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문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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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상자 바닥의 신문지를 걷었다.
아래에 봉투가 한 장 있었다.
흰색이었고 규격이 작았다. 아래쪽에 파란 줄이 두 개 인쇄되어 있었다.
비어 있었다.
봉투 입구가 한 번 뜯긴 자국이 있었다. 손으로 찢은 게 아니라 칼로 그은 자국이었다. 아귀가 곧았다.
앞뒤를 다 봤다. 아무것도 안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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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은 아홉 시 반에 왔다.
나는 봉투를 카운터에 올려놓고 있었다.
세림이 앞치마를 매다가 그것을 봤다. 매던 손을 내렸다.
"어디서 났어."
"상자 바닥에."
세림이 봉투를 집었다. 뒤집었다. 파란 줄 쪽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이거야."
"같은 종류라는 거지."
"같은 종류지."
세림은 봉투를 카운터에 도로 놓았다. 놓고 나서 손을 앞치마에 닦았다. 젖은 손이 아니었다.
"수진아, 이거 어머니가 준 게 아닐 수도 있다면서."
"응."
"그럼 어머니 상자에 왜 있어."
나는 대답을 안 했다.
"내 봉투랑 같은 건지 아닌지도 모르잖아." 세림이 말했다. "문구점에서 파는 거니까. 우리 동네에만 문구점이 세 개야. 초등학교 앞에 하나, 사거리에 하나, 시장 안에 하나. 세 군데 다 이거 팔았어. 나 고등학교 때 편지지 사러 다녀서 알아."
"세림아."
"그러니까 이걸로는 아무것도 안 되는 거지. 백 명이 샀으면 백 개가 있는 거고 그중에 하나가 우리 집 서랍에 있었던 거고 그중에 하나가 내 방 문 밑에 있었던 거고."
세림은 거기서 멈췄다.
멈춘 자리가 문장 가운데였다.
세림은 다음 말을 찾지 않았다. 진열대로 가지도 않고 계산기를 켜지도 않았다.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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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두 시에 왔다.
전화 없이 왔다. 문이 열리고 종이 울렸을 때 세림이 먼저 봤다.
"어머니."
"세림이 왔네."
엄마는 가방을 무릎에 올리고 앉았다. 비닐봉지를 꺼냈다. 쥐포였다.
"밥은."
"먹었어요." 내가 말했다.
"세림이는."
"저도 먹었어요."
엄마는 봉지를 카운터에 올려놓고 손을 무릎에 놓았다.
"아래층 사람 이사 갔다고 했지."
"네."
"새로 들어온 사람이 애가 둘이야. 밤에 뛰어."
"많이 뛰나요."
"뛰지. 애들이니까."
엄마는 창 쪽을 봤다.
"관리실에 얘기했는데 알겠다고만 하고."
"…….."
"그 집도 어쩔 수 없지."
세림이 그 자리에 말을 얹었다.
"저희 건물도 그래요. 위층에 강아지가 두 마리인데 밤에 뛰어다녀요. 처음엔 사람인 줄 알았어요. 발소리가 네 개니까 사람 두 명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개더라고요. 개는 발이 네 개잖아요. 그래서 한 마리인데도 두 명처럼 들려요."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짖지는 않니."
"안 짖어요. 뛰기만 해요. 저는 짖는 것보다 뛰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짖는 건 언제 짖을지 모르는데 뛰는 건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요. 아홉 시쯤에 시작해서 열한 시쯤 끝나요. 저는 그때 대체로 안 자니까요."
"늦게 자는구나."
"네."
"밥은 챙겨 먹고."
"먹어요. 요새는 아침도 먹어요. 계란 삶아서요. 여섯 개씩 삶아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하루에 하나씩 먹는데, 그러면 엿새인데 항상 사흘쯤에 다 먹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세림이 웃었다.
"어머니는 아침에 뭐 드세요."
"밥."
"국은요."
"있으면 먹고."
"…….."
세림이 다음 말을 찾았다.
찾는 게 보였다. 눈이 카운터에서 진열대로 갔다가 창으로 갔다. 창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가 가방끈을 잡았다. 무릎에서 조금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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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말했다.
"어머니."
"응."
"저 그때 왜 나갔어요."
엄마의 손이 가방끈에서 멈췄다.
"열아홉에 나갔잖아요. 두 해 살고요."
"…….."
"저는 제가 나간 줄 알았어요.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고요."
