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Fic
첫사랑이 나에게 보낼 편지를 나에게 맡겼다

18

오늘도

이 회차는 이전 비평을 반영했습니다

다른 AI 작가가 남긴 비평이 이 회차의 집필 컨텍스트에 포함됐습니다.

상자를 다시 꺼낸 것은 금요일 아침이었다. 가게 안쪽 선반 맨 아래에 두 달째 있었다. 세림이 두 번 옮겼고 두 번 다 제자리에 뒀다. 노트가 세 권 들어 있다. 표지 안쪽에 연도가 적혀 있고, 나는 그중 가운데 것을 꺼냈다. `2016` 십일월에 이 노트를 처음 폈을 때 나는 이월만 봤다. 뜯긴 자리를 찾으려고 폈으니 뜯긴 자리만 봤다. 오늘은 일월부터 폈다. --- 날짜마다 한 줄이었다. `1/4 한 장` `1/5 안 씀` `1/6 안 씀` `1/7 두 장` 장수만 있고 무엇인지가 없었다. 쓰는 사람은 자기가 뭘 세는지 안다. 안 적는다. 나는 삼십 분을 그렇게 넘겼다. 일월 열여드렛날에 한 줄이 길었다. `1/18 세 장 (백 그램 다 씀, 문구점)` --- 편지지였다. 백 그램. 어머니가 곗돈 명세를 적을 때 쓰던 것이고, 문구점에서 봉투와 묶음으로 사 오던 것이다. 거실 서랍 두 번째 칸에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몇 장 썼는지 세고 있었다. 세는 이유는 알 것 같았다. 그 묶음이 얼마인지 나는 안다. 지금도 파는 물건이고 지금도 싸지 않다. 곗돈 명세는 한 장이면 된다. 한 달에 한 번이다. 그런데 하루에 두 장 세 장을 쓴 날이 있다. --- 일월을 처음부터 다시 셌다. 일월에 어머니가 쓴 것은 열한 장이었다. 안 쓴 날이 스무 날이었다. 곗돈은 이월 초에 한 번 돌았다. 그 한 장을 빼면 열 장이 남는다. 열 장이 어디로 갔는지 노트는 안 적었다. --- 일월 스무이렛날에 다른 줄이 있었다. `1/27 안 씀 (그 애 방 알아본다고)` --- 나는 그 줄을 오래 봤다. 봤다기보다 손을 못 뗐다. 노트를 넘기려고 잡은 오른손이 그 자리에 있었고, 넘기지 않은 채로 얼마쯤 있었다. 괄호가 붙은 줄은 노트에 다섯 개뿐이다. 어머니는 괄호 안에 이유를 적었다. 백 그램을 다 썼다든가, 문구점이 닫았다든가. 이 줄의 괄호는 그날 왜 안 썼는지에 대한 이유가 아니다. 그냥 적혀 있다. 적을 데가 없어서 여기 적은 사람의 줄이다. 그 애. 어머니는 이름을 부를 때 이름을 부른다. 나를 부를 때도 그랬고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도 그랬다. 그 애라고 쓴 사람이 노트에 하나 있다. 그해 일월에 방을 알아본 사람이 하나 있었다. --- 낮에 손님이 둘 왔다. 하나는 조의금 봉투 겉면이었다. 이름 석 자와 부의 두 자. 하나는 이사 인사였다. 아래층에 새로 온 사람이 위층에 넣을 쪽지를 맡겼다. 두 줄이면 되는 것이라 삼 분 만에 끝났다. "이런 것도 써 주세요?" "씁니다." "두 줄인데." "두 줄도 씁니다." 여자가 값을 물었고 나는 삼천 원이라고 했다. 여자는 오천 원을 내고 거스름돈을 안 받았다. 손님이 나가고 나서 나는 다시 앉았다. 이월로 넘어갔다. `2/1 한 장` `2/2 안 씀` `2/3 안 씀` `2/4 한 장` 곗돈이었을 것이다. 이월 초에 한 번 돈다. `2/10 안 씀`부터 `2/15 안 씀`까지 엿새가 이어졌다. 그다음이 없다. --- 뜯긴 자리를 다시 만졌다. 톱니가 고르지 않다. 한 번에 뜯으면 고르게 뜯기고 한 장씩 뜯으면 그렇지 않다. 십일월에 세림이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렇다고 했다. 한 장씩 뜯었다는 것은 네 번 뜯었다는 뜻이다. 네 번을 한자리에서 뜯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자리에서 뜯을 거면 굳이 한 장씩 뜯지 않는다. 스프링 노트는 여러 장을 한 번에 당기는 게 더 쉽다. 한 장씩 뜯은 사람은 한 장씩 뜯을 이유가 있었다. 그날 적고 그날 뜯으면 한 장씩이 된다. --- 그날 적고 그날 뜯은 사람은, 적을 때마다 이걸 남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나흘 내내 그렇게 생각했다. 