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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을 짚으면 살의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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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목록은 목요일에 나왔다. 태주가 사본을 들고 왔다. 정식으로 줄 수 있는 서류는 아니었지만 참고인에게 자기 진술이 어디에 들어갔는지는 알려 준다고 했다. 목록은 두 장이었다. `증 제1호 진료지원 규칙세트 v4.14 배포 이력` `증 제2호 전자결재 로그(계정 명의자 배준상)` `증 제3호 서버실 출입 대장(점검 주기 17분)` 번호가 스물아홉까지 있었다. 나는 위에서부터 내려갔다. `증 제14호 응급실 진료지원 창 출력물(대기 중 23회)` `증 제15호 간호사 3인 진술서` `증 제16호 민도윤 진술서` 열일곱 번째에서 손이 멈췄다. `증 제17호 윤해진 참고인 진술조서(발췌)` 발췌였다. --- "어디를 뺐습니까." "맥 부분이요." 태주가 다음 장을 넘겼다. "검사님이 선생님 요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 "정확히는 받아들인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신 겁니다. 저쪽이 그 대목만 물고 늘어지면 나머지까지 흔들리니까요." "그럼 남은 건 뭡니까." "시간과 동작입니다." 그가 발췌본을 보여 줬다. `손목을 잡고 있었음. 진맥 아님. 처치 없음. 지시 없음.` `대기 중 표시가 반복되는 동안 손을 놓지 않았음.` `이후 환자 소생.` 두 문장 반이었다. 내가 조사실에서 한 시간 넘게 말한 것 중에 이만큼이 남았다. --- "섭섭하십니까." 태주가 물었다. "아니요." "…….." "제가 빼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그렇습니다." 나는 목록을 다시 봤다. 증 제14호부터 제17호까지가 그날 밤 응급실이었다. 화면 출력물, 간호사 셋, 도윤, 그리고 나. 나만 발췌였다. 나머지는 통째로 들어갔다. --- "하성규 씨는요." 태주가 목록 두 번째 장을 짚었다. `피의자 하성규 진술조서` 피의자였다. "어제 전환됐습니다." "…….." "본인이 인정한 부분이 명확하고, 몸에 조종 흔적이 없습니다. 검사님은 공범으로 봅니다." "공범이요." "실행 부분이요. 규칙을 만든 건 배준상이고 사람 몸에 붙인 건 하성규니까요." "그 사람도 붙여진 사람입니다." "그건 변호인이 할 말입니다." 태주가 서류를 접었다. "저는 사실만 넘깁니다. 판단은 다른 데서 합니다." --- "변호인은 있습니까." "국선입니다." "…….." "어제 배정됐고 아직 접견 전입니다." "구속입니까." "불구속입니다. 주거가 확인됐고 도주 우려가 낮다고 봤습니다." "주거요?" 태주가 나를 봤다. "고시원 계약서를 냈답니다." "…….." "그리고 원장님 영수증 세 장을 같이 냈습니다." --- 나는 접수대 서랍을 봤다. 어제까지 세 장이 있었다. 오늘 아침에 열었을 때도 세 장이었다. "사본이요?" "직접 받은 거요. 본인이 가진 거요." "…….." "세 번 같은 데를 갔다는 걸 보여주려고 낸 것 같습니다. 판사가 뭐라고 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만 원짜리 영수증 세 장이 주거 부정 판단을 뒤집는 서류는 아니다. 그런데 그가 그걸 가지고 있었다. --- 태주가 나가고 나서 나는 목록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스물아홉 개 중에 사람 이름이 붙은 건 여덟 개였다. 나머지는 기계에서 나온 것이거나 종이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름이 붙은 여덟 개 중에 셋이 그날 밤 응급실이었다. 배준상 쪽 증거는 전부 기계였다. 로그, 대장, 배포 이력, 계정 기록. 사람이 한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가 조사에서 다 인정했는데도 그의 진술은 증거 목록에서 아래쪽에 있었다. `증 제27호 피의자 배준상 진술조서` 스물일곱 번째였다. --- 저녁에 지안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록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제 로그가 십사 호더군요." "…….." "제가 뺐어야 하는 건데 안 뺐네요." "왜 빼십니까." "제자가 낸 기록이니까요." "선생님이 안 뺐으면 검사님이 뺐을 겁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그가 잠깐 말을 골랐다. "안 뺐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 "저쪽이 그걸로 공격 안 하기로 했다는 뜻입니다." "왜요." "공격하면 배 교수가 저를 가르쳤다는 사실을 자기들이 먼저 꺼내야 하니까요." --- 여덟 시 사십 분에 하성규가 왔다. 어제와 같은 시각이었다. "오늘도 됩니까." "됩니다." 접수대에 앉히고 손목을 짚었다. 고르게 왔다. 네 번째였다. 적었다. `맥 고름. 결체 없음. 이상 소견 없음.` `본인 자발 내원.`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피의자 전환 사실 본인 고지받음. 진료 요청 변동 없음.` "그것도 적으십니까." "오늘 있었던 일입니다." 그는 더 안 물었다. --- "영수증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형사님이 말씀하셨습니까." "네." "…….." "주거 소명에는 계약서가 더 셉니다." "압니다." "그럼 왜요." 그가 잠깐 있다가 말했다. "계약서에는 제가 어디 사는지만 나옵니다." "…….." "영수증에는 제가 어디 가는지가 나옵니다." --- 이만 원을 받고 영수증을 끊었다. 네 번째였다. 이름 칸에 세 글자를 적었다. 오늘은 이 초보다 짧게 걸렸다. 뜯어서 그에게 줬다. 카본지 사본이 아래에 남았다. 서랍을 열어 세 장 위에 올렸다. 네 장이 됐다. 서랍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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