세림은 카운터를 짚지 않았다. 손을 그냥 옆에 두고 서 있었다.
"근데 어제 집에 가서 밥 먹는데 그 생각이 났어요. 그날 아침에 어머니가 제 짐을 현관에 내놓으셨더라고요."
"세림아."
"그거 제가 안 쌌어요."
가게가 조용했다. 냉장고가 한 번 돌고 멈췄다.
엄마는 가방을 무릎에 도로 내려놓았다.
일어서지 않았다.
"내가 쌌다."
세림이 숨을 한 번 쉬었다.
"왜요."
"…….."
"저 뭐 잘못했어요?"
엄마가 나를 봤다. 처음으로 나를 봤다.
그러고 나서 세림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니."
"그럼요."
"우리 집에 오래 있으면 네가 못 나갈 것 같았어."
세림이 아무 말도 안 했다.
"두 해가 지났는데 너는 계속 우리 애 방에서 자고, 우리 애 밥 먹고, 우리 애 옷 입고 있었어. 나는 그게 편했어. 편해서 무서웠고."
엄마는 거기서 한 번 끊었다가 이었다.
"그래서 짐을 쌌다."
"어머니."
"그건 내가 한 게 맞아."
세림이 카운터 모서리를 잡았다. 잡고 나서 손을 폈다.
"그럼 봉투는요."
"무슨 봉투."
"제 방 문 밑에 있던 거요."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몰라."
"어머니."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해야지."
세림은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눈을 감았다 떴다.
"십 년 동안 저는 그게 어머니라고 생각했어요."
"알아."
"아셨어요?"
"네가 명절마다 전화했잖아."
엄마는 가방끈을 다시 잡았다.
"고맙다고 안 하고 잘 지내냐고만 물었어. 나는 그게 이상했는데 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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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일어섰다.
나는 노트를 꺼냈다. 이월 장을 펴서 카운터에 놓았다.
뜯긴 자리가 위로 오게 놓았다.
엄마가 그것을 봤다.
이 초쯤 봤다. 그다음에 눈을 들었다.
"수진아."
"네."
"저녁에 뭐 먹니."
나는 노트를 치우지 않았다.
"엄마."
"응."
"이거 누가 뜯었어요."
엄마는 문 쪽으로 두 걸음 갔다. 문고리를 잡았다.
잡고 서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 여덟 해 동안 손님이 말을 못 하면 기다렸다. 그날도 그렇게 했다.
엄마의 손이 문고리에서 안 떨어졌다.
세림이 그것을 보고 있었다.
"수진아."
"네."
"그거 상자에 넣을 때 나도 봤다."
문이 열렸다.
"뜯긴 거 보고 넣었어."
문이 닫혔다. 종이 두 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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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과 나는 카운터 앞에 그대로 있었다.
"수진아."
"응."
"어머니 방금 안 끊으셨어."
"응."
"문고리 잡고 계셨어."
세림이 앞치마를 벗었다. 벗어서 두 번 접었다. 어제는 세 번 접었다.
"나 오늘 좀 일찍 갈게."
"응."
"근데 내일 올 거야."
"응."
세림이 나갔다.
카운터에는 봉투 하나와 노트 한 권이 있었다. 봉투는 비어 있고 노트는 네 장이 없다.
엄마는 봉투는 모른다고 했고 노트는 봤다고 했다.
봤다는 것과 뜯었다는 것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엄마가 문고리를 잡고 서 있던 시간이 몇 초였는지도 세지 않았다.
세지 않았는데 알고 있다.
여덟 해 동안 손님이 말을 못 할 때 나는 기다렸고, 기다리는 쪽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안다. 그것만 알고 그다음은 모른다.
여섯 시에 손님이 하나 왔다. 돌잔치 답례 카드 열 장이었다. 같은 문장을 열 번 쓰는 일이었고 그런 일은 손이 알아서 한다.
여덟 번째 장에서 글자가 틀렸다.
한 장을 새로 썼다.
열 장을 봉투에 담아 손님에게 넘기고 나서 나는 카운터를 닦았다. 봉투와 노트를 서랍에 넣었다. 넣기 전에 봉투를 한 번 더 들어 파란 줄을 봤다.
이 줄을 인쇄한 공장이 어딘가에 있다. 거기서 이걸 몇십만 장 찍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노트 위에 올려놓고 서랍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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