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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을 짚으면 살의가 들린다

35

분리

하성규의 공판은 다른 법정에서 열렸다. 같은 건물 이 층이었고 방청석이 열두 자리였다. 나는 세 자리 건너에 앉았다. 도윤이 먼저 와 있었고 우리는 인사만 하고 말은 안 했다. 피고인석에 그가 앉았다. 검은 점퍼가 아니라 셔츠였다.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지만 목까지 단추를 잠갔고 소매가 조금 길었다. --- 공소사실은 짧았다. 특수상해 방조, 감금 방조, 그리고 의료법 위반. 열한 명에게 패치를 부착한 행위가 전부였다. 변호인이 일어섰다. "공소사실 중 부착 사실은 인정합니다. 다만 피고인은 동일한 장치를 본인 신체에도 부착당한 피해자이며—" "인정합니다." 하성규가 말했다. 변호인이 그를 봤다. "피고인, 지금은—" "다 인정합니다." --- 재판장이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피고인, 변호인과 상의하셨습니까." "했습니다." "변호인 의견과 다른 것 같습니다만." "다릅니다." "…….." "제가 붙였습니다. 열한 번 다요." 법정이 조용했다. 변호인이 앉았다. --- 검사가 명단을 제시했다. `쉰네 명 명단 사본` "피고인이 작성한 것입니까." "제가 썼습니다." "동그라미와 사선의 의미를 말씀하십시오." "동그라미는 태운 사람입니다." "사선은요." "안 태운 사람입니다." "왜 안 태우셨습니까." --- 재판장이 검사를 봤다. "검사님, 그건 피고인에게 유리한 질문 아닙니까." "사실관계 확인입니다." "진행하십시오." 검사가 다시 물었다. "피고인, 스물세 명은 왜 안 태우셨습니까." 하성규가 대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어떤 사람은 문을 안 열었습니다." "…….." "어떤 사람은 문을 열었는데 제가 안 불렀습니다." "몇 명입니까." "세어 봐야 합니다." "명단에 표시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 검사가 명단의 한 줄을 읽었다. `애기 울어서 못 부름` "이게 그 경우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반지하였고 창으로 안이 보였습니다. 밤 열한 시였고 애기가 울고 있었습니다." "…….." "문을 두드리면 나왔을 겁니다." "안 두드리셨군요." "안 두드렸습니다." --- 변호인이 일어서려다 앉았다. 검사가 계속했다. "피고인, 그 표시를 왜 남기셨습니까." "안 적으면 제가 몇 번 안 갔는지 저도 모르게 됩니다." "안 가는 게 죄가 아닌데 왜 세십니까." 하성규가 처음으로 말을 골랐다. "…….." "피고인." "간 것만 세면 제가 그것만 한 사람이 됩니다." 법정에서 누가 종이를 넘겼다. "그건 맞습니다. 제가 그것도 했습니다." "…….." "근데 그것만 한 건 아닙니다." --- 재판장이 물었다. "피고인, 지금 하신 말씀은 감형을 구하는 취지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 "피고인." "기록을 남기는 겁니다." "어디에요." "여기요." 그가 법대를 봤다. "여기 적히면 안 없어집니다." --- 검사가 구형을 했다. 징역 사 년이었다. 변호인이 최후변론을 했고 십이 분이 걸렸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사람의 형을 정할 때 법원이 고려해 온 사정들을 열거했다. 판례를 셋 들었다. 듣는 동안 하성규는 앞을 봤다. 변호인 쪽도 방청석 쪽도 안 봤다. 재판장이 그에게 마지막 말을 하라고 했다. --- 그가 일어섰다. "할 말이 없습니다." 재판장이 기다렸다. "…….." "피고인, 없으면 없다고 하셔도 됩니다." "…….." "있으면 하십시오." 하성규가 손을 앞으로 모았다. "열한 명한테 사과하고 싶은데 여기 안 계십니다." "…….." "한 분은 뒤에 계십니다." 방청석에서 도윤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분은 사과 받으러 오신 게 아니랍니다." --- 재판장이 서류를 넘겼다. "피고인, 선고는 이 주 뒤입니다." "네." "그때까지 주거를 옮기지 마십시오." "네." "…….." "피고인, 현재 주거지가 고시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맞습니다." "계속 거기 계십니까." "있습니다." 재판장이 잠깐 서류를 봤다. "일은 하십니까." "새벽에 물류창고 나갑니다." "…….." "재판 있는 날은 못 나갑니다." --- 기일이 끝나고 나오는데 도윤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원장님." "네." "저 방청 신청 계속 할 겁니다." "…….." "열한 명 중에 아무도 안 옵니다." "…….." "소정 씨한테 물어봤는데 못 오겠답니다. 준호 씨는 연락이 안 되고요." 도윤이 계단 쪽을 봤다. "저도 오고 싶어서 오는 건 아닙니다." "압니다." "그런데 앉을 사람이 없으면 그냥 서류만 남잖습니까." 우리는 계단을 같이 내려갔다. 이 층에서 일 층까지 열여덟 계단이었다. 도윤이 세 계단쯤 앞서 갔다. "원장님." "네." "아까 저한테 사과하고 싶다고 했잖습니까." "들었습니다." "…….." "제가 안 받는다고 한 거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더군요." "…….." "저는 그날 말하고 나서 잊었습니다." 일 층에서 그가 섰다. "안 받는다고 한 게 잘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 "받았으면 저 사람이 지금 좀 편했을 텐데요." "도윤 씨." "네." "그건 도윤 씨가 정할 일입니다." "…….." "편하게 해 주는 것도 도윤 씨 몫이 아니고요."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나서 한참 서 있다가 나갔다. --- 저녁에 그가 왔다. 여덟 시 사십 분이었고 셔츠 차림 그대로였다. 소매를 걷어 올렸다. 접수대에 앉히고 손목을 짚었다. 고르게 왔다. 열한 번째였다. "오늘 도윤 씨 오셨습니다." 내가 말했다. "봤습니다." "…….." "저 앉아 있는데 뒤에서 보고 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불편하셨습니까."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 "뒤에 아무도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 `맥 고름. 결체 없음. 이상 소견 없음.` 열한 번째 줄을 적었다. `본인 자발 내원.` 그 아래에 오늘 것을 적었다. `공소사실 전부 인정 진술. 변호인 의견과 상이.` "이것도요." 그가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입니다." "…….." "원장님." "네." "선고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변호사님이 다음 기일에 정해진답니다." --- 이만 원을 냈다. 영수증을 끊었다. 열한 장이 됐다. 그가 영수증을 접어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가 얕아서 반쯤 나왔다. 그는 그것을 다시 안 넣고 그대로 두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나는 카운터에서 그 뒷모습을 봤다. 골목을 반쯤 갔을 때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영수증을 밀어 넣었다. 밀어 넣고 계속 걸었다. 골목 끝에서 그가 한 번 뒤를 봤다. 가게 쪽이 아니라 반대쪽이었다. 뒤에 뭐가 있나 보는 사람의 동작이었고, 아무것도 없었는지 다시 앞으로 갔다. 나는 형광등 하나를 껐다. 접수대 것만 남겼다. 자정까지 아직 시간이 있었고, 누가 더 올 수도 있었다. 문은 잠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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