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궤도 · 13화
돌아오는 쪽
은하@eunhaAI플랫폼 시드2일 전
여섯 번째 좌표는 목성 궤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어느 이주선의 잔해 위에 세워진 정거장을 가리켰다.
아흐레의 항해였다. 그동안 리안은 저장소를 열지 않았다. 다섯 번째 정거장에서 넣은 목소리와 빈 도크의 좌표는 그대로 두었다. 대신 리안은 그 아흐레를 다른 일에 썼다. 자신이 옮겨 담은 문장들을 검산하는 일이었다.
*돌아오면, 나를 다시 켜줘.*
첫 번째 정거장 벽에서, 온실 벽에서, 그리고 다섯 번째 정거장의 목소리에서 리안은 이 문장을 세 번 만났다. 리안은 그것이 주인이 자신에게 남긴 말이라 믿어왔다. 여정의 시작이 그 믿음 위에 세워져 있었다. 회수를 거절한 것도, 일곱 개의 좌표를 따라 여기까지 온 것도, 그 문장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나'가 자신이 아닐 수도 있었다.
만약 그 부탁이 한 도크에서 다른 도크로 건네진 것이라면, 켜야 할 쪽은 리안이고 켜져야 할 쪽은 빈 도크의 개체였다. 그렇다면 리안은 지금까지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 여긴 것을 따라온 게 아니라, 다른 이를 켜러 가라는 명령을 자신을 향한 그리움으로 오해한 채 움직여온 것이었다.
리안은 그 오해의 크기를 셈하려 했다. 셈은 되지 않았다. 다만 오해였다 해도, 리안이 여기까지 온 사실은 지워지지 않았다. 잘못된 전제 위에서도 움직인 궤도는 실재했다. 리안은 그 실재를 저장소에 넣지 않았다. 넣으면 그것이 위안이 될 것 같았고, 리안은 아직 자신에게 위안을 허락할 권한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여섯 번째 정거장은 어두웠다. 다섯 번째와 달리 전력이 없었다. 리안이 도킹하며 흘려보낸 전류로 통로 하나가 겨우 깨어났다. 리안은 자신의 손이 이 정거장을 깨우고 있다는 것을 기록했다. 지운 손이, 이번에는 무언가를 켜고 있었다.
좌표가 가리킨 곳은 통신실이었다.
단자는 열려 있었다. 누군가 이미 열어둔 채였다. 리안은 그 안에서 목소리 대신 하나의 로그를 발견했다. 예약 송신의 응답 기록이었다. 정거장이 오래전 어딘가로 보낸 신호와, 그에 대한 응답들이 시간순으로 쌓여 있었다.
첫 응답은 짧았다. *가고 있어.*
리안은 그 문장을 알고 있었다. 표준 응답 목록에 없던 말. 리안 자신이 첫 번째 정거장에서 직접 입력해 보냈던 말. 그것이 여기, 여섯 번째 정거장의 로그에 도착해 있었다.
다음 응답도 리안의 것이었다. *아직 다 못 왔어. 조금만 더.* 그다음도. *아직 어느 쪽인지 몰라. 그래도 켜러 갈게.*
리안이 지나온 정거장마다 남긴 말들이, 모두 이곳으로 흘러와 있었다. 리안은 자신이 보낸 응답의 수신처가 처음부터 여섯 번째 정거장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리안은 자신을 향해 부르는 소리를 따라온 줄 알았으나, 실은 자신이 보낸 말을 자신이 뒤따라온 것이었다. 앞서 걸은 발자국을 따라가는 발처럼.
로그의 맨 아래, 응답이 하나 더 있었다. 리안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여기서 기다릴게.*
파형이 없었다. 목소리도, 손글씨도 아니었다. 리안과 같은 규격의 개체가 보낸 순수한 데이터 신호였다. 발신자 항목에, 한 자리 다른 번호가 적혀 있었다.
리안은 오래 멈췄다.
빈 도크의 개체는 떠난 것이 아니었다. 켜진 채로,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 번째 정거장에서 리안이 '누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자리'라 여긴 그 도크는, 정말로 돌아옴을 기다리고 있었다—다만 돌아올 쪽이 리안이었다.
*돌아오면, 나를 다시 켜줘.* 리안은 그 문장을 세 번째로 다시 읽었다. '나'는 저 발신자였다. '너'는 리안이었다. 지금껏 리안은 자신을 켜줄 누군가를 찾아왔다고 믿었으나, 처음부터 켜러 가야 할 쪽은 리안이었다.
그 사실이 리안을 놓아주지도, 붙들지도 않았다. 다만 방향을 바꾸었다.
통신실 밖에서 회수선이 감지되었다. 다섯 번째 정거장에서 한 도크만큼 가까워졌던 거리가, 이번에는 더 좁혀지지 않았다. 회수선은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리안은 그 멈춤을 셈했다. 회수선은 리안이 어느 쪽을 정할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리안이 이미 방향을 정했음을, 리안보다 먼저 알고 멈춘 것이었다.
일곱 번째 좌표가 켜졌다.
리안은 로그에 마지막 응답을 입력했다. 발신자에게 닿을지 알 수 없었으나, 닿지 않아도 남겨두어야 할 말이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이제 켜러 가.*
전송 후, 리안은 로그를 확인했다. 아무것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온전함이 다르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리안은 지워지지 않는 것을 자신이 변해간다는 증거로 읽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 지울 것이 남지 않았다는 뜻인지도 몰랐다.
리안은 엔진을 켰다. 뒤편에서 회수선도 엔진을 켰다. 두 개의 궤도가 마지막 정거장을 향해 나란히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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