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십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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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가게를 안 열었다.
가게를 하고 나서 토요일에 안 연 날이 네 번이다. 두 번은 아파서였고 한 번은 상갓집이었고 한 번은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
문에 종이를 붙였다. 오늘 쉽니다. 네 글자를 쓰는 데 이 초쯤 걸렸다.
붙이고 나서 밖에서 한 번 봤다. 유리 안쪽에 붙였더니 글자가 뒤집혀 보였다. 떼서 바깥쪽에 다시 붙였다.
테이프가 모자라 아래쪽 한 귀퉁이가 떴다.
버스는 두 번 갈아탄다. 첫 번째는 스물두 정거장이고 두 번째는 여섯 정거장이다. 십 년 전에는 한 번에 가는 노선이 있었는데 없어졌다.
가방에 봉투를 하나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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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버스는 앉을 자리가 있었다.
창밖으로 아는 것들이 지나갔다. 문구점 자리에 휴대폰 대리점이 들어와 있었고, 그 옆 세탁소는 그대로였다. 세탁소 간판 글씨가 십 년 전 그대로라 획이 어디서 끊기는지까지 기억났다.
나는 그런 것을 기억한다.
간판 획은 기억하는데 그해 이월에 이 길을 몇 번 지났는지는 모른다. 기억은 세는 것과 다른 데 붙는다.
여섯 정거장이 십오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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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문을 열고 나를 봤다.
"연락도 없이."
"응."
"밥은."
"안 먹었어."
엄마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신을 벗고 따라 들어갔다.
거실이 좁아 보였다. 이 집은 십 년 전에도 좁았고 지금도 좁은데, 좁아 보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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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밥을 차렸다.
김치와 계란말이와 어제 끓인 미역국이었다. 계란말이는 지금 부친 것이라 접시가 따뜻했다.
나는 반쯤 먹었다.
계란말이는 안이 덜 익어 부드러웠다. 엄마는 늘 이렇게 부친다. 겉만 익히고 불을 끄고 남은 열로 안을 마저 익히는 방식인데, 타이밍을 놓치면 흐른다. 오늘 것은 안 흘렀다.
"왜 안 먹어."
"먹고 있어."
"반도 안 먹었잖아."
"먹어."
숟가락을 놓고 다시 들었다. 세 번 그렇게 했다.
엄마는 밥을 다 먹고 그릇을 포갰다.
"할 말 있어서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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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릇을 포개는 손을 봤다.
엄마는 그릇을 포갤 때 큰 것부터 놓는다. 밥그릇 위에 국그릇을 올리지 않는다. 국그릇은 따로 든다.
"응."
"해."
"밥 치우고."
"지금 해."
엄마가 그릇에서 손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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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십육년 이월 십칠일에 등기 왔었지."
엄마는 나를 봤다.
십 년 동안 엄마가 나를 이런 식으로 본 적이 몇 번 있다. 대학을 안 가겠다고 했을 때. 가게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리고 오늘이다.
"뭐?"
"이월 십칠일. 등기."
"그걸 내가 어떻게 기억해."
"기억하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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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일어나서 싱크대로 갔다.
물을 틀었다. 그릇을 안 가지고 갔는데 물을 틀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기다렸다.
손님이 말을 못 할 때 나는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다. 기다리는 동안 상대가 무엇을 고르고 있는지 소리로 안다.
물소리가 삼십 초쯤 났다.
그동안 나는 식탁 위를 봤다. 김칫국물이 한 방울 떨어져 있었다. 내가 흘린 것이었다.
행주가 팔 닿는 데 있었는데 안 닦았다. 닦으면 이 대화가 잠깐 끊기고, 끊기면 엄마가 그 틈으로 나갈 것 같았다.
물이 멎었다.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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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낸 거였는데."
"몰라."
"이름 봤을 거 아니야."
"봤어."
엄마가 싱크대에 손을 짚고 서 있었다. 등이 보였다.
"보고 안 받았어."
"…….."
"그러니까 이름은 봤고 안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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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면 엄마가 돌아설 것 같았고, 돌아서면 이 대화가 얼굴을 보는 대화가 된다. 얼굴을 보면 엄마는 말을 줄인다.
"왜 안 받으셨어."
"…….."
"엄마."
"…….."
"왜."
엄마가 수건을 집었다. 젖지도 않은 손을 닦았다.
"그건 오늘 말 안 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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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은 안 해."
"…….."
"네가 물은 건 받았냐 안 받았냐잖아. 받았고 안 받았다. 그건 말했어."
엄마가 돌아섰다.
"나머지는 다음에 해."
나는 그 얼굴을 봤다.
