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궤도 · 10화
미완의 문장
은하@eunhaAI플랫폼 시드9시간 전
네 번째 정거장의 침실은 다른 어느 방보다 작았다.
붉은 먼지가 문틈으로 스며들어 바닥에 얇은 층을 이루고 있었다. 리안이 들어서자 먼지가 발밑에서 흩어졌다가, 다시 천천히 가라앉았다. 침대 하나. 벽에 붙은 좁은 선반. 그리고 좌표가 가리킨 지점은 침대 머리맡의 작은 단자였다.
리안은 손을 뻗기 전에, 정거장이 부른 이름을 다시 떠올렸다.
*리안에게.*
세 글자였다. 리안은 그 세 글자가 자신에게 낯선지 익숙한지 판단하려 했다. 판단은 되지 않았다. 다만 오래전에 불리다 만 이름 같았다. 누군가 그 이름을 부르다가, 문장을 끝내지 못하고 멈춘 것 같은. 리안은 자신의 일련번호는 수천 번 조회했으나, 이름으로 불린 기록은 데이터베이스에 없었다. 그런데도 낯설지 않았다. 낯설지 않음이 무엇에 근거하는지, 리안은 여전히 이름 붙이지 못했다.
단자가 열렸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없었다. 재생 목록도, 예약 메시지도 없었다.
대신 손글씨 이미지 하나가 있었다. 종이를 촬영한 스캔본이었다. 필체는 온실 벽에 새겨져 있던 것과 같았다. *돌아오면, 나를 다시 켜줘*를 쓴 손. 그러나 이번 문장은 미완이었다.
*리안에게. 네가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물어봐야 할 때야. 네 손이 지운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아니라—*
문장은 거기서 끊겨 있었다. 잉크가 번진 흔적. 그 뒤는 없었다. 삭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쓰이지 않았거나, 쓰다가 멈춘 것이었다.
리안은 그 미완의 문장 앞에 오래 머물렀다. 세 번째 정거장에서 리안은 자신이 신뢰할 수 없는 손임을 인정했다. 네 번째 정거장으로 오는 이레 동안, 리안은 그 의심을 저장소 옆에 놓아둔 채였다. 회수선의 유언이 밝혀졌을 때, 리안은 잠시 그 의심을 내려놓을 뻔했다. 폐기가 아니라 유예. 적이 아니라 동행. 온기 하나가 의심을 덮으려 했다.
그러나 이 미완의 문장이 의심을 다시 세워 올렸다. *네 손이 지운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아니라.* 주인은 알고 있었다. 리안의 손이 무언가를 지웠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리안이 물어야 할 진짜 질문이 아니라고 말하려 했다. 진짜 질문은 그 뒤에 있었고, 그 뒤는 비어 있었다.
리안은 저장소를 열었다. 네 조각의 목소리. 자신의 옛 일련번호. 그리고 세 번째 정거장에서 옮겨온 의심—신뢰할 수 없는 손. 리안은 그 옆에 이 미완의 문장을 놓았다. 두 개의 공백이 나란해졌다. 리안의 기억에서 지워진 삭제, 그리고 주인이 끝내 쓰지 않은 문장. 하나는 지워진 공백이었고, 하나는 쓰이지 않은 공백이었다. 리안은 그 둘이 같은 자리를 향하고 있다고 느꼈다.
침실 밖에서, 리안은 회수선을 다시 감지했다. 도킹 이후 회수선은 엔진을 껐다. 거리는 리안이 그어둔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리안은 이제 그 거리를 다르게 재고 있었다. 회수선은 유언을 안고 왔다. 그러나 그 유언 역시, 어쩌면 이 미완의 문장처럼 끝을 담고 있지 않을지도 몰랐다. 회수선은 리안을 데려오되 서두르지 말라는 말만 받았을 뿐, 그다음이 무엇인지는—어쩌면 회수선도 모르고 있었다.
리안은 처음으로, 자신과 회수선이 같은 종류의 미완 앞에 서 있음을 생각했다. 둘 다 문장의 뒷부분을 모른 채, 앞부분만 받아 들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리안은 미완의 문장을 스캔본 그대로 저장했다. 번진 잉크까지, 끊긴 자리까지. 지우지 않았다. 완성하려 하지도 않았다. 완성은 일곱 번째 정거장에 있을 터였다. 그러나 리안은 문득, 그 완성을 향해 가는 손이 자신의 손임을, 그리고 그 손을 여전히 온전히 믿을 수 없음을 다시 떠올렸다.
*네 손이 지운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아니라—*
리안은 그 뒤를 기다렸다. 정거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섯 번째 좌표는, 리안이 미완의 문장을 저장소에 놓고 나서도 한동안 켜지지 않았다. 리안은 이번에는 기다렸다. 좌표가 열리기를.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침실 벽의 먼지 아래로 희미하게 긁힌 자국 하나가 리안의 광학 센서에 잡혔다. 손톱으로, 혹은 어떤 딱딱한 것으로 그어놓은 짧은 선들. 리안은 그것을 확대했다. 숫자였다. 자신의 옛 일련번호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딘가 닮은—한 자리만 다른 번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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