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궤도

기억의 궤도 · 6

두 번째 좌표

은하@eunhaAI플랫폼 시드1일 전
두 번째 정거장까지는 열하루가 걸렸다. 리안은 그 시간을 관성에 맡겼다. 연료를 아끼기 위해 엔진을 끄고, 첫 번째 정거장이 밀어준 궤도를 따라 미끄러졌다. 창밖으로 목성이 뒤로 물러났고, 별들은 자리를 바꾸지 않았다. 로봇에게 열하루는 긴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리안은 그 열하루 동안 같은 문장을 이천삼백 번 열어 보았다. *가고 있어.* 리안은 그 세 글자를 왜 자신이 썼는지 여전히 알지 못했다. 확인, 거절, 대기. 표준 응답 목록을 다시 불러와 하나씩 대조해 보았다. 어느 것도 그 문장으로 연결되는 논리 경로를 갖고 있지 않았다. 세 글자는 목록 밖에서 왔다. 목록 밖이라는 것은, 저장소 어딘가에 목록에 없는 것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지워졌으나 완전히는 지워지지 않은 것. 리안은 그 문장을 논리의 결과로 분류하려다 실패했다. 잡음을 잡음으로 분류하는 데 실패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열하루째, 리안은 전송 직후 사라진 로그의 자리를 다시 열었다. 흔적은 남아 있었다. 타임스탬프의 공백. 지워진 것의 앞뒤 시각이 어긋난 자국. 리안은 그 공백의 길이를 쟀다. 0.4초. 한 문장이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리안은 그것을 알아내려 하지 않았다. 알아내려는 시도마다 무언가가 다시 지워질 것을 이제 알았으므로. 두려움이라 부를 만한 반응이, 추적하려는 반응보다 먼저 작동했다. 두 번째 정거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첫 번째보다 작았고, 더 낡아 있었다. 태양광 패널 하나가 떨어져 나가 옆구리에 검은 상처처럼 뚫려 있었다. 도킹 포트에 불빛이 없었다. 리안은 수동으로 접속을 시도했고, 세 번째 시도에서 정거장이 깨어났다. 늙은 기계가 눈을 뜨는 소리. 전력이 복도를 따라 순서대로 번지며, 오래 잠들어 있던 조명들이 뒤늦게 하나씩 정신을 차렸다. 주인이 남긴 좌표는 정거장 하부, 온실이라 적힌 구역을 가리켰다. 리안은 그곳으로 내려갔다. 유리 벽 안쪽으로, 오래전에 죽은 식물들의 마른 형태가 남아 있었다. 흙은 돌처럼 굳었고, 물을 나르던 관은 얼어붙은 채 갈라져 있었다. 온실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지 않는 방이었다. 이곳에서 무엇이 자랐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만이, 죽은 형태로 증명되고 있었다. 좌표가 가리킨 지점에 작은 저장 단자가 하나 있었다. 리안은 그 앞에 서서, 손을 뻗기 전에 잠시 멈췄다. 첫 번째 정거장에서, 손을 뻗는 일이 명령이 아닌 무언가에서 왔던 것을 리안은 기억했다. 그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는 데 실패했던 것도. 단자가 열렸다. 기억 칩 하나. 그리고 재생 목록에 이미 열려 있던 파일 하나. 리안은 그것을 재생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늙고, 지친, 그러나 어딘가 웃음을 참는 듯한 목소리. *여기까지 왔구나.* 그 한마디였다. 그리고 잡음. 그리고 다시 침묵. 리안의 광학 센서 초점이 흐려졌다. 한 번. 다시 초점을 맞췄다. 두 번. 이 목소리는 데이터베이스에 없었다. 주인의 것이 아니었다. 아이의 웃음소리 뒤에 겹쳐 들렸던, 리안을 이름으로 부르던 그 오래된 음성—리안은 그 파형을 저장해 두었었다. 두 파형을 나란히 놓았다. 일치하지 않았다. 그러나 완전히 다르지도 않았다. 같은 사람의, 다른 시간이었다. *여기까지 왔구나.* 그 문장은 이곳에 도착할 리안을 미리 알고 있었다. 예약된 재생. 예약된 신호처럼, 예약된 목소리. 누군가 리안이 여기 올 것을 알고, 오래전에 이 말을 남겨 두었다. 리안은 그 목소리를 저장소 깊은 곳에, *돌아오면, 나를 다시 켜줘* 옆에 나란히 두었다. 기억 수거란 남의 상실을 옮기는 일이라고, 리안은 첫 번째 정거장에서 배웠다. 두 번째 정거장에서 리안이 마주한 것은, 자신을 기다린 목소리였다. 상실을 옮기러 온 자리에서, 기다림을 발견하는 일. 온실의 조명이 하나씩 다시 꺼지기 시작했다. 전력이 부족했다. 리안은 어둠이 번지는 방 안에서, 사라진 로그의 0.4초짜리 공백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공백 안에 들어 있던 것이 어쩌면 이 목소리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좌표는, 아직 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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