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네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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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여섯 시에 문을 닫았다.
세림이 안 갔다.
앞치마를 벗어서 못에 걸고, 걸고 나서 카운터 안쪽 의자에 앉았다. 가방은 어깨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불을 하나만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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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아."
"응."
"집에 안 가?"
"갈 거야."
세림은 그러고 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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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분쯤 있었다.
나는 겉봉 스물세 장을 봉투에 나눠 담았다. 손님이 내일 찾으러 온다. 세림이 그걸 보고 있었다.
"수진아."
"응."
"어제 내가 뭐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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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을 멈췄다.
"네가 요새 이상한 거 안 물었다고."
"응."
세림이 가방끈을 내렸다.
"오늘 물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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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봉투를 내려놓았다.
물을 줄 알았다. 어제 그 말이 나온 자리에서 나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고, 넘어가면서 세림이 그걸 그냥 두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뭘 물을 건데."
"두 달."
"…….."
"두 달 동안 너 뭐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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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면지를 한 장 꺼냈다.
꺼내고 나서 왜 꺼냈는지 알았다. 항목을 받을 때 하는 동작이다. 손이 먼저 갔다.
"말해 줄게."
"응."
"근데 순서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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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에 손님이 하나 왔어."
"이재 씨."
"응."
세림이 그 이름을 먼저 말했다. 나는 그다음을 말했다.
"자기가 나한테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했어. 부치지는 않는다고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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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알아."
"어디까지 알아."
"거기까지."
세림이 의자에서 등을 폈다.
"그 사람 왔다는 것까지 알고, 뭘 맡겼는지는 몰라. 나 네 서류함 안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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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통 썼어."
"…….."
"열네 통이나?"
"항목을 주면 내가 쓰고, 쓴 건 그 사람이 가져갔어."
나는 이면지에 아무것도 안 적고 있었다. 손에 펜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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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씨가 십 년 전에 편지를 한 통 부쳤어."
"…….."
"소인이 이월 십칠일이야. 등기였고."
"그거 네가 받은 거야?"
"안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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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취 거절이야."
세림이 아무 말도 안 했다.
"등기는 사람이 나와서 받아야 돼. 그날 나온 사람이 거절했어."
"…….."
"누가 나왔는데."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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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가방을 무릎에서 내려 바닥에 놓았다.
"그건 확인된 거야?"
"엄마가 나한테 직접 말했어. 앉아서."
"…….."
"그리고 내가 받은 편지는 이월 십구일 소인이야. 일반우편이고, 그건 도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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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씨가 두 통 부쳤어?"
"한 통만 썼대."
"그 사람 말이야?"
"그 사람 말이야."
나는 그 구분을 소리 내어 했다.
"엄마가 한 말이 있고 이재 씨가 한 말이 있어. 두 개는 다른 종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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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나를 봤다.
"수진아."
"응."
"너 지금 나한테 항목 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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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펜을 놓았다.
세림은 내가 손님한테 하는 말을 옆에서 오래 들었다. 확인된 것, 들은 것, 아무도 안 본 것. 손님이 알아야 값을 안다.
세림은 값을 낼 사람이 아니다.
"미안."
"미안하지 말고."
세림이 무릎에 손을 얹었다.
"그냥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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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깐 못 했다.
확인된 것만 말하는 게 여덟 해 동안 내가 정확했던 방법이다. 들은 것과 본 것을 나누고, 아무도 안 본 것은 자리를 비워 둔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틀리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세림은 오늘 아무것도 못 듣는다.
정확한 것이 손님한테는 충분한데 이 사람한테는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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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구일에 온 편지 우리 엄마가 썼어."
가게가 조용했다.
바깥에서 셔터 내리는 소리가 났다. 옆집 문구점이다. 여섯 시 십오 분에 내린다.
"…….."
"뭐라고."
"엄마가 이재 씨 글씨를 흉내 냈어. 두 장 연습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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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손을 무릎에서 뗐다.
뗀 손을 어디 두지 못하고 카운터 모서리를 잡았다.
"그러면 그 편지."
"응."
"…….."
"내가 십 년 동안 봤던 그거."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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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은 그 편지를 봤다.
스물두 살 겨울에 내가 그것을 세 번 읽었고, 세 번째로 읽던 날 세림이 옆에 있었다. 그때 세림은 아무 말도 안 했고 다음 날 아침에 국을 끓여 왔다.
그 이야기를 우리는 십 년 동안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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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아."
"응."
"그러면 너 그때."
