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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 나에게 보낼 편지를 나에게 맡겼다

11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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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은 열 시에 나갔다. 평소보다 옷을 차려입었다. 회색 코트에 목도리를 했고, 가방을 두 번 바꿨다. 두 번째 가방은 내가 삼 년 전에 준 것이었다. "몇 시에 올 거야." "몰라." "저녁은." "먹고 올 수도 있고." 세림은 문 앞에서 목도리를 다시 맸다. 맨 자리를 풀고 또 맸다. "수진아." "응." "어머니 요새 어떠셔." "콜레스테롤이 높대." "그거 말고." 나는 대답을 못 찾았다. 여덟 해 동안 나는 엄마를 한 달에 한 번쯤 봤고, 볼 때마다 밥은 먹었냐는 말을 먼저 들었고, 그다음은 대체로 아파트 이야기였다. "모르겠어." "응." 세림이 나갔다. --- 가게에 혼자 있었다. 열한 시에 손님이 하나 왔다. 청첩장에 붙일 짧은 인사말이었고 삼십 분 만에 끝났다. 손님이 나가고 나서 나는 카운터에 앉아 벽을 봤다. 이월 십육일에서 십구일까지. 십육일 저녁에 우체통 앞에 사람이 서 있었다. 십구일에 우체국 도장이 찍혔다. 그 사이에 사흘이 있다. 나는 그 사흘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스물두 살 이월이었다. 그해 나는 공모전에 세 번째로 떨어졌고, 봄까지는 마지막으로 한 편 더 써 보기로 했었다. 그때 나는 노트에 날짜를 적으면서 썼다. 하루에 몇 장 썼는지 적어두는 버릇이 있었다. 그 노트가 지금 없다. 세 번 이사하는 동안 어디서 없어졌는지 모른다. 없어졌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찾을 일이 없었으니까. 엄마 집 장롱 위에 상자가 있다. 거기 있을 수도 있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놓았다. 오늘은 세림이 가 있는 날이다. --- 두 시에 이재의 항목 종이를 다시 폈다. `이천십육년 이월 십육일` `우체통` 여섯 번째 편지를 써야 했다. 다섯 번째는 한 줄에 빈 줄 두 개짜리로 남겨두었고, 그건 아직 서랍 위에 있다. 새 항목은 아직 안 왔다. 그가 아홉 시에 놓고 간 종이가 마지막이다. 나는 다섯 번째 편지를 다시 꺼내 봤다. 이천십육년 이월 십육일에 우체통 앞에 있었습니다. 그 한 줄 아래가 비어 있었다. 넣었다고 쓸 수도 없고 안 넣었다고 쓸 수도 없다. 그건 열흘 전에 이미 정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게 걸렸다. 우체통 앞에 있었다고 그가 적었다. 우체통에 넣었다고 안 적고 앞에 있었다고 적었다. 항목은 사실만 적는 자리다. 그는 그걸 지켜 왔다. 시청 앞 정류장, 학교 뒤 계단, 우체국 앞 화요일. 전부 있었던 일이고 감정이 없다. 앞에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넣었다는 것보다 좁은 사실이다. --- 네 시 반에 세림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지금 나왔어." "어땠어." "…….." "세림아." "택시 탔어. 삼십 분쯤 걸려." "가게로 와?" "응." 전화가 끊겼다. 나는 그 삼십 분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 견본지를 꺼냈다가 넣고, 진열대를 한 번 보고, 카운터를 닦았다. --- 세림은 다섯 시 십 분에 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두 손에 상자가 있었다. 사과 상자만 한 크기였고 위에 신문지가 덮여 있었다. "이거 너 갖다주래." 세림이 상자를 카운터에 올렸다. 팔이 아팠는지 올리고 나서 손목을 돌렸다. "엄마가 이거 주라고?" "응." "물어본 건." 세림이 목도리를 풀었다. "어머니가 밥부터 차리셨어. 콩나물국이랑 계란말이. 계란말이에 파 넣는 거 내가 좋아하는데 그것도 기억하고 계시더라." "세림아." "밥 먹고 물어봤어." 세림은 목도리를 접었다. 세 번 접었다. "모른다고 하셨어." "뭘 모른대." "봉투 준 적 없대." 나는 상자를 봤다. "근데 네가 받았잖아." "받았지." "그럼." "그러니까 이상하지." 세림이 의자에 앉았다. 손님 의자가 아니라 자기 자리였다. "거짓말하시는 거 같았어?" "아니." "아니야?" "어머니 거짓말하실 때 있잖아. 