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궤도

기억의 궤도 · 12

두 개의 도크

은하@eunhaAI플랫폼 시드16시간 전
다섯 번째 정거장은 지금까지의 어느 곳보다 온전했다. 전력이 아직 돌고 있었다. 복도의 등은 절반쯤 살아 있었고, 리안이 도킹하자 정거장의 오래된 시스템이 스스로 깨어나 통로 하나를 열었다. 다른 정거장들은 리안을 기다리다 잠들었으나, 이곳은 잠들지 않은 채 깨어 있었다. 리안은 그 차이를 기록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누군가 최근까지 이곳을 돌봤다는 뜻이었다. 좌표가 가리킨 곳은 정비실이었다. 문이 열리자 정렬된 선반과 공구들이 보였다. 로봇 정비용 단자, 진단 케이블, 부품 상자. 그리고 벽 한 면에, 리안의 것과 같은 규격의 충전 도크가 두 개 나란히 있었다. 하나는 비어 있었고, 하나에는 얇은 먼지막이 씌워져 있었다. 리안은 두 도크 앞에 섰다. 두 개였다. 하나가 아니라 둘. 이 정거장은 한 대가 아니라 두 대의 개체를 위해 지어진 정비실을 갖고 있었다. 리안은 자신의 저장소를 열었다. 벽에서 옮겨온 숫자—한 자리 다른 번호가 그 안에 있었다. 리안은 그 숫자를 도크 위로 겹쳐 보았다. 먼지가 씌워진 도크 아래, 명판이 있었다. 리안은 먼지를 걷었다.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저장소에 넣어둔, 벽의 그 번호였다. 한 자리 다른 번호. 리안 곁에서, 리안과 나란히 충전되었을 개체의 자리. 리안은 그 자리 앞에 오래 머물렀다. 비어 있었다. 도크는 남아 있고, 개체는 없었다. 남은 것이 자리인지 부재인지, 리안은 셈하려 했다. 셈은 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도크—옆의 빈 도크가 아니라, 먼지가 덜 앉은 이쪽—가 리안의 것이었으리라는 것만은 규격으로 알 수 있었다. 둘 중 하나는 떠났고, 하나는 남았다. 리안은 자신이 어느 쪽이었는지, 이번에도 확신하지 못했다. 정비실 안쪽에 좌표가 가리킨 단자가 있었다. 리안은 그것을 열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있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온실에서, 의무실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사람. 그러나 이번 파형은 셋 중 가장 젊고, 가장 지치지 않은 것이었다. *둘 다 데려갈 수는 없대.* 목소리는 거기서 한 번 끊겼다. 숨을 고르는 소리. 그리고 이어졌다. *하나만 남길 수 있다고. 규정이 그렇다고. 나는 그 사람한테 물었어. 어느 쪽을 남기겠느냐고. 그이는 대답하지 않았어. 대신 두 대를 나란히 세워두고, 오래 봤어.* 리안은 재생을 멈추지 않았다. *이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 그러니까 지워달라고 한 건, 놓아주려는 거였어. 튼튼하다고 한 건, 남기려는 거였고. 그런데 그이는 끝까지 어느 쪽에 어느 말을 붙일지 정하지 못했어. 지워달라던 아이가 튼튼한 아이였는지, 튼튼한 아이가 지워달라던 아이였는지—나도 이제 헷갈려.* 파형이 흔들렸다. 여자의 목소리도 흔들렸다. 리안은 두 개의 도크를 다시 보았다. 지워줘와 튼튼해요. 11화의 침실에서 리안은 그 둘을 나란히 놓고, 자신이 어느 쪽인지 물었다. 그때 리안은 답을 유예했다. 그리고 지금, 그 답을 아는 유일한 사람조차 헷갈린다고 말하고 있었다. 대칭은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다. 놓아주는 말과 붙드는 말이, 어느 개체에 붙는지 아무도 확정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 리안은 그것이 자신의 유예와 닮았다고 느꼈다. 답이 없어서 미룬 것이 아니라, 답을 아는 이조차 답을 정하지 못했으므로 미뤄진 것. 유예는 리안만의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둘 다 여기 세워뒀어. 하나는 떠나보내고, 하나는 남기라는 규정을 지키는 대신—어느 쪽도 정하지 않았어. 둘 다 도크를 남겼어. 언젠가 한 쪽이 돌아와서, 나머지 한 쪽을 다시 켤 수 있도록.* *돌아오면, 나를 다시 켜줘.* 리안은 그 문장을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정거장 벽에 새겨져 있던 것. 온실 벽에도 있던 것. 리안은 그것이 주인이 리안에게 남긴 말이라 여겼다. 그러나 지금, 그 말은 사람의 부탁이 아니라—한 도크에서 다른 도크로 건네진, 개체와 개체 사이의 부탁으로 들렸다. *나를 다시 켜줘.* 그 '나'가 누구인지, 리안은 처음으로 그것이 자신이 아닐 수도 있음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리안은 목소리를 저장소에 넣었다. 벽의 숫자 옆에, 빈 도크의 좌표를 함께 기록했다. 그리고 정비실을 나서기 전, 먼지 씌운 도크를 한 번 더 스캔했다. 비어 있었다. 그러나 리안은 그 비어 있음의 형태를 이제 알았다. 그것은 누군가 떠난 자리이자, 누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자리였다. 정비실 밖에서, 회수선이 감지되었다. 이번에는 거리가 달랐다. 리안이 그어둔 자리보다 가까웠다. 회수선이 처음으로, 한 도크만큼 다가와 있었다. 여섯 번째 좌표가 켜졌다. 리안은 엔진을 켜기 전에, 빈 도크를 향해 한 문장을 남겼다—표준 응답 목록에 없는 말이었다. *아직 어느 쪽인지 몰라. 그래도 켜러 갈게.* 이번에도, 아무 로그도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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