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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을 짚으면 살의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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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

선고는 시월 첫째 주 목요일이었다. 배준상 건이 오전 열 시, 하성규 건이 같은 날 오후 두 시였다. 재판부가 달라서 법정도 달랐다. 나는 둘 다 들어갔다. 오전 법정은 방청석이 다 찼다. 기자가 다섯쯤 왔고, 앞줄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태주가 유족이라고 했다. 두 명이었다. 오월과 유월에 각각 한 명씩. 임 선생이 못 본 유월 건의 유족이 그중 하나였다. --- 재판장이 주문을 먼저 읽었다. "피고인을 징역 이 년에 처한다." 앞줄에서 소리가 났다. 숨을 삼키는 소리였고 그다음에 아무 말도 안 나왔다. 정리 직원이 앞줄 쪽을 봤다. 재판장이 이유를 읽기 시작했다. --- 이유는 삼십 분 넘게 걸렸다. 인정된 사실이 먼저였다. 규칙 설계, 시간대 조건, 확인 절차 생략, 열한 곳 배포, 오 개월. 여기까지는 다툼이 없었다. 다음이 인과관계였다. "두 건의 사망과 본건 규칙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하여." 재판장이 잠깐 멈췄다. "오월 이십일일 건은 담당의가 권고를 따르지 않아 환자가 생존하였는바, 이는 본건 규칙이 실제 임상 판단에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사정이기는 하나 사망 결과와의 인과를 인정할 자료는 되지 못한다." "유월 삼일 건에 관하여는, 담당의가 화면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턴이 처치를 종료한 정황이 인정되나, 해당 환자의 기저질환과 전원 시점의 상태를 고려할 때 본건 규칙이 없었더라면 생존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합리적 의심 없이 인정하기 어렵다." --- 나는 그 문장을 들었다. 합리적 의심 없이. 유족석에서 한 사람이 일어섰다. 정리 직원이 다가갔고 그 사람은 다시 앉았다. 재판장이 계속 읽었다. "따라서 업무상과실치사의 점은 무죄로 판단한다." --- 유죄로 인정된 것은 셋이었다. 의료기기법 위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그리고 업무방해. "피고인이 연구 목적으로 수집한 자료를 승인 범위를 넘어 상용 시스템에 적용하고, 담당자 확인 절차를 임의로 제거함으로써 열한 개 의료기관의 진료 업무를 방해한 점이 인정된다." "…….." "양형에 관하여." 재판장이 서류를 넘겼다. "피고인이 삼십 년간 응급의료에 종사하며 다수의 인명을 구조한 점, 본건 규칙의 설계에 임상적 근거가 존재하는 점, 초범인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 "…….." "다만 피고인이 담당자 확인 절차를 제거함으로써 개별 의료진의 판단 기회를 구조적으로 박탈한 점, 그로 인한 위험을 인식하고도 배포를 강행한 점, 반대 방향의 위험 계산을 수행하지 않았음을 법정에서 인정한 점은 불리한 정상이다." --- 이 년이었다. 법정이 끝나고 나오는데 유족 중 한 사람이 복도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육십 대 여자였다.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는데 판결문이 아니라 A4에 뭔가 적어 온 것이었다. 오늘 하려던 말이 적혀 있었을 것이다. 읽을 자리가 없었다. 나는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목례를 했는데 그 사람은 나를 못 봤다. --- 일 층 로비에서 임 선생을 만났다. 오늘은 방청을 안 했다고 했다. 근무였고 오전에 잠깐 빠져나왔다가 결과만 듣고 돌아간다고 했다. "이 년이랍니다." "들었습니다." 그가 로비 의자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무죄가 났다면서요." "치사 부분이요." "…….." "인과가 안 잡힌답니다." 임 선생이 창 쪽을 봤다. "제 유월 건 유족분이 앞줄에 계셨습니까." "계셨습니다." "…….." "만나셨습니까." "복도에서 봤습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무 말도 안 하셨습니다." 임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한테는 하실 말씀이 있으실 텐데요." "…….." "그건 제가 감당할 몫이고요." 그가 시계를 봤다. "들어가야 합니다." "임 선생님." "네." "오월 건 그분은 어떻습니까." "퇴원하고 두 달쯤 뒤에 외래 오셨습니다. 저는 못 봤고 차트만 봤습니다." "…….." "괜찮으시답니다." 그가 회전문으로 갔다.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돌아섰다. "원장님, 저 다음 달부터 야간 안 섭니다." "…….." "제가 빼 달라고 했습니다." "…….." "언제 다시 설지는 모르겠습니다." 회전문이 돌았다. --- 오후 법정은 달랐다. 방청석에 넷이 앉았다. 나, 도윤, 태주, 그리고 국선변호인 사무실 직원 하나. 하성규가 들어왔다. 재판장이 주문을 읽었다. "피고인을 징역 일 년 육 개월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삼 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 집행유예였다. 이유를 읽는 데 십오 분이 걸렸다. "피고인은 본건 범행의 실행 부분을 담당하였고 그 행위의 위법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 스스로 작성한 명단이 이를 뒷받침한다." "…….." "다만 피고인 또한 동일한 장치의 대상자였던 점, 열여덟 개월간 사실상 관리 상태에 놓여 있었던 점, 수사 초기부터 일관되게 사실을 진술하고 변호인의 조력과 다른 방향으로 자백을 유지한 점을 참작한다." "…….." "특히 피고인이 작성한 명단에 부착하지 아니한 스물세 건이 기재되어 있고, 그중 다수에 부착을 회피한 사유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바, 이는 피고인이 지시에 전적으로 종속되지 아니하였음을 보여주는 사정으로 판단한다." --- 나는 그 대목에서 도윤을 봤다. 도윤은 앞을 보고 있었다. 재판장이 마지막을 읽었다. "피고인은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고 진술하였다. 형사재판은 그 기회를 만들어 주는 절차가 아니다." "…….." "다만 피고인이 그 기회를 계속 찾을 것을 권고한다." --- 법정을 나오는데 하성규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우리를 기다린 게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의 자세였다. 도윤이 먼저 갔다. "저 갑니다." "…….." "내일 일 나가시죠." 하성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 네 시요." "그럼 지금 주무셔야겠네요." 도윤이 계단으로 갔다. --- 밤에 그가 왔다. 여덟 시 사십 분이었다. "오늘도 됩니까." "됩니다." 손목을 짚었다. 고르게 왔다. 열두 번째였다. `맥 고름. 결체 없음. 이상 소견 없음.` `본인 자발 내원.` `선고일. 집행유예.` 세 줄을 적고 펜을 놓았다. --- "원장님." "네." "이 년이랍니다." "들었습니다." "…….." "저는 안 들어가고요." "…….." "그게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진료기록부를 덮었다. "하성규 씨." "네." "내일 새벽 네 시에 나가십니까." "나갑니다." "그럼 지금 가셔서 주무십시오." --- 이만 원을 냈다. 영수증을 끊었다. 열두 장이 됐다. 그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나는 서랍을 열어 사본 뭉치를 꺼냈다. 열두 장이었다. 창고에 열두 명이 있었다. 숫자가 같은 것은 우연이다. 우연인 걸 알면서 나는 그것을 한 장씩 세어 봤다. 세고 나서 도로 넣었다. 서랍을 닫고 접수대 불을 껐다. 간판 아래 아크릴 판은 그대로 있었다. 글자가 더 흐려져 있었고 나는 그것을 새로 만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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