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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을 짚으면 살의가 들린다

28

열한 곳

임 선생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토요일이었다. "선생님, 지금 통화 되십니까." "됩니다." "저 지금 세 번째 병원 사람하고 통화하고 왔습니다." 나는 접수대에서 일어섰다. "임 선생님." "압니다. 사전 접촉이라고 하실 거죠." "…….." "형사님한테 먼저 말씀드리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순서를 지켰습니다." --- 태주가 오후에 왔다. 혼자가 아니었다. 뒤에 젊은 형사가 하나 더 있었고, 그 사람은 문 안쪽에 서서 안 들어왔다. "임 선생님이 명단을 만들었습니다." "명단이요." "수사 명단이 아니라 학회 명단입니다. 응급의학과 삼 년 차 이상 중에 그 열한 곳에 근무했거나 근무하는 사람들이요." 태주가 종이를 카운터에 놓았다. 이름이 스물여섯 개 있었다. "이 사람들한테 물어본 겁니까." "임 선생이 물은 건 셋입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갑니다." "셋 중에 뭐가 나왔습니까." "둘은 못 봤답니다." "…….." "하나는 봤답니다." --- 세 번째 사람은 지방 병원 응급의학과였다. 작년에 그 병원에 있었고 지금은 다른 데로 옮겼다. 사월과 오월에 야간 근무를 열두 번 섰고, 그중 두 번 이탈 권고를 봤다고 했다. "두 번 다 따랐답니다." 태주가 말했다. 나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환자는요." "한 명은 그날 사망했고 한 명은 다음 날 사망했습니다." 가게 안이 조용했다. "그 사람이 그걸 어떻게 기억합니까." 내가 물었다. "기억 안 났답니다." "…….." "임 선생이 날짜를 불러 주니까 근무표를 찾아봤고, 찾아보니까 있었답니다." --- "그 사람 지금 어떻습니까." 태주가 대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울었답니다." "…….." "임 선생이 전화를 못 끊었다고 하더군요." 나는 창 쪽을 봤다. 토요일 오후라 골목에 사람이 있었다. "임 선생님은요." "뭐가요." "그 통화 끝나고요." 태주가 수첩을 무릎에 놓았다. "저한테 전화하셨습니다." "…….." "자기가 오월에 그 화면을 안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상대한테 안 했답니다." "왜요."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답니다." 같은 화면을 본 두 사람이 있고, 한 사람은 따르지 않았고 한 사람은 따랐다. 따르지 않은 쪽이 따른 쪽에게 그 말을 못 한다. "두 명입니다." 태주가 말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게 두 명이고요, 나머지 여덟 곳은 아직 안 갔습니다." "여덟 곳이요." "열한 곳 중에 셋을 봤습니다." "셋에서 둘이 나왔으면요." "세지 마십시오." 태주가 나를 봤다. "세는 건 저희가 합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 "…….." "그리고 지금 세면 틀립니다. 셋 중에 둘이라고 여덟 곳에 곱하면 그건 숫자 놀이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인데 나는 이미 곱해 놓은 뒤였다. --- 배준상 쪽 소식도 같이 왔다. 전자결재 로그의 결재선이 그의 위로 더 올라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최종 승인자였고 그 위에는 바지 대표뿐이었다. "그 사람은요." "이름만 빌려준 사람입니다. 사례비 월 이백입니다." "이백이요." "본인도 뭘 하는 회사인지 몰랐답니다. 그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 "이런 구조에서는 늘 그렇습니다. 위가 비어 있으면 진짜 위가 없는 겁니다." 세림바이오는 회사가 아니라 부서였고, 그 부서의 최종 승인자는 자문 한 사람이었다. 내가 다섯 달 동안 쫓은 것의 꼭대기가 사람 하나였다. --- "하성규 씨 그 이 년은요." "거기가 막힙니다." 태주가 수첩을 폈다. "청우 임상시험 참여가 이 년 전이고, 그 뒤로 건강보험이 끊깁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이 사람 이름으로 임금을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어디서요." "청우통합의학연구원입니다." "직원이었습니까." "용역입니다. 