세림이 말을 멈췄다.
멈춘 자리가 어디인지 나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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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 안 왔으면."
내가 대신 말했다.
"…….."
"나 갔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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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은 오래 있었다.
거짓말할 때 문장이 길어지는 사람인데 오늘 문장이 아예 안 나왔다.
카운터 모서리를 잡은 손이 안 움직였다.
"그러면."
"응."
"내가 십 년을 얻은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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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니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아니라고 하려면 다른 사실을 대야 하는데 없다. 스물두 살 이월에 나는 갔을 것이고, 갔으면 세림은 스물둘에 혼자가 됐을 것이다.
엄마가 그것을 막았고, 나는 십 년을 여기서 살았다.
세림은 그 십 년 동안 매일 옆에 있었다.
"세림아."
"…….."
"나 그거 계산하고 있어."
세림이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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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계산하고 있어."
세림이 손을 뗐다.
"어머니가 나 내보냈고, 그 봉투 넣었고, 네 편지도 쓰셨어. 세 개가 다 어머니야."
"응."
"그중에 두 개는 나한테 손해고 하나는 이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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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거 있잖아."
세림이 말했다.
"물음표."
"응."
"…….."
"그건 안 넣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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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정해졌으니까."
세림이 카운터를 한 번 짚었다가 뗐다.
"내가 찍었다고 하고 어머니는 기억 안 난다고 하잖아. 둘 중에 누가 맞는지 알 수가 없어. 알 수 없는 걸 넣으면 계산이 틀려."
"…….."
"그건 비워 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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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들었다.
손님한테 하던 말이 오늘 반대편에서 왔다. 세림은 그걸 나한테 배운 적이 없다. 옆에서 들었을 뿐이다.
들은 것을 자기 것에 쓰는 데 십 년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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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웃지 않았다.
"근데 이득이 제일 커."
"…….."
"셋 다 합치면 나는 남는 장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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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세림은 세는 사람이다. 흰 큰 것 스물넷, 흰 작은 것 스물아홉. 안 틀린다.
십 년을 세었고 그것도 안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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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아."
"응."
"그건 네가 한 게 아니야."
"알아."
세림이 나를 봤다.
"내가 한 게 아니라서 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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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아무도 말을 안 했다.
나는 겉봉 봉투를 마저 담았다. 스물세 장을 다 담고 고무줄을 둘렀다. 손이 할 일이 있는 게 다행이었다.
세림이 일어섰다.
가는 줄 알았는데 진열대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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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줄 칸 앞에 섰다.
어제 세림이 도로 넣은 서른여섯 장이 거기 있다. 다 빈 것이다.
세림이 한 장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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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아."
"응."
"어제 세 개 말했잖아."
"…….."
"안 쓰거나, 흐리게 쓰거나, 비워 두거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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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있어."
세림이 봉투를 들고 돌아섰다.
"뭔데."
"의뢰를 무르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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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들었다.
여덟 해 동안 손님이 의뢰를 무른 적은 몇 번 있다. 값을 안 받고 항목 종이를 돌려준다. 그건 목록에 안 넣는다. 그건 방법이 아니라 없던 일이 되는 거니까.
"세 번째 항목 못 골라서?"
"아니."
세림이 봉투를 반으로 접지 않고 가방에 넣었다.
"고를 게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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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쓸게."
세림이 말했다.
"네 글씨로 쓰면 네가 쓴 게 되잖아."
내가 말했다. 세림이 여덟 해 만에 손님 의자에 앉아서 한 말이다.
"그래서 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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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봉투 든 가방을 한 번 고쳐 멨다.
"그때는 내가 쓰면 내가 쓴 게 되는 게 싫었어."
"……."
"지금은 그게 필요해."
"뭐가 달라졌는데."
"쓸 말이 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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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안 물었다.
물으면 세림이 지금 정하게 된다. 정하고 나가면 그건 오늘 밤에 쓰는 말이 되고, 오늘 밤에 쓰는 말은 오늘 것만 담긴다.
십 년치를 쓰려면 며칠 걸린다. 손님들을 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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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가방을 멨다.
"항목 종이 아직 있지."
"있어."
"…….."
"버리지 마."
"안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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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림이 문 앞에서 멈췄다.
"내일 열 시에 올게."
"응."
"…….."
"고춧가루."
세림이 말했다.
"내일 국숫집 가자. 두 번 넣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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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혔다.
나는 남은 불을 껐다.
진열대의 파란 줄 칸에 서른다섯 장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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