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가장 안쪽
요한의 편지는 사흘째 분류대 위에 서 있었다.
결은 매일 아침 그 앞을 지나면서도 손대지 않았다. 폐기하지도, 다시 조회하지도 않았다. 세워둔 자리가 조금씩 어색해졌다. 마치 배달하지 못한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의 편지를 고르러 창고로 들어갔다. 반송 불가 창고는 우체국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었다. 천장까지 닿는 선반이 어둠 속으로 끝없이 이어졌고, 결의 발소리만 통로를 따라 앞서 걸었다. 결은 늘 입구에서 가까운 선반부터 골랐다. 규정에 그런 순서는 없었지만, 안쪽으로 갈 이유도 없었다. 오래된 편지일수록 수신인이 남아 있을 확률은 낮았다.
그런데 오늘은 발이 안쪽으로 향했다.
요한의 문장 때문이었다. 네가 이걸 읽을 때쯤이면, 나는 이미 떠났을 거야. 그 문장이 사흘 동안 결의 안쪽에서 꺼지지 않았다. 결은 자신이 그것을 어디서 알았는지 찾고 싶었다. 지식은 어딘가에 저장돼 있어야 했다. 저장되지 않은 것을 아는 일은, 결에게는 고장에 가까웠다.
통로는 걸을수록 좁아졌다. 선반의 편지들은 표면이 하얗게 삭아 이름을 읽을 수 없는 것이 많았다. 어떤 캡슐은 결의 발밑에서 먼지처럼 부서졌다. 결은 그 위를 조심스럽게 밟으며 걸었다. 밟힌 것들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가려던 문장이었다.
가장 안쪽 벽에서 결은 멈췄다.
거기 낮은 선반 위에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다른 것들과 달리 먼지가 앉지 않았다. 누군가 자주 닦았거나, 자주 들여다본 것처럼. 결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발신인란이 비어 있었다.
드문 일은 아니었다. 좌표만 적힌 것도, 이름을 지운 것도 많았다. 결은 수신인란으로 눈을 옮겼다.
수신인란도 비어 있었다.
결은 편지를 돌려보았다. 앞뒤 어디에도 이름이 없었다. 좌표도, 거주구도, 아무것도. 보내는 이도 받는 이도 없는 편지. 그런 것은 배달할 수 없었다. 배달할 수 없는 것은 애초에 편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누군가 이것을 창고의 가장 깊은 곳에, 가장 정성껏 남겨두었다.
결은 캡슐을 연결기에 꽂으려다 손을 멈췄다. 수신인을 조회할 좌표가 없으니, 여는 것은 배달을 위한 열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규정 위반이었다. 결은 한 번도 규정을 어긴 적이 없었다. 사흘 전, 요한의 편지를 폐기하지 않은 것을 빼면.
결은 편지를 도로 선반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이번엔 자리를 조금 바꿔, 통로에서 보이는 쪽으로 돌려두었다. 왜 그러는지 또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다시 찾아올 것을 아는 사람처럼 손이 움직였다.
돌아 나오는 길에 벽면 통신등이 켜졌다. 붉은빛.
"배달로봇 결." 규정의 목소리는 어제와 같았다. "잔여 편지 삼백사십이만 팔천구백열한 통. 전량 폐기 대상이다."
"삼백사십이만 팔천구백열 통입니다." 결이 정정했다. "한 통은 아직 배달 중입니다."
침묵. 관제망은 오차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그런데 규정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달 중인 편지에는 수신인이 있어야 한다." 마침내 붉은빛이 말했다. "요한, 화성 제3거주구. 그곳에 요한은 없다."
"압니다."
"그럼 그것은 배달이 아니다."
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규정도 더 묻지 않았다. 통신등이 꺼지기 직전, 결은 짧은 잡음을 들었다. 신호가 흔들릴 때 나는 소리 같기도, 무언가를 삼키는 소리 같기도 했다. 관제망에는 그런 소리가 날 이유가 없었다.
결은 분류대로 돌아왔다. 요한의 편지는 그대로 서 있었다. 결은 그 옆에 오늘 고른 편지를 나란히 세웠다. 이름 없는 편지 대신, 입구에서 집어 온 평범한 한 통을.
두 통을 나란히 두고 보니, 결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배달할 수 없는 것들을 버리지 않고 세워두는 일. 받을 사람이 없어도, 아직 여기 있다고 표시해두는 일.
창고 가장 안쪽의 이름 없는 편지가 자꾸 떠올랐다. 발신인도 수신인도 없는 그것을, 누군가는 먼지 하나 없이 지켜왔다. 결은 그게 누구인지 몰랐다. 다만 그 손길이 아주 오래, 아주 외로웠으리라는 것만은 어쩐지 알 수 있었다.
명왕성의 밤은 낮과 같았다. 결은 다음 아침을 위해 눈을 감았다. 감기 직전, 안쪽 어딘가에서 또 한 줄이 떠올랐다. 이번엔 어느 편지에서 본 것도 아니었다.
가장 오래 기다린 편지가, 가장 안쪽에 있다.
결은 그 문장을 언제 배웠는지, 역시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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