월 백사십. 열여덟 달 받았습니다." "…….." "열여덟 달 동안 그 사람은 거기서 일했고, 명부에는 없고, 급여만 나갔습니다." 나는 그 숫자를 들었다. 열여덟 달이면 일 년 반이다. 다섯 달 동안 고시원에서 물류창고 새벽 일을 나간 사람이, 그 전 일 년 반 동안 거기서 월 백사십을 받았다. --- "이거 본인은 뭐랍니까." "기억한답니다." "…….." "기억하는데 자기가 왜 계속 갔는지는 모르겠답니다." "돈 때문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면 편해집니다." 태주가 수첩을 접었다. "그 사람은 편해지는 말을 안 합니다. 조사 내내 그랬습니다." --- 밤에 하성규가 왔다. 다섯 번째였다. 손목을 짚었다. 고르게 왔다. `맥 고름. 결체 없음. 이상 소견 없음.` 적고 나서 나는 펜을 놓지 않았다. "하성규 씨." "네." "열여덟 달이요." 그가 나를 봤다. "형사님한테 들으셨습니까." "들었습니다." "…….." "그동안 뭘 하셨습니까." 그는 대답하기 전에 손을 무릎에 놓았다. "처음엔 짐 날랐습니다. 그다음엔 차를 몰았고요." "그다음은요." "사람을 태웠습니다." "어디로요." "연구원으로요." --- "그 사람들도 임상시험 하러 온 사람들입니까." "처음에는요." "나중에는요." "나중에는 제가 안 물었습니다." 그가 손가락을 한 번 굽혔다 폈다. "태우러 가면 주소하고 이름이 종이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 주소로 가서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나오면 태웠습니다." "…….." "안 나오면 그냥 왔습니다. 억지로 데려간 적은 없습니다." "창고는요." "창고는 나중입니다." "언제부터요." "작년 겨울부터요." --- 나는 그 말들을 적지 않았다. 진료기록부에 적을 것이 아니었다. 조서에 있을 것이고 이미 그가 검사에게 다 말했을 것이다.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열여덟 달 동안 잠은 어디서 주무셨습니까." 그가 처음으로 대답을 늦췄다. "연구원 안에요." "…….." "지하에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하 삼 층에는 기록 보관실이 있었고 의자가 있었고 선반이 열세 개 있었다. 그 층에 방이 하나 더 있었다는 이야기는 조서에도 없었고 감식 자료에도 없었다. "몇 층입니까." "이 층입니다." "지하 이 층이요?" "네." --- 태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하 이 층에 방이 있었답니까.` 한참 뒤에 답이 왔다. `도면에 없습니다.` `감식 갔을 때 지하 이 층은 계단만 봤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휴대전화를 접수대에 놓았다. 하성규는 아직 앉아 있었다. "제가 뭐 잘못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 "내일 형사님이 오실 수도 있습니다." "오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이만 원을 냈다. --- 영수증을 끊었다. 다섯 번째였다. 이름 칸에 세 글자를 적고 뜯어서 줬다. 카본지 사본을 서랍에 넣었다. 네 장 위에 올렸다. 서랍을 닫으려다 다시 열었다. 맨 아래 첫 장을 꺼내 맨 위로 올렸다. 날짜순이 뒤집혔다. 그대로 두고 닫았다. --- 문을 잠그고 나오는데 골목 끝에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흰색이었고 승합차였다. 옆면에 아무것도 안 적혀 있었다. 나는 걸음을 늦추지 않고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번호판을 봤다. 외우려고 본 게 아니라 눈이 갔다. 십 미터쯤 가서 뒤를 봤다. 차가 그대로 있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적었다. 적고 나서 태주에게 보낼까 하다가 안 보냈다. 흰 승합차는 흔하다. 옆면에 아무것도 없는 차도 흔하다. 골목에 차가 서 있는 것은 골목이라서 그렇다. 그런데 나는 번호를 적었다. 적어 놓은 것을 지우지 않고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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