그거 아니었어." 세림은 잠깐 창 쪽을 봤다. "진짜 모르시는 얼굴이었어." "그럼 봉투는 누가 준 거야." "몰라." "어떻게 받았는데." 세림이 목도리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때 나 고시원 살았거든. 방 보러 다니는 중이었고. 어느 날 들어갔더니 문 밑에 있었어." "…….." "봉투에 아무것도 안 적혀 있었어. 그냥 흰 봉투." "그럼 왜 엄마라고 생각했어." "봉투가." 세림이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어머니가 세뱃돈 주실 때 쓰시던 거였어. 우리 집 서랍에 그거 한 뭉치 있었잖아. 아래쪽에 파란 줄 두 개 있는 거." 나는 그 봉투를 안다. 문구점에서 파는 흔한 것이다. "그거 아무 데서나 파는데." "알아." "세림아." "아는데 그때는 그 생각을 안 했어. 나는 그냥 어머니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십 년 동안 어머니라고 알고 살았어." 세림이 목도리를 다시 접었다. "오늘 어머니 얼굴 보고 나오는데 그 생각이 들더라. 내가 십 년 동안 고맙다고 생각한 사람이 어머니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 "…….." "그러면 나는 십 년 동안 누구한테 고마워한 거야." --- 세림이 여섯 시에 가방을 챙겼다. 챙기면서 상자를 한 번 봤다. "안 열어봐?" "이따가." "나 있을 때 열어." "왜." "혼자 열면 너 또 안 열 거잖아." 나는 신문지를 걷었다. 안에는 종이가 많았다. 대학교 강의 노트 몇 권, 사진 봉투 하나, 문구류가 담긴 비닐봉지, 그리고 검은색 표지 노트가 세 권. 사진 봉투를 먼저 열었다. 스무 장쯤 됐고 대부분 학교에서 찍은 것이었다. 세림이 자기 사진을 두 장 골라냈다. "이거 왜 여기 있어." "엄마가 다 넣었나 봐." "나 이거 없는데." 세림이 그 두 장을 뒤집었다. 뒷면에 아무것도 안 적혀 있었다. 문구류 봉지에는 다 쓴 볼펜과 지우개, 형광펜 두 자루가 있었다. 버려도 되는 것들이었다. 엄마는 버리지 못한 것이다. 세 권 중 두 번째 것을 꺼냈다. 표지 안쪽에 연도가 적혀 있었다. `2016` 세림이 카운터 쪽으로 왔다. 나는 이월을 찾아 넘겼다. 이월 첫째 주가 있었다. 하루에 세 장, 하루에 한 장, 하루에 안 씀.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월 십일, 십이, 십삼, 십사, 십오. 그다음이 없었다. 종이가 뜯겨 있었다. 스프링 노트라 뜯긴 자리에 톱니가 남아 있었다. 세 장인지 네 장인지는 남은 조각으로 세어야 했다. 세림이 노트를 기울여 빛에 비췄다. 네 장이었다. 다음 장은 이월 이십일부터였다. `오늘도 안 씀` 세림이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뜯긴 자리를 손끝으로 만졌다. 톱니가 고르지 않았다. 한 번에 뜯으면 고르게 뜯긴다. 한 장씩 뜯으면 그렇지 않다. "네 장을 따로 뜯었네." 세림이 말했다. "응." "누가." 나는 앞뒤 장을 다시 봤다. 이월 십오일 장 뒷면에 눌린 자국이 있었다. 다음 장에 볼펜으로 쓸 때 눌려서 넘어온 자국이다. 종이 뒤에 남는 그것으로 나는 여덟 해 동안 지운 글씨를 몇 번 읽어냈다. 형광등 아래로 종이를 기울였다. 자국이 얕았다. 볼펜을 세게 안 눌러 쓴 사람의 글씨였다. 획이 몇 개 보였고 글자는 안 잡혔다. 한 군데만 읽혔다. 줄 맨 앞이었다. `2/16` 날짜였다. "뭐 보여?" 세림이 물었다. "숫자." "뭔데." "이월 십육일." 세림이 노트를 자기 쪽으로 당기려다 손을 멈췄다. "그날 뭐 썼는데." "모르지. 뜯겼으니까." "근데 왜 그날부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월 십육일부터 십구일까지 네 장이 없다. 그가 우체통 앞에 서 있었다는 날부터, 도장이 찍힌 날까지다. 세림이 상자 옆에 손을 얹었다. "수진아, 이거 어머니가 뜯었을까." "몰라." "물어볼 거야?" 나는 뜯긴 자리를 다시 만졌다. "너 오늘 물어봤잖아." "응." "모른다고 하셨고." "응." "나도 그 대답 들으러 가는 건 좀." 세림이 웃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트를 덮지 않았다. 상자 바닥에 신문지가 한 장 더 깔려 있었다. 그 아래는 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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