를 두 번 들었다. "쉰넷이요." "쉰넷입니다." "열두 명이 아니고요." "열두 명은 창고에 있던 사람들이고요, 이건 이 사람이 태우러 다닌 전체입니다." "이 년 동안이요." "열여덟 달 동안이요." 태주가 다음 장을 넘겼다. "그리고 이름 옆에 표시가 있습니다." --- 동그라미와 사선이었다. 동그라미는 태운 사람이고 사선은 안 태운 사람이라고 했다. "몇 대 몇입니까." "동그라미가 서른하나, 사선이 스물셋입니다." "…….." "사선 옆에 짧게 적힌 것도 있습니다." 태주가 수첩에서 몇 개를 읽었다. `문 안 열음` `애기 울어서 못 부름` `아버지가 나옴` `두 번 갔는데 두 번 다 없음` `나왔다가 다시 들어감` --- 나는 접수대에 손을 짚었다. 스물세 명은 안 실렸다. 그중 몇은 그가 못 부른 것이고 몇은 그냥 안 나온 것이다. 종이만 봐서는 구분이 안 된다. "이거 본인이 왜 적었답니까." 내가 물었다. "안 물어봤습니다." "…….." "오늘 조사에서 물을 겁니다." 태주가 수첩을 접었다. "그런데 원장님, 이게 그 사람한테 유리한 건지 불리한 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 "서른한 명을 태웠다는 기록이기도 하고, 스물세 명은 안 태웠다는 기록이기도 하니까요." "검사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아직 안 보셨습니다. 오늘 올립니다." 태주가 창 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제 생각을 말씀드릴까요." "말씀하십시오." "불리합니다." "…….." "이 명단은 이 사람이 뭘 하는지 알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으면 이런 걸 안 적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동그라미와 사선을 나눠 적으려면 그 둘이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다르다는 걸 아는 사람은 고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유리하기도 합니다." 태주가 말했다. "…….." "스물세 번은 안 골랐다는 뜻이니까요." "둘 다입니까." "둘 다입니다. 법정에서는 하나만 씁니다." --- 서른한 명 중에 창고에 있던 열두 명이 포함되는지 물었다. "열한 명이 포함됩니다." 태주가 말했다. "열두 명이 아니고요." "본인은 자기가 안 태웠습니다." "…….." "열두 번째는 걸어 들어갔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들었다. 명단에 자기 이름은 없다. 적은 사람이 자기니까 없다. 그런데 창고에는 열두 명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그였다. 서른한 개의 동그라미 밖에 그가 있다. --- 저녁에 그가 왔다. 여덟 시 사십 분이었고 조사를 받고 온 얼굴이었다. 어깨가 내려가 있었다. 접수대에 앉히고 손목을 짚었다. 고르게 왔다. 여섯 번째였다. `맥 고름. 결체 없음. 이상 소견 없음.` 적고 나서 펜을 놓았다. "명단 얘기 들었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왜 적으셨습니까." --- 그는 한참 대답을 안 했다. "처음에는 안 적었습니다." "…….." "주소 종이를 받으면 갔다가 돌아와서 버렸습니다. 그게 몇 달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적으셨습니까." "작년 사월쯤이요." "그때 뭐가 있었습니까." "같은 이름을 두 번 받았습니다." --- "두 번이요." "삼월에 태우러 갔는데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냥 왔고요." "…….." "사월에 종이에 그 이름이 또 있었습니다." "…….." "제가 안 태웠는데도 다시 온 겁니다. 그러면 제가 안 간 게 아무 소용이 없는 거잖습니까." 그가 손을 무릎에 놓았다. "그때부터 적었습니다." --- "적으면 소용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 "그런데 안 적으면 제가 몇 번 안 갔는지 저도 모르게 됩니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들으면서 내 벽에 붙은 종이를 생각했다. `둘. 이십 분을 줄일 때는 줄인 사람의 이름과 이유를 적는다.` 내가 그 줄을 쓸 때 나는 배준상을 생각하며 썼다. 이 사람이 벽에 종이를 붙일 때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 "하성규 씨." "네." "사선 옆에 적으신 것들 있죠." "네." "애기 울어서 못 불렀다는 거요." 그가 눈을 조금 내렸다. "그 집이 반지하였습니다. 창으로 안이 보였고요." "…….." "밤 열한 시였는데 애기가 울고 여자가 안고 있었습니다. 문을 두드리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안 두드리셨군요." "두드렸으면 나왔을 겁니다." --- "그날 뭐라고 적으셨습니까." "애기 울어서 못 불렀다고요." "…….." "돌아와서 적었습니다. 차 안에서요." "그 여자분 이름은요." "적혀 있습니다." "…….." "이름을 적어 놨으니까 다음에 또 종이에 나오면 알아봤을 겁니다." "나왔습니까." "안 나왔습니다." 그가 손끝으로 접수대 모서리를 한 번 눌렀다. "열아홉 명은 안 나왔습니다. 아까 형사님한테 들었습니다." "…….." "제가 안 가서 안 나온 건지, 원래 안 부를 사람이었는지는 모릅니다." "모르십니까." "모릅니다. 그건 저쪽이 정하는 거니까요." --- 이만 원을 받고 영수증을 끊었다. 여섯 번째였다. 뜯어서 주는데 그가 받지 않고 잠깐 있었다. "원장님." "네." "이거 계속 모아도 됩니까." "모으십시오." "…….." "저는 여기 카본지가 남습니다. 같은 게 두 장씩 생깁니다." 그가 영수증을 받았다. "두 장이면 하나는 없어져도 됩니다." --- 그가 나가고 나서 태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명단 사본 받을 수 있습니까.` `수사 자료입니다.` `압니다.` `왜 필요하십니까.` 나는 답을 쓰다가 지웠다. 스물세 명 중에 몇 명이 그 뒤에 다시 불렸는지, 그중 몇 명이 결국 실렸는지 나는 알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 아니고, 안다고 해서 지금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한참 뒤에 문자가 하나 더 왔다. `스물세 명 중에 열아홉 명은 그 뒤로 명단에 다시 안 올라옵니다.` `나머지 넷은요.` `확인 중입니다.` --- 가게 문을 잠그고 나왔다. 골목 끝을 봤다. 흰 승합차는 없었다. 주머니에서 어제 적어 둔 번호를 꺼냈다. 종이가 아니라 휴대전화 메모였고, 나는 그것을 열어서 봤다. 지우려다 안 지웠다. 메모를 닫고 걸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오 분이 걸린다. 걷는 동안 나는 그 명단을 생각했다. 쉰네 개의 이름이 벽에 붙어 있었다. 그 방에 사는 사람이 매일 그것을 봤다. 자기가 한 일과 안 한 일을 같은 벽에 붙여 놓고 잤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앞에 여자가 하나 서 있었다. 아기 띠를 하고 있었고 아기는 자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보지 않으려고 반대쪽을 봤다. 보지 않으려고 한 게 오늘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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