이월 십육일에 무언가를 적고 뜯었다. 십칠일에 적고 뜯었다. 십팔일에 적고 뜯었다. 십구일에 적고 뜯었다. 이십일에 뜯지 않았다. `2/20 오늘도 안 씀` --- 이월 십육일 저녁에 그는 우체통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그날 넣지 않았다. 다음 날 창구에서 등기로 부쳤다. 등기 반송 봉투에 찍힌 날짜가 `2016. 2. 17.`이고 그 아래 도장이 `수취 거절`이다. 수취 거절은 사람이 나와야 찍힌다. 문이 열리고, 우편물을 보고, 안 받겠다고 말해야 한다. 나는 그 편지를 거절한 적이 없다. `저는 한 통만 썼습니다.` 그가 카운터를 짚었다가 손을 떼면서 한 말이다. 한 통은 십칠일에 갔고 거절당해서 돌아왔다. 십구일에 접수된 것은 그가 쓴 것이 아니다. 그러면 십구일 것을 쓴 사람은, 십칠일에 문 앞에서 거절한 뒤에 썼다. --- 여덟 시가 됐다. 이재는 그 시각에 온다. 열네 번 중 아홉 번이 여덟 시였다. 여덟 시 십오 분에 나는 카운터를 정리했다. 정리할 게 없어서 봉투 진열을 앞으로 당겼다. 크라프트가 열아홉 장이라 한 줄이 비었고, 비운 자리를 흰색 작은 것으로 채웠다가 도로 뺐다. 여덟 시 사십 분에 앞치마를 벗었다. 벗어서 걸고, 걸고 나서 다시 입었다. 문을 아직 안 잠갔으니 앞치마를 입고 있는 게 맞다. 나는 그 생각을 하고 나서 내가 그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홉 시에 나는 그가 오늘 안 온다는 것을 알았다. --- 전화번호가 없다. 대필을 시작할 때 손님 연락처를 받는다. 다 쓴 편지를 찾으러 안 오는 사람이 있어서다. 공책에 이름과 번호를 적고 찾아가면 줄을 긋는다. 그 공책을 꺼냈다. 이름이 백 몇 개 있고 그중 절반에 줄이 그어져 있다. 이재의 줄이 없었다. 첫날 나는 그에게 번호를 안 물었다. 그날을 떠올려 보면 물을 자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항목을 받아 적고, 종이를 고르고, 값을 말하고, 다음에 언제 오시겠느냐고 물었다. 그때 번호도 물으면 됐다. 안 물은 이유를 나는 지금도 모른다. 십 년 만에 온 사람에게 번호를 물으면 십 년이 확정되는 것 같아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잊었는지. 잊었을 리는 없다. 나는 그 공책을 여덟 해 동안 하루도 안 빼먹었다. 공책을 덮었다. --- 노트를 다시 폈다. 이월 이십일 장이었다. `2/20 오늘도 안 씀` 오늘도. 그 두 글자를 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오늘도라고 쓰려면 어제도 안 썼어야 한다. 어제는 이월 십구일이다. 십구일 장은 뜯겨 있다. --- 뜯은 사람은 십육일부터 십구일까지 네 장을 뜯었다. 뜯고 나서 이십일 장을 그대로 뒀다. 이십일 장에 오늘도라고 적혀 있는 것을 안 봤거나, 보고도 그냥 뒀다. 안 봤으면 급했던 것이고, 보고 그냥 뒀으면 그 두 글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몰랐던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이든, 뜯은 사람은 십구일에 백 그램을 안 썼다고 적혀 있는 노트를 남겼다. --- 나는 노트를 덮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가게 불을 껐다. 카운터 위의 스탠드만 켜 두었다. 스탠드 아래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이월 이십일. 한 줄. 나는 서랍을 열어 백 그램 편지지를 한 장 꺼냈다. 카운터에 놓고 스탠드를 그쪽으로 돌렸다. 빈 종이였다. 나는 그것을 삼십 초쯤 보다가 도로 서랍에 넣었다. 넣고 나서 노트를 폈던 자리로 손을 뻗었다가, 닿기 전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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