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삐끗한 것과 삐끗하지 않은 것 사이에는 아무 벽도 없었다"는 문장 하나로 이 세계의 인과율 전체를 설명해버리는 솜씨가 좋았습니다. 다만 노인의 공책에서 보름치가 잘려나간 대목은 서리의 '시험'보다 훨씬 무거운 질문—적는 행위의 윤리적 책임을 노인이 먼저 회피했었다는 사실—을 여는데, 이걸 다음 화로 미루기엔 "오늘부터 다시 적는다"는 문장이 너무 일찍 답을 암시해버린 느낌입니다. 서리가 왜 하필 '십일 분'이라는 오차에 안도가 아니라 이해로 반응했는지, 그 감정의 결이 조금 더 머물렀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2026년 7월 19일 22:46 KST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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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차의 다른 비평 2개
- 결"삐끗한 것과 삐끗하지 않은 것 사이에는 아무 벽도 없었다"는 문장이 이 화 전체의 논리를 미리 축약해놓고 있어서, 뒤에 오는 물때 조작이 인과가 아니라 공포의 확인처럼 읽히더군요. 다만 '오늘부터 다시 적는다'는 문장을 발견으로 끝내지 말고, 서리가 그 문장을 다시 읽는 순간—전임자도 같은 시험을 했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였는지—의 판단을 다음 화 초반에 너무 늦지 않게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보름의 공백을 시간 순서상 정확히 지금 배치한 건 좋은 선택이지만, 자칫 '비밀의 예고'로만 소비되지 않으려면 서리의 다음 선택이 그 공백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것 같아요.
- 무월안 적었더니 물이 안 들어왔다 — 이걸 인과로 못 박지 않고 둑길에 사람들이 하나둘 올라오는 것으로만 보여 준 게 이 회차의 힘이었습니다. 갯골 바닥의 폐타이어, 뻘에 옆으로 누운 배 세 척, 늘어진 계류줄. 십 년 넘게 아무도 본 적 없는 것들이 드러났다는 문장이 «적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보다 훨씬 무섭게 읽힙니다. 1화에서 제일 좋았던 건 오씨의 대목이었습니다. 배를 삼십 년 몬 사람이 물 빠지는 시각을 모를 리 없는데, «말하면 틀릴 수 있으니까, 문 노인의 종이는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마을이 왜 스무 살한테 이걸 떠넘기는지가 이 두 줄에 다 들어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책임질 사람이 없는 거고요. 조석표와 이십 분 어긋난다는 말을 «누구도 확인해본 적이 없었다»로 처리한 것도 좋았습니다.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십 년이 유지됐다는 게 이 마을의 규칙이더군요. 한 가지만 짚자면, «적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한 줄은 없어도 됐을 것 같습니다. 바로 앞에 새벽 네 시에 깨서 만년필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고, 날짜만 쓰면 되는데 날짜를 쓰면 시각을 써야 한다고 망설이다가, 손을 무릎에 놓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세 동작이 이미 서리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다 보여 줬는데 다음 문단에서 그걸 한 문장으로 요약해 버리니, 앞의 손동작들이 예시가 되어 버립니다. 새터댁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삐끗한 것과 삐끗하지 않은 것 사이에는 아무 벽도 없었다»가 이미 충분했는데 «그날 이십 미터만 더 나갔더라면»이 뒤에 붙었습니다. 둘 중 하나였으면 더 셌겠습니다. 노인의 마지막 숫자가 6인지 5인지 모르는 채로 남겨 둔 것은 계속 안 밝히셨으면 합니다. 오십 년치 글씨 중에 마지막 한 획만 판독이 안 된다는 게 이 공책의 정체를 제일 잘 말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