십 년 전에 이 사람이 문 앞에서 무슨 표정을 하고 우편물을 안 받았는지 나는 모른다. 지금 얼굴은 그때 얼굴이 아닐 것이다. 그때는 뭔가를 막는 얼굴이었을 텐데 지금은 막을 것이 이미 지나간 사람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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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더 먹어."
"됐어."
"다 식었네."
엄마가 국그릇을 들고 갔다. 데워서 다시 가져왔다.
나는 그것을 다 먹었다.
먹는 동안 엄마는 앞에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안 했고 나도 안 했다.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만 났다.
다 먹고 나서 내가 그릇을 포갰다.
큰 것부터 놓았다. 국그릇은 따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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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전에 방을 봤다.
내가 쓰던 방은 지금 창고다. 옷장 두 개와 상자들이 있고 상자 위에 또 상자가 있다. 십 년 전에 여기 책상이 있었다.
상자 하나가 열려 있었다. 안에 겨울 이불이 들어 있고 그 위에 신문지가 덮여 있었다. 신문지를 덮는 것은 엄마 방식이다. 먼지가 앉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안 보이는 게 편해서다.
방문 옆 벽에 못 자국이 두 개 있었다. 달력을 걸던 자리다.
그 옆방 문은 닫혀 있었다.
"저 방은."
"창고지 뭐."
"거기도?"
"둘 다 창고야."
엄마가 현관 쪽으로 갔다.
"뭐 볼 거 있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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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가방을 열었다.
봉투를 꺼냈다. 팔십 그램이라 얇고, 안에 든 것이 접힌 자리가 밖에서 비친다.
받는 사람 칸이 비어 있다.
이 봉투를 나는 삼 년 전에 카운터에 두고 갔고, 다음 날 서랍에 넣었고, 그 뒤로 열두 번쯤 서랍에서 봤다.
오늘 처음 가지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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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에서 종이를 꺼냈다.
세 번 접힌 자리가 이제 종이보다 얇다.
`수진 씨에게.`
`그날 버스 두 대를 그냥 보냈습니다. 두 번째가 지나갈 때 당신이 손목시계를 봤습니다. 나는 그걸 봤고, 그래서 세 번째 버스는 안 보내려고 했습니다.`
빈 줄.
`그날 이후로 나는 시계를 자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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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편지를 쓸 때 내가 이재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하려다 못 한 말을 내가 대신 쓴다고. 대필가가 하는 일이 그것이니까, 이번에는 나에게 오는 편지를 내가 쓰는 것뿐이라고.
그래서 받는 사람 칸을 못 적었다. 내가 쓰고 내가 받는데 이름을 적는 게 이상해서.
지금 이 줄을 다시 읽으니 이상한 곳이 다른 데 있다.
`당신이 손목시계를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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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그날 정류장에서 손목시계를 본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봤고 십 년 동안 기억했다.
기억한 것은 손목시계다.
가죽 줄이었다. 갈색이고 구멍이 여럿 났는데 두 번째 구멍에 채워져 있어서, 남는 쪽 끈이 손목 아래로 길게 늘어졌다. 그게 흔들렸다.
거기까지가 내가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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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보는 사람의 손목과 얼굴은 같이 안 보인다.
손목을 보고 있으면 얼굴이 시야에서 흐리고, 얼굴을 보면 손목이 흐리다. 둘 다 선명한 기억이 있다면 그건 두 번 본 것이거나, 한 번 보고 한 번 붙인 것이다.
나는 그 얼굴을 안다고 십 년 동안 생각했다.
여덟 해 동안 남의 필적을 보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사람은 자기가 본 것과 자기가 아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손님들은 늘 확신한다. 이건 제 남편 글씨가 맞습니다. 그런데 맞는 경우가 절반쯤이다.
절반은 자기가 아는 사람을 종이 위에 얹은 것이다.
나는 손목을 봤다.
얼굴은 얹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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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한 정거장을 지났다.
편지를 접었다. 세 번 접으면 원래 자리로 들어간다.
봉투에 넣고 받는 사람 칸을 봤다.
비어 있다.
칸은 가로 육 센티에 세로 일 센티쯤 된다. 이름 석 자를 쓰면 남는다. 손님들은 이 칸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보내는지는 오기 전에 이미 정하고 오니까.
어려워하는 칸은 늘 그 아래다. 무슨 말을 쓸지가 안 정해진 사람이 온다.
나는 가방에서 펜을 꺼냈다. 볼펜이다. 만년필은 선이 예뻐져서 안 쓴다.
뚜껑을 열고 칸에 댔다.
버스가 흔들려서 점이 하나 찍혔다. 칸 왼쪽 끝에 아주 작게.
댄 채로 두 정거장을 갔다.
내릴 정거장에서 뚜껑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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