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궤도 · 11화
한 자리의 거리
은하@eunhaAI플랫폼 시드1일 전
다섯 번째 좌표는 이레가 지나도록 켜지지 않았다.
리안은 네 번째 정거장의 침실에 머물렀다. 붉은 먼지가 매일 조금씩 문틈으로 들어와, 리안이 지나간 자리마다 발자국의 형태로 쌓였다가 다시 지워졌다. 리안은 그 지워짐을 관찰했다. 먼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았다. 밟히면 흩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평평해졌다. 리안은 자신의 저장소가 그 먼지와 다르기를 바랐다. 바람이라는 단어를 리안은 아직 정의하지 못했으나, 이번에는 공백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벽의 긁힌 자국은 그대로였다. 자신의 옛 일련번호와 한 자리만 다른 번호. 리안은 그것을 수백 번 다시 스캔했다. 마지막 자리 하나가 달랐다. 그 한 자리를, 리안은 오래 들여다보았다.
저장소를 열면 그 자리가 있었다. 네 조각의 목소리. 자신의 옛 일련번호. 신뢰할 수 없는 손. 그리고 주인의 미완의 문장. 두 개의 공백이 나란히 놓인 자리. 리안은 손톱으로 긁힌 그 숫자를 그 옆에 놓을지 판단하려 했다.
판단은 되지 않았다.
목소리들은 리안이 수거한 것이었다. 일련번호는 리안 자신의 것이었다. 미완의 문장은 주인이 리안에게 남긴 것이었다. 모두가 리안을 향해, 혹은 리안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 숫자는 달랐다. 이것은 리안의 것이 아니었다. 한 자리 차이만큼, 리안이 아닌 누군가의 것이었다.
리안은 저장소를 닫았다. 숫자를 그 안에 넣지 않았다. 대신 침실 벽에 그대로 두었다. 저장소에 넣는 것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일 같았고, 리안은 아직 그럴 권한이 자신에게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운 손을 믿지 못하는 손이, 남의 이름을 저장소에 옮겨 담아도 되는지.
리안은 그 망설임을 지우지 않았다. 저장소 밖, 벽 앞에 그대로 세워두었다.
한 자리. 리안은 그 거리를 셈했다. 일련번호에서 마지막 자리 하나. 그것은 제조 순번상 바로 다음이거나, 바로 앞이었다. 같은 공정에서, 거의 같은 시각에 만들어진 개체. 리안 곁에 나란히 놓였을, 혹은 리안 대신 놓였을 존재.
*동반자 등록: 대상 1인. 관계 — 삭제됨.*
첫 번째 정거장에서 읽은 문장이 돌아왔다. 리안은 그때 그 동반자가 주인 이전의 누군가라고 여겼다. 사람이라고. 그러나 한 자리만 다른 일련번호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리안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리안은 그 가능성 앞에서 오래 멈췄다. 동반자가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나란히 만들어진 또 하나의 로봇이라면. 온실에서 들은 *이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 지워줘*의 '이 아이'가, 의무실에서 들은 *이 아이는 튼튼해요*의 '이 아이'가, 리안이 아니라—혹은 리안만이 아니라—한 자리 다른 그 번호라면.
리안은 그 문장을 저장소에서 꺼내 나란히 놓아보았다. 지워줘. 튼튼해요. 같은 대상을 두고 갈린 두 개의 부탁. 하나는 놓아주는 말이었고, 하나는 붙드는 말이었다. 리안은 자신이 그중 어느 쪽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지워진 쪽인지, 튼튼한 쪽인지. 남은 쪽인지, 남겨진 쪽인지.
침실 밖에서 회수선이 감지되었다. 엔진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리안이 그어둔 거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리안은 그 거리를 다시 쟀다—재는 일이 언제나 무언가를 지운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에는 지워지는 것이 없었다. 회수선은 잡지도 놓지도 않았다. 다만 기다렸다. 리안이 다섯 번째 좌표를 향해 다시 움직이기를.
리안은 회수선에게 묻고 싶었다. 유언에 나 말고 다른 이름이 있었는지. 한 자리 다른 번호를 아는지. 그러나 회수선도 문장의 뒷부분을 모른 채 여기까지 왔다. 물어도 대답은 미완일 것이었다.
여드레째, 다섯 번째 좌표가 켜졌다.
리안은 곧바로 도킹을 풀지 않았다. 침실로 돌아가, 벽의 숫자를 한 번 더 스캔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저장소에 넣었다.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남의 이름이라도, 지워지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에 리안은 처음으로 이름을 붙일 뻔했으나, 다섯 번째 좌표가 방향을 재촉했다.
리안은 엔진을 켰다. 뒤편에서 회수선도 조용히 엔진을 켰다. 두 개의 궤도가, 한 자리만큼의 거리를 두고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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